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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Sep 14. 2021

작가가 뭐라고


사람 일은 어디로 어떻게 흐를지 몰라서 어쩌다 출판사가 아닌 미술관에서 잠시 홍보 일을 하게 되었다. 미술 쪽은 처음이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발을 들였는데 그만 못 볼 꼴을 봤다. 작품을 출품한다던 그는 자신보다 열댓 살은 많을 직원에게 하지 말아야 할 난폭한 말을 서슴없이 전하고 있었다. 이름 뒤에 달라붙은 '작가님'이라는 호칭에 애꿎은 이마가 붉어졌다. 글과 그림은 다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다르지도 않다. 그와 나는 다른 나이임에도 예술을 익히고 사용한다는 이유로 작가라는 같은 호칭을 얻는다. 작품을 내보여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때때로 동경이나 감사의 마음을 받지만 그렇다고 그게 누군가를 제멋대로 휘두를 권력으로 탈바꿈되는 건 아니란 말이다.


삶 자체가 예술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성공에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버렸다. 하루빨리 성공하고 싶다는 열망과 어떠한 노력 없이도 영감이 찾아오길 바라는 욕심을 고이 접고 사는 데 매진했다. 아무리 바빠도 밥은 여유롭게 꼭꼭 씹어 먹는 습관이나 침대에 누우면 곯아떨어질 것 같은 밤에도 꼬박꼬박 나무 향이 나는 필로우 미스트를 뿌려 더 편안하게 잠에 들 수 있게끔 나를 돌보는 일에 집중했다. 덩달아 천천히 삶을 대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팔십 년이나 살아야 이 복잡한 삶을 끝낼 수 있겠군'에서 '비 내리는 풍경을 보는 날도 팔십 년밖에 안 남았네'라는 사고방식으로 바뀌는 일을 지켜보는 건 그동안 깨우치기 어려웠던 새로운 기쁨이었다.


그런데 오늘 익숙한 형태의 갑질을 보자 다시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랫 직원이 아닌 그의 옆에서, 혹은 그의 위에서 그에게 잘못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그렇게 사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당장 사과하세요."라고 조곤조곤 얘기해도 "당신이 뭔데?"라는 되물음 없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직위를 가지고 싶었다. 사실상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갑질이 모두 사라지면 정말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내 삶이 이어지는 순간에는 그런 풍경이 도래할 일이 없어 보였다. 지금도 충분히 그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겠지만, 그러면 갑질을 당한 직원분은 곤란해질 것이다. 나는 상사가 아니라 후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이도 가장 어리고 경력도 짧은 막내다.


등단하지 않아도, 개인전을 열지 않아도, 미술을 전공하지 않아도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들 모두 작가이며 아늑하고 작은 방에서 꾸준히 그림을 그려 인스타그램에 올려도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받을 수 있는 멋진 시대다. 갈고닦은 재능이나 어쩌다 주어진 재능으로 사람들의 환호를 받을 수 있는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가만히 고민한다. 나 또한 작가 뒤에 주어진 '님'이라는 점 하나에 어깨가 몇 번 들썩인 경험을 안고 있어 그의 뽕이 생기게 된 경위가 어느 정도 짐작 간다. 그래서 더 괴롭다. 내가 직원의 입장으로 작가를 바라보는 경험이 없었더라면 혹시나 저런 존재가 되어버릴 수 있겠구나 하는 얕은 가능성에 몸서리가 난다. 간혹 멋진 작가가 되기를 원하느라 우선순위를 놓친 이들이 있다. 멋진 작가 보다 우선되어야 할 단계는 멋진 사람이다. 나는 멋진 사람 자체만으로 완전한 직업이라 생각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가 열렸고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많은 작가들이 공모전에 몰렸다. 대상을 받으면 상금은 물론이거니와 유명한 출판사에서 책을 내며 명예도 얻을 수 있으니 논픽션을 쓰는 사람에게 이런 공모전은 손에 꼽을 만큼 희소한 기회다. 인디에서 메이저가 될 기회니까. 공모전에 자원한 수많은 작가님들 중에 사람님은 몇이 될지 궁금하다. 이번 공모에는 조금 더 갈고닦아 내려 했지만 그냥 내야겠다. 하루빨리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또 생겨버렸다. 물론 사람님을 향한 노력이 먼저다. 누가 뭐래도 그게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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