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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Jul 11. 2023

잠을 쫓아내기 위해
회사를 다니는 마케터


다시 회사를 다니기로 결심한 이유는, 전업 작가로서의 삶이 녹록지 않아서였다.


돈을 못 번다는 건 둘째고, 직전 회사를 그만두자 생긴 여덟 시간이라는 여유를 잠으로 모두 채워서였다. 머리가 아플 만큼, 등이 배길 만큼, 가끔은 다리에 쥐가 날 만큼 잤다. 잠을 너무 많이 자면 깨어있을 때만큼은 잠이 오지 않을 테니 어느 사람보다 더욱 맑게 깨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내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평소에 잠을 열 다섯 시간씩 내리 잤으니 그 잠의 총량을 채우지 못하는 날에는 더더욱 졸렸다. 심지어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잠이라는 녀석이 찾아왔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도 졸려서 토퍼만 놓인 복층에 올라가 잠을 잤다. 내게 계단을 오르는 행위는 곧 잠을 잔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잠이 너무 미워서, 나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을 주제로 잠에 관한 짧은 수필을 쓴 적도 있었다. 회사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내 시간과 내 몸을 구속하면 대체로 비슷한 바이오리듬이라는 게 생길 테고, 점심은 점심때에 먹고 기상 시간 역시 출근 시간에 맞춰 정해져 있을 테니 더욱 성실한 사람으로 살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 큰 고민을 하지 않고 회사에 들어갔다. 회사에서는 눈치가 보여 졸 수도 없으니 완벽한 계획이라고 자신했다.


회사에서의 삶은 간단하면서 복잡하다. 브랜드가 홍보하고 싶은 콘텐츠를 담아 수요일마다 뉴스레터를 보내고, 일주일에 열 개 가량의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제작하고, 금요일 오후에는 카카오로 광고 메시지를 전송한다. 그리고 몇 명이 클릭했는지, 메시지를 열어봤는지, 그렇게 내가 만든 콘텐츠를 보고 몇 명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는지를 추적한다. 수많은 콘텐츠를 만들고 분석하다 보면 내가 마케터로 돌아왔다는 게 실감 났다. 글은 아무리 써도 이게 돈이 될까, 과연 누가 읽어줄까 싶은데 회사에서의 일은 못하든 잘하든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니 한편으로는 안심이 됐다. 그래서 여름이 되면 바로 쓰겠다고 결심한 동화도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퇴근을 하고 요리를 한 뒤 설거지까지 해치우고 나면 다시 꾹꾹 참은 잠이 몰려왔고, 책을 읽다가 졸기 시작하면 다시 계단을 올라 잠에 들었다.


이렇게 지낸 지 벌써 이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빠르게 흐른 것 같기도, 꽤 느리게 흐른 것 같기도 하다. 그 기간 동안 글은 성실히 쓰지 않았지만 성실히 죄책감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딘가 연재할 에세이 스무 편도 써야 하고, 출판사 워크숍에 제출할 동화 삼백 매도 남았는데 나는 꿋꿋하게 다음 날 일어나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고 마우스를 연달아 클릭한다. 클릭 한 번에 페이스북이 뜨고 클릭 두 번에 인스타그램이 뜨고 클릭 세 번에 홈페이지가 뜨고 네 번에는 뉴스레터가 뜬다. 나는 긴 글 대신 사람들이 혹할 짧은 카피를 대신 짠다. 내가 좋아하는 반점 없이 쓴 글에는 수많은 해시태그가 달려 있다. 가끔 이게 맞나 싶기도 한데 아직은 전업 작가가 아니므로, 그리고 전업 작가였을 때도 글을 쓰지 않았으므로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갈 간단한 글을 써낸다. 인스타그램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피드를 더 줄여야 한다. 나는 계속해서 백스페이스를 누른다.


어김없이 돌아온 기다렸던 주말에는 '백스페이스'라는 단어가 담긴 수필을 적는다. 회사에서 백스페이스를 누르던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운 시간이다.


어디를 가나 대체로 말을 아끼는 편이다. 글과 달리 말은 백스페이스를 눌러 지워낼 수 없어서, 한 번 뱉어내면 다시 주워담기란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간신히 번복할 수 있어서 나는 결국 하려는 말을 삼키고 듣는 쪽을 택한다. 그렇게 소리로 만들어지지 않은 무엇들은 고스란히 속에 쌓인다. 게워내지 못해 묵히고 삼킨 말은 허물 없는 사이라고 여겨지는 누군가의 앞에서 둑이 쓰러지듯 쏟아진다. 달뜬 분위기에 힘입어 나타난, 하지 말았어야 할 말들이 쏟아진다.

이미 흘려버린 말 앞에서 나는 어찌할 바 모르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결국 모면할 말을 찾지 못해 인연과 차차 멀어진다. 그날 새벽에는 후회로 얼룩진 장면들을 복기하느라 잠을 뒤척인다. 여태껏 나는 말을 너무 적게 하거나 너무 많이 해서 누군가의 오해를 샀다. 여기 묶인 글들은 그 이야기를 담았다. 말을 너무 주저하느라 채 풀지 못한 분위기와 제때 건네지 못한 위로와 누군가의 잘못된 행동을 꼬집을 용기를 영영 잃어버린 지난 날에 대해. 또는 너무 과하게 말을 한 까닭에 미처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한 인연들에 대해.


이슬아 작가님은 글을 쓸 때 우선 끝이 나지 않아도 '-끝'이라는 글자를 쓰고 글을 시작한다고 했다. 이 글을 끝냈을 미래의 나를 기다리면서. 나 역시 작가님을 따라 '-끝'이라는 말을 적어두고 쓰려했는데, 아직 그 용기를 내지 못했다. 우선 첫 문단을 무사히 써냈다는 사실로 나를 칭찬한다. 이 글을 쓰는 일요일을 기준으로 내일은 월요일이다. 월요일은 언제나, 어김없이 매번 돌아온다. 프리랜서일 때는 '월요일 좋아!'를 외치던 나였는데, 회사원이 되고 나서는 그 환호를 쉽게 부리기가 어렵다. 각자의 일터와 자리에서 분투하며 다시 모니터 앞에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함께 전하고 싶은 밤이다. 모두들 좋은 꿈 꾸시기를. 그리고 다시 생기 있게 일어나 함께 모니터 앞에 앉아 다정을 주고받는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


어김없이, 또,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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