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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Dec 10. 2022

자기 의심과의 백일 싸움


선한 마음이 바닥났다는 사실을 알아챈 시기는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말이 언제는 너무나 크게, 언제는 너무나 작게 받아들여졌다는 걸 눈치챘을 때였다. 나를 응원하며 사랑한다는, 힘이 되는 말은 통 가볍게 느껴졌고 내 책이 감성과 얽혀 읽는 사람에게 힘든 기분을 전가한다는, 쉬이 넘길 수 있는 말은 버리지 못할 만큼 무거운 무게로 변해 마음 깊숙이 간직했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나는 늘 비슷한 글만 쓰는 것 같은데, 글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는데, 동네 책방은 문을 닫고 출판계를 빠르게 떠나는 건 지능 순이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자 자기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나를 옥죄었다.


세 번째 수필집이 성사될 무렵에 새로운 출판사 편집자님에게 메일이 한 통 왔다. 처음 기획안을 훑었을 때보다, 그러니까 대략적으로 상상한 것보다 더 어두워서 저희 출판사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달라 아쉽게 다른 출판사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는 얘기였다. 평소에도 어두운 에세이는 그만 쓰라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늘 그렇듯 활기차게 넘기고 다른 출판사에 연락을 하면 그만인데, 꼭 출판사가 아니어도 독립 출판을 하면 그만인데 그 말에 나를 지지하고 지탱하던 모든 것들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도 내 글을 원하지 않는대도 내가 내 글을 원하면 부딪혀 볼 수 있는데 나는 자기 의심에 붙잡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자기 의심에 빠지기 시작하니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 글을 대하는 진심이나 사람을 향한 마음이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이윽고 이대로 문을 닫고 숨어 버리는 게 나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글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고 취업에 도전했다. 이제까지 끊임없이 일했으니 단번에 붙을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몇십 개의 서류에서 탈락했다. 회사와 내가 맞지 않았다고 넘기면 될 텐데 나는 내가 쓴 에세이의 내용 때문에 그런 지 회사를 의심했다. 안으로 파고드는 자기 의심은 어느새 커다랗게 자라나 일면식 없는 다른 사람까지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왜 얼굴과 이름을 내밀고 글을 썼을까, 왜 다른 마케터처럼 브랜드 마케팅 지식이라거나 개발적 지식을 쓰지 않고 솔직한 가족사를 썼을까. 그간 쓴 글을 모두 다 부수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평소보다 화가 많아지고 사람들이 미워져서 몇 명의 소중한 인연을 쳐버리기도 했다. 글을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보낸 다정한 메시지에 답장을 할 힘도 없었다. 내가 쓴 글의 힘을 내가 가장 믿지 못했으니 글이 좋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닿을 턱이 없었다.


글을 놓은 지 어느덧 백 일이 지났다. 책을 서른 권은 낸 작가님께 “쓰지 않으니 어때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마음이 편해 이제 두 발 뻗고 잔다고 답했지만 실은 완벽하게 편안하지 않았다. 날이 지나고 계절이 흘러도 끊임없이 글을 쓰던 내가 사라져서는 아니었다. 글을 사랑하는 마음이 다시금 서서히 자라나고 있어서였다. 상을 받지 않아도, 책을 내지 않아도 되었다. 등단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글쓰기로 인정받지 않아도 되었다. 산란하고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부디 내 세계만 잃지 않기를 바랐던 어릴 적의 내가 떠올라서 그게 꽤 힘들었다. 글을 쓰면서 구독자가 늘기를, 댓글이 많아지기를,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보기를 바랐던 마음과 그러지 못할 바에야 그만두자는 마음이 더해져 글을 놓게 만든 나 자신이 미워서였다. 지금껏 내가 쓰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돈이 되기를 암암리에 바랐다.


십 년이 지나도록 작가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쓰는 사람에게 물었다. 왜 작가가 되려고 하세요, 책을 내면 뭐 하려고 하세요, 책을 낸 뒤는요, 그 뒤에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세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 사람 참 무례하다 싶을 만큼 다짜고짜 묻는 내게 그 사람이 또렷한 눈빛으로 답했다. 인생은 점이 아니라 선이잖아요, 저는 그 작가라는 선의 흐름에 타고 싶어요. 나는 뜨끈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선을 놓아버린 사람이 선을 잡으려 애쓰는 사람을 못마땅하게 바라봤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저도요, 그 선에 타보겠습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요. 자기 의심에 빠지지 않고요. 다정한 말은 안고, 다정하지 않은 말은 걸러내면서요. 마음과 진심을 살피기 위해 노력하면서요. 상과 등단과 책과 강연이라는 점으로부터 벗어나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선을 타겠습니다. 그래서 백일만에 이 글을 썼다.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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