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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Aug 08. 2022

균형을 잃어버린 기분


지난 주말에는 에어컨에서 물이 흘러나와 방이 홍수가 되었고 애정하는 사람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집주인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애정 하는 사람은 본인상으로 발인 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나도 떠난 듯한 느낌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렇게 착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내 동생을 포함해 좋은 사람들이 모두 그 세상으로 떠난 것이니 어쩌면 그 세상은 내가 바라던 유토피아가 아닐지 모르겠다는 상상에 빠지자 고요히 방법을 구상했다. 어떻게 하면 쉽고 빠르게 삶을 끝낼 수 있을지에 관한 생각을 하며 정신을 놓은 듯 청소년 소설만 썼다. 일정한 폭으로 뛰던 심장이 순식간 균형을 잃고 쿵쾅거렸다는 장면을 쓰며 마음이 미어지는 듯했다. 태풍의 눈처럼 상처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순간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이토록 열렬하게 아픈 감정을 에세이로 내보내고 싶어서 한참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작은 손 선풍기를 틀고 얼굴에 흐르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를 식히며 하룻밤을 보냈다. 조금 더 객관화가 된 내가 아침을 맞아 등장했다.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싫어한다. 살아보니 시간의 힘을 빌려 몸을 맡기면 어떻게든  자신이 상황을 구하고 무겁다 못해 찝찝한 감정이 잦아드는  맞는 말인  같기는 하지만 소용돌이치는 아픔의 중심에  있노라면 세상을 증오한다. 타인이 내게 건네는 다정한 위로 역시 차마 흡수되지 못하고 해야  일을 잊게 된다. 다만 내가   있는 가만한 일들은 그저 상처를 마주 보는 일뿐이다. 무릎에  커다란 상처는 바지로 어찌어찌 가린다고 하더라도 걸을 때마다 욱신거려 목적지로 향할  없다. 목적지 없이 걷는 자체에만 몰두한다고 하더라도 피가 흘러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마음은 피가 흐르지 않아 표정으로 보이지 않으면 아무도   없다. 입을 열어 아프다고 호소하면 조금은 나아질까 싶지만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악의가 담기지 않은 말이 나를 공격해 상처가 짓눌릴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사서 읽고 한참을 예능에 집중했지만 웃을 때마다 머리에 꽂은 나사 한쪽이 부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에게는 에세이를 쓸 때 감정을 객관화하라고 하지만 그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미처 잊고 입만 나불거렸다. 아픔이 너무 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글쓰기 수업에 나온 사람들에게 조금 더 아픔을 덜고 글로 내보이라는 이상한 말을 했다. 아픔과 고통의 가운데 있는 나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잠으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차오르는데 잠을 자면 해야 할 일을 못 하니 억지로 힘을 내었다. 카페에 오는 발걸음으로 충분해서, 역시나 엎드려 잠만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단단하다. 균형을 잃었다. 삐뚤빼뚤한 보폭으로 침대에 도착해 잠만 자고 싶은 욕구가 든다. 사람들과 이별을 고하고 저 먼 세상으로 떠나고 싶은데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릴 테므로 부러 욕구를 짓누른다. 아픔과 욕구가 함께 짓눌린다.


열흘이 지나면 이사를 한다. 나는 하루에 모든 짐을 박스에 담을 정도로 간소한 삶을 영위하는 편이지만 그것조차도 힘에 부쳐 하루에 한 박스만 정리한다. 아픔과 증오도 하루에 한 박스씩 정리하면 어느샌가 지난 주말처럼 지난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을까. 지난과 불행이 함께 공존해 어느 순간 인생을 살면서 충분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웃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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