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이 나올 때만 해도 감염병으로 인해 북 토크가 전면 취소되어 한 달에 한 번 사인해달라는 지인들의 요구 없이는 새롭게 책이 나왔는지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책은 수상을 해서 그런지 커다랗게 전시를 열고, 점차 확진자도 준 데다가 야외 마스크도 해제되는 완화의 기미가 보여 어쩌면 오프라인 북 토크가 열릴 것 같기도 하다. 하루하루 책의 문장을 따라 쓰고 생각을 덧붙이는 온라인 강의 중인 밝은 플랫폼에서도 가볍게 북 토크를 제안받았는데, 밥 한 끼 먹자는 예의 어린 얘기처럼 쉬이 지나칠 수 있지만, 실물로 독자님들을 뵙고 얘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앞서 곧 이 책을 읽을 독자님과 진중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겠다는 소망에 너무 좋다고 답해버렸다.
출간일은 7월 11일로 드디어 정해졌다. 나를 찾아온 조울증과 범불안장애와 PTSD가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 이제 사람들은 적은 힘으로 종이를 넘기며 속속들이 알 수 있다. 친구는 내 책의 꼭지 몇 쪽을 슬쩍 읽고서 "요아 책은 방수로 만들어야겠어. 눈물이 너무 많이 나오겠는걸."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울지 않고 담담하게 기억을 불러들여 썼지만 이 내용을 처음 듣는 누군가에게는 잔혹하고 슬픈 얘기로 보일 것 같아 마음이 아렸다. 첫 책 <제주 토박이는 제주가 싫습니다>는 내 지인들이라면 누구나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책은 결이 조금 다르다. 열심히 순화했지만 다소 잔인한 장면도 있을 테고 마음이 아파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의 꼭지도 분명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그런지 친한 친구들에게도 너무 힘들면 억지로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덧붙인다.
전국 서점에 배포될 날이 2주 남은 시점, 내 책을 아무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다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고 내 감정과 의견을 들어주었으면 하는 소망을 지닌다. 날개 돋친 듯 팔려 베스트셀러가 됐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첫 책을 읽고 두 번째 책을 기대하는 독자님들의 애정에 딱 적당히 부응할 정도만 되면 다행이겠다는 마음이 뒤따라온다. 연인은 악플이 달리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플 것 같다는 내 말을 듣고 직접 모든 서평을 다 읽고 좋은 얘기만 건네주겠다고 약속했다. "아픔을 파는 사람과 사귀는 기분이 어때?" 술에 거나하게 취한 내가 비틀거리며 말하자 연인이 말도 안 된다는 딱딱한 표정으로 얼굴을 굳히고서는 또렷하게 읊었다. "아픔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아픔을 돌보는 사람이지." 술에 취하면 눈물이 나오지 않는 사람으로서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모르겠다. 너무 많은 걸 써버렸다. 당최 앞으로 어떤 글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네이버에 실린 내 이름을 언제 없애야 할지 전전긍긍하며 하루를 보낸다. 사람들 앞에서는 밝은 모습을 보이면서 노트북만 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슬픈 얘기를 가감 없이 적는 내게 지쳤다. 이제 책의 성공은 단순히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에 오른 게 아니라, 100쇄를 찍고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오른 게 아니라 에필로그까지 끝까지 읽어줄 독자님이 열 분이라도 계시면 그게 완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슬퍼서 읽다가 알라딘 중고서점에 최상으로 팔았다는 서평이 벌써부터 들리는 듯해 기묘한 기분이 든다. 불행 울타리를 완벽하게 빠져나왔지만 또 언제든 두르고 몸을 감출 수 있어서 부러 더욱 씩씩하게 입을 연다. 나는 아픔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아픔을 돌보는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