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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Feb 24. 2022

연애에 있어 필요한
준비물


잠수 이별을 당하고 전 연인의 문 앞에 서서 기다리던 때는 동파로 보일러가 깨지던 겨울날이었다. 손까지 노랗게 언 탓에 친구에게 푸념 섞인 전화를 걸 때에도 번호를 잘못 눌러 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던 때에 굳건한 결심을 했다.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고. 종국에는 저물 사랑을 소재로 글을 쓰지도 않겠다고.


연애라는 감정은 나를 올려주기보다 내려앉게 하는 때가 많아서 그 길로 제주행을 택했다. 아무래도 제주도에는 또래가 별로 없으니까 더욱이 사랑에 빠질 기회가 없을 것만 같았다. 돌이켜보니 결심에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묻은 게 아닌데…… 어쨌거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이 년간 삶과 성찰을 담은 이야기를 썼다. 그런데 이번 육지 여행에서 오랜만에 연애를 하고 싶은 상대가 나타났다. 기껏 제주에 왔는데 육지를 가자마자 사랑에 빠진 거다. 오랜만에 찾아온 감정이라 차마 무시할 수 없어서 좋아한다고 표현은 했는데 머리가 아파왔다. 결심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그 길로 다급해진 나는 친한 친구에게 재빨리 연락을 했다. 독자도 잃고 사랑도 잃은 경험을 두 번이나 하게 생겼다고. 친구는 헤어진 뒤에 독자를 잃는다고 해도, 그건 연인을 잃은 것뿐이지 내 글에 공감하고 계속 읽고 싶다는 열망을 지닌 독자로서의 마음을 지닌 사람을 잃은 게 아니지 않냐는 우문현답을 내놓았다. 수긍해버려서 더 투정할 게 없어진 나머지 외로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홀로 있을 때의 외로움은 어차피 외로운 감정이니 견딜 수 있는데,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외로움을 느끼면 그것만큼 비참할 때가 어디 있겠냐는 요지였다. 친구는 밤새 고민해보겠다는 답장을 내밀고 사라진 뒤에 똑똑하게 돌아왔다. 원론적으로 옆에 있는 사람이 외로움을 덜 느끼게 해주는 게 맞지 않을까? 그리고, 외로움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거잖아. 아무리 곁에 사람이 북적거려도 한결같이 외로움을 느끼는 친구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어.


주변에 현명한 친구가 많아서 그들의 말을 옮겨 담으면 에세이 한 편이 뚝딱 나오니 어쩌면 에세이를 평생 쓸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이 들던 때에 친구는 한 마디를 덧붙여 명언의 마무리를 장식했다. 내가 생각하는 연애란……  부족함을 채우는 것보다 서로의 삶에 플러스 알파가 되는 거야. 전날까지만 해도 나는 좋아하는 이에게 한쪽이 잠적을 타면 관계가 끊어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우중충한 질문을 던졌다. 잠수 이별을 당한 기억이 또렷해서였다. 아무리 그의 취미와 취향과 소속된 직장과 집을 알아도, 연락처 하나를 차단하면 닿을 기회가 사라지는 슬픔에 대해 알아버린 뒤 연인이라는 관계로 누군가와 친해지는 과정에 거부감이 들었다. 가물가물해진 목소리를 붙잡고 홀로 머릿속을 열어 추억을 곱씹는 미련한 일 같은 지긋지긋한 경험은 더 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그런 글을 썼다. 내 글을 모두 읽어 과거사와 아픔을 일일이 꿰고 있는 사람을 만날 것인가, 아니면 나라는 사람을 새로 색칠할 수 있게끔 배경지식이 전무한 사람을 만나는 게 좋을 지에 관해. 그때는 큰 고민 없이 뒤편을 택했다. 밝은 사람이 되면 덩달아 밝은 분위기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믿어서였다. 막상 그런 사람을 소개팅으로 만나본 나는 아픔과 슬픔과 무기력과 불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했다. 그는 별 생각이 없다고 답했고 그 답을 들은 뒤에는 감정을 이해받지 못하겠다는 강한 확신이 들어 다음 만남을 취소했다.


애독자는 다르다. 내가 생각이 얼마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지 알고, 일어나지 않은 일을 현실로 데려와 불안을 겪는 강도가 얼마나 센 지도 어렴풋이 안다. 지나가는 감정으로 생을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 기묘하게 든다는 사실도 안다. 곰곰 생각해보니 나 같은 사람이 애인이면 꽤나 귀찮고 번거로울 텐데 그는 어떻게 좋아한다는 마음에 확신을 지닐 수 있었을까? 묻고 싶지만 실망하는 답변이 올까 봐 목소리를 삼킨다. 여기까지 쓰고보니 한편으로 그가 안쓰럽다. 내가 내가 아니었다면 그저 좋은 감정이 드니 가뿐하게 좋다고 밝히고 말끔하게 사귀었을텐데, 나는 이 기억에 데고 저 기억에 아파서 생각이 너무 가득하다. 고민을 많이 하면 실행에 옮길 단계가 차근차근 쌓여서 금세 움직일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상상을 너무 많이 해버려서 한 차례 상대와 연애를 다 한 듯한 기분이 든다.


다가올 봄에 데이트를 잡기는 했지만 불안함이 몰려온다. 내내 아팠으니 슬슬 행복해져도 괜찮지 않냐는 마음과 너무 행복하면 또 잠수 이별을 당할 때 엄청난 후폭풍이 오니 조금만 행복하라는 마음이 동시에 들려온다. 억지로 프리랜서 일을 벌였다. 상대의 바쁨으로 인해 비워진 시간에 공허함이라는 감정이 깃들게 하지 않기 위해서. 친구의 말을 곱씹는다. 연애는 부족함을 채우는 것보다 이미 플러스인 상황에서 서로의 삶에 플러스 알파가 되는 거야. 몸을 일으켠다. 플러스, 오늘의 목표는 플러스다. 아냐, 플러스까지는 너무 거대하다. 원점이 낫겠다. 마이너스에서 조금만 올라오는 쪽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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