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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Mar 06. 2022

밀지 않고 당기기


동생이 나를 두고 떠난 세상이 불현듯 궁금해질 때마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차에 치일 것 같은 아이가 없는지, 지하철에 뛰어드려는 어른이 없는지, 쌩쌩 달리는 도로에서 무단횡단하는 사람이 없는지 살피기 위함이었다. 차에 치이고 싶었다. 어릴 적 한 번 치였으니 두 번 치이는 게 두렵지 않았다. 목숨을 버리려는 마음을 먹으니 갑자기 내 목숨의 효용을 확인하고 싶어졌는데, 희생이 괜찮아 보였다. 내가 구한 사람은 자신을 구하다 내가 떠났음을 알고 목숨을 빚진 부채감이 들어 안 그래도 무거운 삶이 더욱 무겁다고 느껴지겠지만, 누군가 나를 대신하고 떠나면 삶의 귀중함을 알아서 더욱 삶을 사랑하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상상을 했다. 만일 아니라면 처음에는 그저 힘들기만 하겠지만 목숨에 있어서만큼은 배려하지 않고 한 번쯤 이기적이어도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시간을 유영하며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난 후부터, 미래가 차츰 기대되는 후로부터 버리고 싶은 가벼운 삶에 점점 무게가 실렸다. 이전처럼 삶을 저물 용기는 줄어들었지만 당시에 누군가를 살리고 떠나겠다는 상상을 끊이지 않고 해서 만일 누군가 내 앞에서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면 나는 온 힘을 다해 그 사람을 밀어낼 힘과 생각이 충분히 있다.


친구와 맥주잔을 기울이는데 배려라는 가치가 대화 주제로 떠올랐다. 친구는 기분이 나쁘면 함께 일하는 동료의 기분이 덩달아 상하게 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커피를 사는 나의 배려를 칭찬했다. 가만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말을 더했다. 하긴, 배려가 없지는 않은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거든. 이라고 운을 떼며. 누군가 내 앞에서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면 나는 주저 않고 몸을 날려 그를 밀어낸 뒤 세상을 떠날 마음을 아직까지 굳건하게 가지고 있다는 말을 더했다. 친구의 눈가가 붉어졌다. 요아야, 희생은 숭고한 가치지만 네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고 고개를 숙이는 친구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다가 우선 울음부터 그치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무심코 이런 말을 꺼냈다. 아, 알았어, 안 밀고 당길게. 당기면 상대도 나도 모두 사는 거잖아.


내 입으로 말해놓고 한참을 놀랐다. 달려오는 차 앞에서 당황해 눈을 깜빡이는 상대를 만나면 몸을 던져 대신 치일 게 아니라, 어렵겠지만 내 쪽으로 힘껏 안으면 그게 상대도 나도 살리는 묘책이었다. 이제껏 상대를 밀어내고 살리는 방법을 선택지에 둔 채 두리번거리며 발을 움직였는데 꼭 그 방법이 아니어도 누군가를 살리고 싶다는 바람을 실현할 수 있었다. 원래는 바람 안에 세상을 떠나고 싶은 하나의 마음이 들어 있었으니 치이는 과정까지 그려냈다. 이제 스스로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해진 나는 누군가를 안겠다는 다짐을 한다. 제 발로는 떠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물론 다짐이 흔들릴 때도 있다. 모두가 나를 떠나고 나는 영영 미움받으리라는 기이한 걱정이 들 때. 그러면 그때의 장면을 현실로 만나지 않게 하기 위해 도피하고 싶은 열망이 든다.


네가 나를 싫어할 줄 알았어, 내가 뱉은 말로 인해 네가 나를 미워할 줄 알았어, 친구를 앞에 두고 우려했던 걱정거리를 고백하자 친구가 웃었다. 아닌 말만 골라서 잘하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딱딱하게 가득 채운 둔탁한 걱정들이 동그라미가 되어, 동그라미가 작은 점이 되어 머리 밖으로 굴러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현재로 데리고 오는 습관이 사실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힘을 품은 말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닌 말만 하니까. 그렇다면 모두가 나를 버린 탓에 홀로 남겨진 뒤 청승맞게 울며 술을 마시다가 세상을 떠나겠다고 결심하는 일련의 생각들도 모두 아닌 게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일. 일어나지 않을 일. 그러니 그 걱정으로 누군가를 밀어내고 세상을 등지겠다는 다짐도 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니려나.


기억력이 나빠서 무기력과 불안을 만나 놀라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어깨 운동을 할 예정이다. 전속력으로 달린 뒤 반대의 힘을 빌려 누군가를 당기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깨 힘이 중요하니까. 어깨를 두드린다. 내가 사라지는 게 싫다며 눈물을 보이던 친구를 만나면 빠르게 달려 그 친구를 내 쪽으로 힘껏 안는 연습을 하겠다는 상상을 한다. 상상을 한다는 행위는 그대로인데 기분이 좋은 걸 보면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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