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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Feb 18. 2022

연약한 모습은 보기 싫어요


  친구가 포장된 박스를 내밀었다. 겉면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호두과자가 쓰여 있었다.


  “특이하게 버터가 함께 들어있어. 오늘 제주로 간댔지? 가족들이랑 나눠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박스 하나를 열어보니 마흔 알의 호두과자가 일일이 포장지로 싸인 채 오밀조밀하게 들어찬 모습이 보였다. 박스 하나로도 충분한데 손이 큰 친구는 무려 두 박스를 건넸다. 고맙다는 인사도 모자란데 나도 몰래 속으로 되뇌던 말을 굳이 밖으로 꺼내버렸다.


  “가족이랑 같이 안 사는데.”


  친구의 당황한 얼굴을 보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본가와 집이 가까우니 꼭 본가에 들러 가족들에게 호두과자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친구는 배웅할 때까지 괜한 짐을 얹은 것 같아 미안하다고 얘기했다. 나야말로 미안해서 더 큰 몸짓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그렇게 제주에 도착한 다음날, 욱신거리는 마음을 애써 모른 체하고 택시를 타고 본가로 향했다. 가면 반질반질한 아빠의 새 포크레인이 나를 마중하러 나와 있을 것만 같았다.


  아빠는 삼십 년간 포크레인을 운전했고, 어렸을 적 나는 그 사실이 몸서리치게 부끄러웠다. 친구네 아빠는 매끈한 정장을 차려입고 회사를 다니는데 내 아빠는 새벽 일찍 현장에 나가 흙을 펐다. 아빠에게서는 늘 쿰쿰한 냄새가 났다. 비싼 운동화를 선물 받아도 일주일만 현장에 다녀오면 모래로 브랜드가 지워졌다. 늦잠을 자서 지각을 할 때면 아빠는 오 톤 트럭을 운전해 나를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나는 일부러 살 물건이 있다며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문구점 앞에 내려달라고 부탁하기 일쑤였다. 아빠가 하루 벌어먹고사는 사람이라는 걸, 도로에서 시끄러운 소리로 주목받는 포크레인을 운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철없는 어린이의 푸념으로 여겨질 텐데, 사실 내가 아빠를 가장 부끄러워한 이유는 아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 때문이었다. 아빠는 나와 동생을 때리며 화를 해소했다. 제때 입금이 되지 않아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동생과 싸우는 소리가 시끄럽다며 매를 들었다. 거울이 깨졌고 머리에서 피가 났다. 팔에 금이 갔고 다리에 연두빛 멍이 들었다. 친구 누군가 아빠를 존경한다고 하면 그것만큼 신기한 적이 없었다.


  악역의 서사는 궁금해하지 않는 내게, 그래서 아빠라는 악역의 가련한 서사는 당최 궁금해하지 않는 내가 어른이 된 후부터 그의 몸에 밴 케케묵은 악습과 나약한 인간이라는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 된다. 내게는 작은 삼촌인 아빠의 동생이 중학생 때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가 내 동생을 잃은 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는 인생 선배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다. 아빠의 큰형이 아빠를 때리며 스트레스를 풀었다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다. 나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한 귀로 말을 흘려보냈다. 궁금하지 않다고, 아빠가 피해자라고 해서 내게는 가해자인 아빠를 평생 용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아빠가 안쓰럽다고 느낀 건 다름 아닌 포크레인이었는데, 아빠는 삼십 년을 몬 포크레인을 청산하고 빚을 져 새 포크레인을 마련했다. 아무도 돈을 벌지 않는다고 잔소리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삼십 년 동안 몬 포크레인은 부속품이 단종되어 고장이 나도 고칠 수 없었고, 코로나로 일이 확연히 줄었는데도 아빠는 오 년의 고민을 끝으로 포크레인을 장만했다. 문제는 포크레인이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조종된다는 거였다. 아빠는 배를 타고 제주까지 내려온 포크레인을 본 뒤 술을 마시고 전화를 걸었다.


  “포크레인이 스마트폰이 되어버렸어.”


  이전에는 밟으면 가고 밟지 않으면 멈췄던 포크레인이 이제는 몇 가지의 버튼을 누르고 잡아당겨야만 간다고 했다. 아빠는 훌쩍이는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했다. 빚을 져 포크레인을 제멋대로 장만해 미안하다고, 애초에 부잣집에서 태어나지 못하게 만들어 미안하다고, 돈이 없어 고시원에 살게 해서 미안하다고. 나는 따라 울고 싶지 않아 억지로 꿋꿋한 목소리를 내었다.


  “처음에 아빠 스마트폰 못 했지. 그런데 지금은 넷플릭스 보고 라디오 듣고 다 하잖아. 조금만 길들이다 보면 포크레인도 저절로 알게 되겠지. 나한테 전화한다고 뭐가 달라져?”


  못내 차가운 목소리에 아빠는 눈물을 멈추고 네 말이 맞다며 읊조렸다. 얼얼한 통화를 마치고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이렇게 외로울 수가 없었다. 허리띠를 채찍으로 휘두르던 그가 포크레인 하나에 쩔쩔맨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나는 아빠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씩씩하게 컸는데.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기 위해 친구들과 대화하지 않고 공부만 했던 이유는 피해자인 내 목소리를 경찰이 피해망상으로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목소리에 권력을 담으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제 권력은 필요 없었다. 아빠에게 복수를 하겠다던 뜨거운 감정이 차분히 내려앉은 지 오래였다.


  호두과자를 들고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침대에 누워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나는 무던하게 탁상 위에 호두과자 두 박스를 놓고 집안을 두리번거렸다.


  “아빠는?”

  “일 갔어. 오만 원이라도 벌겠다고 나가더라.”

  “새 포크레인까지 샀는데 오만 원?”

  “응. 기름값 빼면 공짜지.”


  한숨을 참고 미래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저 멀리서 아빠의 포크레인 소리가 들렸다. 내 일상이 멈췄던 소리. 오로지 아빠의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걸어 다녀야 했던 오후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나는 창문을 열어 아빠의 포크레인을 슬쩍 훑었다. 새것 아니랄까 봐 눈이 아프게 반짝거렸다. 나는 빠르게 창문을 닫고 가방을 들었다.


  “이제 갈게.”

  “지금 왔잖아. 벌써?”


  고개를 끄덕이고 운동화를 동여맸다. 아빠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넓은 보폭으로 정류장에 다다라 오는 버스에 몸을 맡겼다. 카페로 도착해서는 마음을 알아차리기 위해 노트북을 열었다. 술을 마시고 조금만 내 얘기를 들어달라며 앞에 앉아달라는 아빠의 처량한 모습에 마음과 달리 의자에 앉아 리액션을 하는 나를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나쁜 사람이라는 잔상이 아로새겨져 있어서, 도무지 아빠의 연약한 모습만큼은 알고 싶지 않다. 오랫동안 복수만을 꿈꿔왔는데 시간과 노력을 낼 만큼 복수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다는 걸 아는 건 상상보다도 더 괴로운 일이다.


  아빠가 사라지기만을 평생을 꿈꿔왔는데 이제는 아빠가 빠르게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이한 마음을 품는다. 그 이상한 마음이 밉다. 그가 불쌍하게 느껴지는 내 자신이 싫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나는 나를 싫어하지 말자는 목표를 품고 있으므로 결국 호두과자를 내려놓고 도망쳤다. 언젠가는 이런 고민을 했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친구가 내게 건넨 말처럼, 그러니까 이 호두과자에는 팥과 버터가 들었다고, 그걸 사람들은 앙버터라 부른다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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