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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해석하고 해독하는 능력

by 현요아


Prologue.

아픔을 해석하고 해독하는 능력



이 책으로 브런치북 대상을 받았다. 그건 1년간 써온 이야기가 책으로 묶여 빛을 본다는 뜻인데, 한창 기뻐해도 모자랄 시간에 두 가지 이유로 악몽을 꿨다. 첫 번째는 허락이었고, 두 번째는 자격이었다. 책은 스스로 생을 등진 동생의 이야기로 시작하므로 글의 바탕이 되는 주인공에게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본가인 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출판사로 건너가 계약서를 쓰는 동안에도,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순간에도 어김없이 온통 그 생각에 사로잡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얼굴로 날을 지새웠다.


네 얘기를 써도 되냐고, 네가 떠난 뒤에 겪은 내 심리를 적어도 되냐고 물었지만 답을 받을 수 없었다. 출간 이후 동생을 글감으로 이용했냐는 구체적인 악플이 달리는 상상까지하자 집필을 포기해야 할지 고민했다.


불안에 잠겨 일기를 끄적이던 때, 불현듯 일곱 살 때부터 동생이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났다. “언니는 글만 써.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언니가 돈 걱정 없이 쓰게 해 줄게.” 그 말을 오래, 그리고 자주 떠올렸다. 동생이 떠난 후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동생의 노트북을 열었다. 과제를 하기 위해 연달아 자판을 눌렀을, 동생의 손길이 닿은 노트북으로 책을 마무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언니로서 동생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언니, 나는 왜 살아야 해? 세상을 사는 것보다 끊는 게 더 쉬울 것 같은데 왜 굳이 힘을 내야 해?” 마땅한 답을 찾기 힘들어 미루고 미뤘던 대답을 동생을 보내고 난 뒤에야 조금씩 찾았다. 완벽한 답이란 없어서 10년 뒤의 나는 또 다른 답을 품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로서는 최선의 답을 내놓을 준비가 됐다.


자살 유족 치료비 지원 사업으로 심리 검사비를 지원받았다.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미리 걱정하는 범불안 장애와 조울증이라 불리는 제2형 양극성 장애, 충격적인 사건을 겪어 사건의 잔상이 남아 자신을 괴롭게 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총 세 개의 진단이 따라붙었다. 심리 검사 선생님이 부르는 기다란 숫자를 거꾸로 읊고, 알록달록한 큐브를 시간 내에 맞춰 그림과 같은 도형으로 만들었는데, 유독 기억력만 낮게 나왔다. 충격적인 사건을 맞닥뜨려서 조금 오랫동안 건망증이 이어지리라는 해석이 덧붙었고, 선생님의 말씀대로 생활에 천천히 지장이 갔다.


글 한 편을 쓰며 내가 뭘 쓰는 중인지 잊었다. 책을 한 권 다 읽고 다음 날 같은 것을 읽어도 처음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에세이는 기억을 되짚어 쓰는 분야이므로 에세이스트라는 자격을 상실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렇게 부족한 내가, 어렸을 때 바느질만 하면 꼭 다치고야 말던 내가 한 땀 한 땀 코를 꿰듯 당신에게 글을 보낸다면 그것이야말로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번듯하게 나와 서점에 자리 잡겠지만, 정작 작가는 깜빡거리며 썼으므로 진심은 쭈글쭈글한 모양으로 서툴게 제작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최선을 다해 문장을 골랐고, 당신은 선뜻 책을 집어 읽기를 택한 용기 있는 사람이므로 문장 속 숨겨진 진심을 찾아낼 테다.


동생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한 때는 스물여섯이고, 스물여섯이라는 나이는 경험을 나누기보다 배우는 쪽으로 여겨지기에 어린아이가 삶을 꿰뚫은 척 으스댄다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도 나이라는 한계에 구애받지 않고 죽음과 삶을 논하고 싶다. 어떤 면에서는 지식도, 상식도 부족하겠지만 그저 당신이 나와 함께 살았으면 하는 소망으로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담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른 작별을 한 사별자에게,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외로움을 느끼는 나날이 늘어 가는 사람에게,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 더 나은 미래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닿는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사람인지라 표현에 한계가 있어 어떤 문장은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겠지만, 나는 결코 당신에게 해를 가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오래 당신의 편이고 싶다.


대인기피증을 심하게 앓을 무렵에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친한 친구 몇을 불러 모아 유언을 밝혔다. 내가 느끼는 아픔 외에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못해서, 자기 연민이라는 불행 울타리를 두를 때여서 마음껏 축하해야 하는 친구의 생일날임에도 눈치 보지 않고 세상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삶을 지속할 힘이 없다고, 짧은 인생이었지만 사는 동안 너희들이 내 친구가 되어 줘서 고맙다는 말에 친구들은 어른이라는 신분도 잊고 엉엉 울었다. 꺼이꺼이 통곡했다. 그러고는 말을 번복할 때까지 나를 보내지 않겠다며 막차도 놓치고 첫차도 놓치게 했다. “아, 알았어. 안 죽을게”라고 건성으로 답하면 더 잡는 식이어서 계획 같은 것은 세우지 않는 내가 “내일은 뭘 할게. 내년에는 어떻게 살게. 살아서 더 예쁘고 좋은 거 많이 볼게. 지금이 끝이라고 생각 안 할게” 하고 느릿하게 말한 뒤에야 겨우 집을 나올 수 있었다. 물론 그 일이 있은 후에도 나아지지 않아서 자고 일어나면 친구들이 울던 장면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되지 않아 외로웠다. 스스로 묻고 답한 뒤에야 비로소 덜 외롭게 땅에 설 수 있었다.


당신이 이 책을 읽은 후 모든 내용을 잊어도 괜찮다. 시간이 지나 친구들이 울던 장면이 꿈처럼 옅어졌듯, 책을 읽은 모든 기억을 흐릿하게 둬도 좋다. 다만 나와 이 책에서 만난 일은 변치 않을 진실이므로 당신이 조금 더 든든하기를, 책을 덮고 나서는 스스로의 아픔을 면밀히 해석하고 해독하기를, 그래서 기어코 불행 울타리를 깨고 나와 닿음이 소중해진 사회에서 온기를 나누기를 바란다. 우리에게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



불행 울타리를 깨고 나온 밤에,
현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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