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작가라고 말하면 뒤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등단은 하셨나요, 공저가 아닌 본인의 이름을 걸고 단독으로 책을 낸 전적이 있나요, 소설가인가요 시인인가요, 동화 작가인가요 희곡 작가인가요. 동화로 등단을 했고 책은 두 권 냈다고 말하면 그제야 그들은 작가라고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인정해주겠다는 만족스러운 그들의 반응을 보며 매일 궁금증이 들었다. 어느 정도 항변을 하고 싶었다. 저는 작가 지망생이었을 때도, 다른 작가의 책을 필사하는 습작생이었을 때도 작가라 불리는 지금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요. 물론 필력이라거나 소재를 잡고 이야기로 이끄는 능력은 늘어났겠지만, 그건 제가 꾸준히 글을 썼기 때문이지요. 지망생일 때와 한국에서 예술인으로 인정받았을 때도 저는 이전과 크게 도약한 게 없었어요. 그저 하루하루 정해진 분량의 책을 읽고 글을 쓸 뿐이었어요.
작가라는 타이틀이 멋져 보여서인지, 돈을 내면 브런치 작가로 만들어준다는 강의라거나 주요 문예지에 등단을 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과외가 팽배하다. 이 글을 올리면 찔린 사람들이 구독을 취소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내 목소리는 꼭 밝히고 싶었다. 등단을 하지 않았든, 책을 내지 않았든 꾸준히 글을 쓰고 훗날 책을 내고 싶다는 열망을 간직한 사람 모두 작가라 생각한다. 그러니 브런치에 등록된 프로필에 작가 지망생이라는 단어는 사라졌으면 좋겠다.
나 역시 이전에는 지망생이라는 타이틀을 단 적이 있다. '동화 작가 지망생'으로, 문예지나 공모전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으니 지망생이라는 호칭이 합당하다고 스스로 여기며 아무런 고민 없이 지망생이라는 직함을 올려두었다. 그러나 동화 작가가 되고 동화 작가로 불리는 지금, 습작생 시절만큼 동화를 많이 읽고 많이 쓰냐 하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동화 작가라는 호칭은 지망생일 때가 더욱 적합했다고 본다. 지금 나는 동화보다 에세이를 더 많이 읽고, 에세이를 더 많이 쓰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등단한 동화 작가님이라고 나를 소개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고작 단편 하나만 어떻게 심사위원의 기준에 통과했는데 그 성과 하나 덕분에 작가가 아니었다가 작가라고 불리는 일이 과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지 의문이다.
존경하는 정여울 작가는 작가라는 직업에 관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작가란, 단지 책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매일 글을 쓰며 온갖 희로애락을 느끼는 사람이 아닐까요. 매일 글을 쓰며 나 자신을 조금씩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가고, 식물의 나이테처럼 조금씩 자신을 갱신하여, 마침내 언젠가는 깨달음의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아름드리나무로 자라게 될 사유의 묘목을 키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여울, 끝까지 쓰는 용기
그러므로 작가는, 단지 책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매일 글을 쓰며 온갖 희로애락을 느끼는 사람이다. 브런치 에디터의 입맛에 통과되어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고 그것에 골몰해 계속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브런치 작가에 탈락하더라도 꾸준히 다이어리든 블로그든 자신의 공간에 글을 올리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등단을 했으니 진정 작가고, 책을 냈으니 진정 작가고, 브런치 심사 기준에 통과했으니 진정 작가라고 말하는 건 모순이라 생각한다. 등단을 했든 몇 권의 책을 냈든 그 성과에만 머물며 꾸준히 글을 쓰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지망생이라 생각한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니 지망생과 작가라는 타이틀에 관한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어렵사리 쟁취한 작가라는 직함을 모두가 갖게 되면 권위가 흩어진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을 것 같다.
그러면 뭐 어때, 작가라는 직업은 숭고하고 대단하니 지망생과 작가를 둘로 나뉘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박할 여지가 많다. 나는 모두가 작가였으면 좋겠다. 스스로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자신의 아픔과 행복을 글로 나누고, 사람들이 작가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와 다른 세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우리가 손에 손을 잡고 다양성을 포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나는 브런치 대상 작가이며 동화 작가이며 등단 작가이고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인정한 예술인이지만 더는 글을 쓰지 않고 과거에 이룬 작가라는 성취에 몰입한다면 그게 과연 작가일까. 오히려 작가를 꿈꾸며 매일 일정 분량의 글을 쓰는 사람이 작가에 근접하다.
지망생이라는 말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모두가 스스로를 작가라 부르고 "매일 글을 쓰며 온갖 희로애락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 글을 쓰는 행위가 자연스러운 행위로 굳혀졌으면 좋겠다. 작가는 너무 높고 원대해 보여 일주일에 한 편 이상 글을 씀에도 스스로를 지망생이라 부르는 이가 있다면, 오늘부터 스스로를 작가라 불렀으면 좋겠다. 책을 냈지만 더는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저자이고, 책을 내지 않았더라도 계속 쓰는 사람이 작가이므로. 나는 이 글을 씀으로써 작가라는 직업을 유지했다. 작가는 한순간 반짝 빛나는 직업이 아니라, 계속 이루어야 하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