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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Dec 22. 2022

매일, 메일은 오지 않으니까


당신에게 있어 삶의 낙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뮤지컬 관람이나 연인과의 데이트처럼 빠르게 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한참을 고민하던 기색이 무안하게 그런 건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긋거나 아직 모르겠다고 울상을 짓는 이들이 있다. 매일 이런 질문을 던지니 "그럼 네 낙은 뭐냐"는 역질문이 돌아왔고, 우선 내 답부터 찾는 게 먼저인 듯했다.


행복과 기쁨, 즐거움을 뜻하는 삶의 낙은 사실 크기보다 빈도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메일함을 엿보는 게 습관이 됐다. 오늘 세상에는 어떤 재미난 일이 펼쳐졌을까, 메일을 통해 강연이나 출간 제의가 오지 않을까, 신기하고 흥미로운 프로젝트에 합류하자는 제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메일함을 들락날락거렸다. 메일이 왔을 때 내용을 설핏 엿볼 수 있는 미리 보기를 삭제한 이유는 그런 거였다. 광고나 스팸 메일이라 하더라도 메일을 여는 단 몇 초만큼은 설레는 긴장감을 양보할 수 없어서.


어제 아침에는 따끈하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의 수상자가 발표됐다. 다가오는 신년에는 신춘문예가, 봄과 여름을 통과하는 계절에는 각종 계간지에 실릴 작품이 선정된다. 여러 공모전과 잡지에 글을 투고할수록 메일을 여는 나의 기대감은 배로 부풀어 오른다. 즐거운 메일이라면 금세 기분이 올라가지만 일주일 내내 연락 한 통이 없거나 프리랜서용으로 개설한 메일 주소에 정보 수신 동의 내용만 잔뜩 쌓이면 기분은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진다. 그 기분은 단순히 실망감이라기보다는 좌절, 울적, 우울, 비관, 비난 같은 피하고 싶은 감정까지 차례로 끌고 와서 나를 내동댕이친다.


"늘상 메일함을 본대도 달라지는 건 없어."


삶의 유일한 낙은 어느새부턴가 새로운 메일이 되어버렸다는 걸, 그 메일은 길면 한 달 동안이나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친구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십 년만 빠르게 태어났다면 빨간 우체통이었을 메일함. 그 시절을 지냈다면 아마 우편배달부와 만담을 나눌 만큼 친해져서 이름 모를 이의 편지가 언제 오냐고 물어봤을 게 분명하다. 메일로 오는 제안은 구원이자 히어로였다. 단조롭고 밋밋한 일상에 생기와 변화를 더해주는 무언가. 낯선 이들 앞에서 인생의 한 부분을 꺼내놓고 글쓰기가 하루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조곤조곤 이야기하면 그날 저녁은 기진맥진해도 무언가 영향을 주었다는 기쁨에 다음 일주일을 버티곤 했다. 온라인 지면에 기고할 작품이 필요하다는 문의에는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어딘가 있다는 사실에 다시 일주일을 버티곤 했고, 그렇게 메일이라는 기쁨 하나에 일주일의 기분을 통째로 맡기는 사람이 됐다.


내가 비록 저명한 연구가나 박사는 아니지만, 커다란 상을 받은 경험과 몇 백대의 경쟁률을 뚫고 기업에 합격을 했을 때 받았던 기쁨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걸 보면 역시 행복은 크기보다 빈도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청경채를 데치고 햄을 볶아 샹궈를 만들었을 때의 행복함, 진짜 맥주를 똑 닮은 무알콜 맥주를 찾았다고 소리쳤을 때의 상쾌함, 몇 시간을 내리 짜낸 끝에 떠올린 카피에 조그마한 칭찬을 받았을 때의 뿌듯함. 나는 그런 기쁨을 잊고 '빈도'라는 단어에 영감을 얻어 커다란 행복이 자주 오기를 바랐던 건 아닐지 모르겠다. 내가 바란 메일 내용은 몇 백만 원의 고료를 준다는 원고, 좋아하는 작가님과의 협업, 세 번째 책을 내고 싶다는 편집자님의 부탁이었으니까. 뒤늦게 평범하다고 여겨지는 행복을 깨닫고서는 절필을 선언했을 때 독자님들이 전한 사랑이 담긴 편지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해가 지면 늘 혼자라고 중얼거렸던 날들이 무안해지도록 든든한 응원이 문장에 담겨 있었다.


오늘은 어떤 이벤트가 있을까, 하며 무심코 메일함 주소를 들어가려다 멈칫했다. 등단, 합격, 출간, 수상이라는 커다란 성과와 성취는 매일 오지 않으니까. 나는 다시 부지런히 하루로 돌아간다. 밋밋하면 밋밋할수록 더 세밀한 기쁨을 알아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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