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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Jul 28. 2022

세상에서 내가 제일 못나 보일 때


어제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오늘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나 보인다. 내 사연만 유독 기구해 보이고 거울을 봐도 못생겨 보일뿐더러 서평단으로 받은 신간 청소년 소설은 첫 장을 열자마자 질투가 샘솟아서 제대로 쓰지 못할 것 같은 확신이 든다.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면 에세이 뉴스레터를 시작해야 하는 걸까, 다른 작가님들은 어떻게 출간하자마자 바로 다음 책의 출간 계약을 이어나가는지 부럽고 아득하기만 하다.


내 책을 담당한 편집자님이 다른 작가님과 인스타그램에서 댓글로 웃고 있으면 편집자님의 사랑이 다른 작가님을 향했다는 사실에 괜스레 배가 아프기까지 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고, 이전에 쓴 글을 능가하는 글은 앞으로 영원히 쓰지 못할 것 같은 기묘한 확신이 들 때면, 이 지리멸렬한 감정을 이곳저곳에 내놓는다. 그대로 두면 곪아서 뭉쳐버려 자칫 인류애를 잃을 수 있으므로 글로 아픔을 건네고 댓글로 사랑과 용기를 되받는다. 이기적이더래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라도 방출하지 않으면 안 그래도 긴 밤이 더욱 길어지고 말 테니까.


서평단 주소를 실수로 본가로 적는 바람에 집에서 이십 분 떨어진 본가에 다녀왔다. 방학을 맞은 막내가 배를 뒤집고 곤히 자고 있었다. 깨우지 않으려 슬금슬금 다가가 책상에 놓인 책을 집었는데 그 사이 동생이 그만 눈을 떠 버렸다. 나는 머리를 긁으며 미안하다고, 잠을 좋아하는 막내의 코털을 건드린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게임을 제안했다. 넷플릭스에서 나온 게임으로, 눈을 깜빡이면 시점이 과거와 미래로 향하는 신기한 게임이었다. 카메라에 동생의 얼굴을 맞추고 눈을 감았다 떠보라 지시했다. 싫증 낼 것 같던 동생은 의외로 순순하게 눈꺼풀을 움직였고 덕분에 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동생의 침대 한쪽에 앉아 게임하는 풍경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갑작스러운 병으로 게임 속 캐릭터의 가족이 세상을 떠나고 게임 캐릭터마저 저승으로 가는 듯한 느낌의 장면이 연출됐다. "그만할래. 재미없어." 동생이 게임을 끄고 밖으로 나갔다. 눈이 빨개진 동생의 얼굴을 못 본 척하느라 애를 먹었다. 엉망인 누나가 된 기분이었다. 줄거리 정도야 미리 파악해 둘걸, 괜히 게임을 하자고 해서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동생의 상처를 예고 없이 찔러 버린 느낌이 들었다.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애꿎은 동생을 울린 듯한 기분까지 들어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고 짐을 싸서 자취방으로 왔다.


무더운 제주 햇볕을 맞으며 집에 도착하니 얼굴이 벌겋게 익어 있었다. 땀이 목덜미를 따라 등까지 젖어왔고 볼과 이마가 시뻘게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처량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너무 미웠다.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에 맥북을 샀다고 자랑한 어제의 나도, 강의를 한다고 떵떵거린 오전의 나도 모두 부끄러웠다. 내 모습은 하이라이트도 비하인드도 전부가 아닌데 하이라이트를 전시할 때면 비하인드가 생각나고, 비하인드를 보일 때면 하이라이트가 떠올라 그 무엇도 진짜 나 같지 않다. 가짜인 나를 주렁주렁 단 기분이다.


에세이 신간에 무언가 있어 보이는 듯한 글귀를 잔뜩 적어 놓아서 그런지, 매사 현명하고 똑 부러진 모양으로 하루를 빚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부담이 든다. 한 술자리에서 연배 있으신 동화 작가님이 내게 진심을 담아 질문을 던졌다. "요아는 왜 이렇게 기품이 있어? 나이가 생각나지 않아." 그러자 옆에 있던 동료 작가님이 대신 답을 했다. "그러게, 나는 그게 안쓰러워. 조금 더 어린아이처럼 지내도 될 텐데." 제때 답하지 못했지만 일찍이 타인의 눈치를 신경 쓰고 스스로를 더 많이 자책하며 큰 이유는 마음 놓고 칭얼거릴 사람이 없어서였다. 관계적 퇴행을 할 주변인이 없어서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관계를 다룬 책을 읽어서다. 눈치 보지 않고, 모두가 나를 싫어한대도 괜찮다며 잔뜩 꿍얼거리고 싶다. 이 세상이 밉다고, 내게 주어진 상황이 싫다고, 글이 나오지 않는 게 화가 난다고, 동생을 울린 내게 짜증 난다고.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에 기댔다. 반사 신경으로 인스타그램을 켜자 모르는 사람이 나를 구독했다는 알림이 떴다. 프로필을 살펴보니 소개란에 '멋진 사람만 팔로우하는 계정'이라고 쓰여 있었다. 지금 나는 세상에서 제일 못나 보여서 그 괴리감에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고 싶었다.


어느 방을 상상했다. 오늘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커다란 방. 그 방은 노란 조명이 은은하게 켜져 있고, 마음을 홀릴 재즈가 잔잔하게 흐르며 엉덩이를 대면 더는 못 일어날 것 같은 푹신한 소파가 늘어져 있다. 마음대로 간식을 먹어도 되고 영화를 봐도 된다. 그러나 반드시 지켜야 할 한 가지 규칙이 있다. 한 손으로 다른 사람의 손을 따스히 잡을 것. 이어진 온기에 마음이 괜찮아지면 나중에 말없이 그 방을 나가도 된다. 괜찮아졌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들어와도 누군가 이유를 묻지 않는 방이다. 언젠가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그런 공간을 뚝딱뚝딱 만들어야겠다고, 그러니 오늘 내게 주어진 긴 밤도 무사히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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