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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지쳐서는 달릴 수도,
결코 걸을 수도 없어요

by 현요아


사람의 성격은 비단 하나로 규정되지 않지만 내 경우는 하나라고 믿어왔다. 뭐든지 빨리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으로 금방 지치는 단점이 있음. 단점이 있으면 장점도 있다고 했던가, 느릿느릿 꿈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서 나는 일찍이 목적을 정해 빠르게 뛸 힘이 가득했고 그건 정확하고 빠른 일처리를 선호하는 사회에서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에세이집에 들어갈 꼭지 한 편도 두 시간이면 지어냈다. 여유가 남으니 원고를 준비하는 동안 취미로 소설을 쓰는 여유까지 장착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틈틈이 공모전을 준비하며 연애까지 놓치지 않는 사람이 나였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사람들의 물음에는 겉으로는 겸손하게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손을 휘휘 내저었지만 속으로는 그런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자부심을 느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다능인, 같은 시기에 과제를 받더라도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는 사람.


그렇게 이 년간 두 권의 책을 냈다. 더불어 미술관과 산부인과와 독서모임에서 마케팅을 했고 작은 소설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동화 합평 모임도 꾸준히 나갔다.


열렬히 살면 언젠가 모두가 알아주는 작가라는 극적인 변화가 나오리라는 기대를 품었지만, 차례 몇 권의 책을 낸 선배들의 말처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책을 읽는 사람이 너무도 적었다. 엎친 데 덮친 코로나로 대면 인터뷰조차 잡히지 않았고, 신간 북토크는 내가 하고 싶다고 먼저 언급해야 가까스로 열리는 정도였다. 한 분야를 열심히 파고들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결국 불안감을 조장했고, 급기야 에세이를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까지 일었다. 작가라는 세계는, 그러니까 콘텐츠를 소비하는 누구나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은 도리어 창작자인 내게 불안을 가져다주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을 굳이 나까지 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면 입 안으로 주황색 불안 약을 사탕처럼 녹여 먹었다. 선생님은 그 약의 효과가 세 시간도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어서 그런지 세 시간 뒤면 다시 또 초조해졌다.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나와 그의 괴리감에 몸서리치며 잠드는 날이 늘어났다. 이대로 가서는 달리기는커녕 걸을 수, 아니 기어갈 수도 없었다.


초조한 마음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려고 연락처를 열었는데 철 지난 부동산 중개인들의 전화번호만 가득했다. 사무치는 외로움은 달래려 해도 도무지 달래지지 않았다. 사람들에게는 멋진 말을 하면서 정작 내게는 멋진 말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외롭고 쓸쓸하고 괴로운 사람 곁에는 아무도 있어주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들자 술을 연거푸 마셨다. 그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자고 일어나니 긴급 상담센터의 연락이 부재중 통화로 여러 차례 찍혀 있었다.


빨리 달렸더니 빠르게 지쳤다. 스물다섯에 이루어야 할 일과 서른에 이루어야 할 일을 계획해둔 일정이 문제였다. 선생님들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에게 비전맵과 청사진을 요청했고 나는 번번이 작가가 되겠다는 포부로 전시에 올랐다. 마이크를 들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거라며 화장을 고치는 아이들 앞에서 얘기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그 꿈만 이루면 잘 살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것 같았는데 베스트셀러에 한 번 올라갔다고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저 베스트셀러가 되었구나, 출판사를 잘 만나 사람들의 반응을 오늘 얻었구나, 하는 정도였지, 나는 이제 승승장구하고 먼 미래에는 부커상 후보까지 오를지 모른다는 기대는 들지 않았다.


꿈을 꿀 여력이 없었다.


한국 예술인으로 선정되어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수필가로 글을 쓰게 되는 영광을 가졌을 때도 그랬다. 기쁘기는 했지만 그 기쁨이 오래가지 않았다. 내 시선은 언제나 미래에 가 있었고, 늘 현재를 무시했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글을 썼지, 정작 내가 내게 사랑을 주기 위해 글을 쓰던 때는 너무도 옛날 옛적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공공연한 심사위원의 눈에 들기 위해, 창비라는 메이저 출판사에서 상을 받아 소설집을 내기 위해 소재를 갈구하는 일도 지쳤다. 잠시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때처럼, 그저 청소년 소설집이 나왔다는 기쁨이 스쳐 지나갈 터다.


누군가 무거운 눈꺼풀에 지쳐 꾸벅꾸벅 잠을 잘 때면, 선생님은 똘똘하게 수업을 듣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요아처럼 큰 꿈을 가지란 말이야.


그 꿈을 이룬 나는 불안과 무기력과 번아웃을 주렁주렁 달고 하루를 산다. 이대로 성미 급하게 달려서는, 큰 꿈을 이루겠다고 친구들의 생일을 축하하지 않으며 성공 가도를 달려서는 나아지는 게 없다. 내 얼굴을 손가락으로 똑똑하게 가리켰던 선생님의 나이보다 지금의 내 나이가 많아졌다. 나는 그 선생님에게 되레 그런 말을 하고 싶다.


큰 꿈이 뭔데요.

이루면 어떤 기분이 드는데요.

기쁨이 얼마나 오래 가는데요.

선생님은, 선생님이 되어 얼마만큼 기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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