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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Jul 19. 2022

출간 후 우울


연인이 책을 덮으며 말했다.


“조금 아깝다.”

“뭐가?”

“좋은 얘기가 너무 많이 쓰였어. 이 책은 한 권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세 권으로 나눠도 될 것 같은데.”


얼굴이 붉어질 만큼 쑥스러워지는 얘기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늘 지금 쓰는 책이 마지막이니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소진하는 게 옳다는 생각에 다음 책에 담고 싶은 문장도 한데 넣어 엮었다. 지금 이 순간 과거의 나와 대결한다면 무조건 내가 질만큼 에세이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을 때였다. 누군가는 그 상태를 보고 몰입이라 칭했다. 몰입하는 순간이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건강을 소홀히 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과민성 방광염이 도졌고 출혈로 인한 요로 결석까지 의심된다고 했다. 하루에 다섯 알만 먹으면 타인을 괴롭히지 않고 무사히 하루를 영위할 수 있었지만 몸을 챙기는 약까지 더해지자 총 열 알이 되었다. 물을 따르며 이렇게 많이 먹는 게 맞을까, 중얼거리는 내게 연인이 웃음을 보였다. 나는 안 챙겨도 돼, 너를 조금 더 많이 챙겨, 그 다정한 말을 사탕으로 삼아 입 안으로 혀를 굴렸다.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가 세상에 나온 지 어느덧 일주일이 흘렀다. 그간 온라인 서점의 판매 지수를 확인하고 오프라인 서점의 에세이 신간 코너를 기웃거렸다. 채 팔리지 않고 두툼하게 쌓인 책들이 영롱해서 그게 미웠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으면 좋을 텐데, 하다가 도리어 사람들을 울적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 걱정은 사인회까지 이어졌다. 출판사와 상의 없이 교보문고 전시 월 앞을 서성거리며 독자님들을 만나는 일을 꾸렸다. 달걀을 맞으면 어쩌나 싶은 내 손에는 마들렌이 들려 있었고, 대학 동기부터 브런치 독자님까지 내적 친밀감이 가득한 이들이 나를 반겨 주었다. 그러나 무례한 이도 있었다. 어떤 이는 “왜 이렇게 살이 쪘어? 못 알아볼 뻔했네.”하며 웃었다. 좋은 순간을 망치기 싫어 나도 따라 웃었지만 그날 연인을 괴롭혔다. 정말, 나, 못 알아볼 정도로 많이 변했어?


출간이라는 목적을 이루면 행복이 뒤따라오리라 여기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막 등단을 한 나에게 “앞으로 글 열심히 써야 해요!”라고 조언한 작가님의 말씀이 맞았다. 하루에도 책은 몇십 권씩 쏟아지고 에세이라는 인기 장르에도 순위 경쟁이 치열하다. 순위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나 혼자 쓴 책이 아니어서 손톱은 도통 길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등단 후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말씀 주신 작가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다. 총알을 많이 준비해 두어야 한다고. 기다란 작가 생활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늘 여분의 글감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글감을 모두 쓴 것 같다. 이제 내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눈을 돌려야 할 시간이다.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장대한 서사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글쓰기 수강생 분들을 만나 가볍게 북 토크를 열었는데 어떤 독자님이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솔직하게 쓸 수 있냐고, 치부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가감 없이 밝힐 수 있는 동력이 무엇이냐고. 나는 부끄러울 게 없다고 말한 과거를 돌이키며 그렇게 답할까 망설이다가 최근 바뀐 생각으로 답변을 정리했다. 소화를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소화하지 못한 아픔을 글감으로 이용하면 스스로만 다치는 것 같아요. 그 아픔을 내보여서 비슷한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을 때 내보이면 아마 다른 독자님에게 저에게 해주신 질문을 그대로 받으실지 몰라요. 어떻게 그렇게 솔직하게 쓸 수 있냐고. 담담하고 차분하게 세상이 기피하는 이야기를 쓸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왔냐고.


동화 작가로 등단하면 러브콜이 쏟아질  알았건만 반년이, 아니  년이 지나도 아무 출판사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브런치에서 대상을 받은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대상을 받아 출간을 했다고 상상처럼 다음 출간 계약이 물밀듯 몰려오지 않는다. 그러니 출간  대박이 나리라는 행복 회로를 잠시 덮고 우울을 얕게 껴안으며 다음 글을 준비해야 한다. 지난 아픔은  권으로 만들었으니 행복 역시  권으로 만들  있겠지. 사랑스러운 글과 사랑스러운 사람. 애정을 듬뿍 컸다고 착각할 만큼 건강한 글을   있는 날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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