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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Feb 20. 2022

자살 유족에게 해서는 안 될 말


  이제 막 스물여섯이 된 친구들은 동생의 부고를 듣고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어떤 친구는 울었고 어떤 친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떤 친구는 무슨 말이냐 되물었고 어떤 친구는 사실 나도 같은 경험이 있어 애도 중이라 했다. 우는 친구에게는 나 대신 울어주어 고맙다는 감정이 들었다. 되묻는 친구는 나처럼 당황해주어 감사하다는 감정이 들었다. 내밀한 사연을 밝힌 친구에게는 그간 알아주지 못했음에 미안함과 더불어 그런 내게 솔직하게 사연을 밝혀주어 고마웠다. 커다란 울음이나 기다란 공백 같은, 겉으로 표현하는 수단은 상관이 없었다. 나와 떠난 내 동생을 걱정하는 진심만 느껴진다면.


  책을 쓸 마음과 체력이 생길 만큼 따뜻하고 다정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나, 냉혹하리만큼 차가운 현실을 함께 마주했다. 호기심이 문제였다. 섣부르고 괜한 호기심. 언제, 어떻게, 무엇으로, 왜, 어디서, 누구와. 글쓰기 수업에서는 유용한 육하원칙이 밖으로 나오자 상처를 짓무르는 쪽으로 쓰였다. 왜 궁금한 걸까. 애초에 궁금하다고 해서 그 궁금증을 유가족이 모두 해소해야 한다는 권리가 있나. 당혹스럽고 애통한 심리를 느낄 새 없이 가족과 지인은 고인의 변호자가 되어 덜덜 떨리는 입으로 억지로 대답한다. 도통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나야말로 왜 떠났는지 알고 싶다고 가슴을 치면서.


  나는 눈빛을 빛내는 이에게 유언장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만일 있으면, 내용을 알려달라고 물을 당당한 기세였다. 유언이 없다면 떠난 이의 생전 심리를 알 수 없을뿐더러, 남아 있더라도 왜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지에 대한 이유를 요목조목 쓰는 사람은 드물다. 알음알음 접한 유언으로는 남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생을 등지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버렸다고 쉽게 이해하고 빠르게 손가락질하던데, 외려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떠나기 전까지도 남겨진 사람들의 안위를 살폈다.


  동생은 생전에 자신이 사라지면 가족들은 더욱 행복할지 모르겠다는 이상한 말을 했다. 그렇지 않다고 계속 말해봤자 귀에 들어가지 않아서 언제부터는 나도 말을 말았다. 귀찮을 만큼 끊임없이 말해주어야 했다. 네가 있어야 행복하다고. 네가 살아야, 살아주어야 즐거움을 느낄 순간에 비로소 자책감 없이 즐거움을 만끽한다고. 누군가의 유언장에 또박또박 쓰인 제가 없으면 다 행복할 것 같아요, 라는 말에 그런 답변을 달고 싶었다. 잘못된 생각에 확신이 더해질 때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하나뿐인 옳은 결정이라는 판단으로 변한다는 걸 알았다.


  잘못된 확신에 휩싸여 떠나는 쪽으로 택한 사람을, 단순히 떠났다는 사건 하나만으로 삶 전체를 해석한 뒤 유가족을 위로하겠다며 멋대로 욕하지 않기를 바란다. 유가족이 통곡하며 고인을 욕한다고 하더라도, 쉽게 동참해 함께 욕하거나 고인의 편에 서서 너는 잘못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질책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럼 무얼 하냐는 물음이 들 테다. 욕하지도 화내지도, 심지어 수긍도 못 하면 도대체 무얼 해야 하냐고 묻고 싶을 텐데.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금기어로 여겨지는 두 글자로 가까운 사람이 떠났다는 고백을 당신에게 털어놓았다면, 그 사람은 당신을 무척이나 사랑한다는 이야기다. 가만히 있어도 엉망진창인 얘기를 듣게 되는 차가운 현실에서, 그 사람이 당신을 구태여 찾았다는 뜻은 당신은 그대로 가만히 있어도 위로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즉시 목격자와 가족은 잠재적 살인자로 여겨진다. 왜 떠난 것 같냐는 취조는 경찰에게 충분히 당했다. 모르겠다는 울음 섞인 대답도 셀 수 없이 했다.


  나는 경찰을 마주 본 채 말을 쥐어 짜내면서 온 가족이 비행기를 타고 올라와 다행이라는 지나치는 생각을 무시하고자 애썼다. 같이 산다면 우리는 살인 혐의가 없다고 말해야 하는데, 엄마와 아빠는 말도 못 할 정도로 울어서 차마 대답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다. 떠난 동생은 떠난 할머니의 첫 번째 목격자였고, 따라 혐의가 생겨 엄청난 시간 동안 조사받았다. 그날의 충격적인 사건 이후 동생은 꽤 오래 방에 틀어박혔다. 사람으로서 알지 못하는 일에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혐의를 풀고자 일방적인 질문 세례를 당하고 나온 이들에게 다시 질문하는 행동은 고이 넣어두어야 한다.


  덧붙여, 위태롭게 입을 뗀 사람에게 그게 사실이냐는 질문도 참아야 한다. 번호 정리부터 사망 신고까지, 남은 사람들은 그가 떠났다는 증명을 계속해서 해나간다. 믿기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정말이냐고, 그럴 리 없다고 소리 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니 나보다 더 화내 주는 외침에 위로받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진심이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섣부른 질문이 아니라, 당신과 같은 마음이라는 진심 어린 태도가 필요하다.


  그랬구나, 네 마음은 어때.


  이 두 문장을 들었더라면 나는 조금 더 빠르게 세상에 나왔을 텐데. 흘려보내지 못할 아픈 얘기가 너무도 많이 고였다.


  뜬금없이 당신이 떠올랐다. 만일 세상을 떠날 생각으로, 내가 없으면 사람들은 더욱 행복하게 잘 지내리라는 잘못된 확신으로 마지막 용기를 더해 이 글을 연 당신이라면, 오지랖이라는 걸 알면서 소리친다. 절대 그렇지 않아. 당신 덕분에 행복이라는 감정을 온전히 느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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