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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Aug 18. 2023

향기와 냄새의 차이

향긋한 바디워시로 꼼꼼하게 씻는 일


1.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면담을 청했다. 평소 고민이 생기면 언제든 이야기 달라는 분이셨으니 오래 궁리하지 않고 메시지를 보냈다. 엔터를 누르고 떨려하는 사이 메시지는 빠르게 확인됐다. 업무적으로 조금의 문제가 생겨 조언을 구하고자 연락드립니다. 어떤 일인지 궁금해하시는 팀장님과 회의실에 마주 앉아 가장 먼저 한 말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아요."였다. 요즘 느끼는 기분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말이 가장 알맞았다. 이 말을 빼놓고서는 나의 상태를 설명할 수 없었다.


  회사에서 운영하는 소셜 미디어 계정은 게시글을 아무리 올려도 한 톨의 반응이 없었고, 수요일마다 보내는 뉴스레터도 매한가지였다. 사람들은 새로이 구독을 하기는커녕 본문에 달린 버튼조차 누르지 않았다. 제목으로라도 눈길을 끌게 하기 위해 이모지를 넣거나 카피를 고심하고 심지어는 메일을 보내는 요일을 바꿔보는 건 어떨지 고민했지만, 카카오 광고 메시지는 템플릿을 바꾸고 첫 장의 문구에 힘을 쏟기도 했지만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아무도 보지 않는 웹자보를, 아무도 신청하지 않는 프로젝트를 두고 홀로 끙끙 앓는 기분이었다. 나는 팀장님께 한 줄의 문장을 더 내뱉었다. "콘텐츠를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봤자 아무도 관심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무기력이 들어요. 어떻게 이 무기력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이쯤 되니 불평을 하는 것 같아 새롭게 말을 더했다. "불평을 하려는 건 전혀 아니에요. 팀장님은 제가 제안한 모든 것을 이미 해보셨던 분이니까 조언을 청하고 싶었습니다."


  불만은 없다고 했지만 어느 정도의 불평이 담긴 내 말에 팀장님은 정론으로 응수했다. "브랜딩을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자산을 아카이빙 하는 거죠. 아무도 안 본다고, 아예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맞는 말이었다. 뉴스레터 아무도 안 보니까, 안 써야지! 광고 메시지를 보내봤자 아무도 클릭하지 않으니까 보내지 말아야지! 라 결론짓는 건 정말 손을 놓은 채 그저 하릴없이 토끼가 찾아오기를 바라는 거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이 메일을 안 읽으니까,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요?'가 아닌 '사람들이 메일을 안 읽으니까 너무 힘들어요!'에 그친 투정을 했다는 사실에 얼굴이 붉어졌다.


  실은 창작자로서 내내 그런 마음으로 콘텐츠를 대하고 있었다. 지금껏 세상에 내보이지 않은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담은 개인 레터 '요아 수록' 역시 구독자가 상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늘지 않아 열 번을 채 발송하지 않고 그만뒀다. 브런치에서 대상을 받아 출간된 두 번째 책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도 기대보다 잘 팔리지 않아 더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공식 계정을 통해 절필 선언을 했더랬다.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야지, 를 넘어서서 이 길이 아니라면 아예 걷지를 않겠어, 와 가까웠던 내 행보가 조금은 부끄러웠다. 바로 주목받지 않아도 모두가 길을 성실하게 닦고 있는데 나는 스스로를 성실하다고 자부하면서도 성공이 예견된 길만을 좇았다. 팀장님이 말을 더했다. 시작하자마자 바로 인사이트가 생길 수는 없으니까요. 나는 첫 화부터 대박이 나기를 바라는 사람이었으므로 제대로 답을 할 수 없었다.


향기와
냄새의 차이


  회사에서 어떤 성과도 내지 못하는 것 같아 내가 너무 싫은 날에, 과정 없이 결과만 제대로 나왔으면 하는 욕심에 파묻혀 내가 너무 싫은 날에, 언제나 그랬듯 비슷비슷한 업무를 해야 해서 톱니바퀴가 된 것 같아 내가 너무 싫은 날에 나는 퇴근 후 미역이 된 몸을 이끌고 화장실에 들어선 뒤 발끝을 들어 찬장 안 깊숙하게 놓인 고급스러운 바디워시를 꺼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한 날에 향수를 뿌리거나 보이지 않는 무릎 안쪽 구석까지 꼼꼼하게 스크럽을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어쩌면 완전히 다르게 홀로 있을 때가 되어서야 숨겨둔 비싼 바디워시를 슬며시 꺼낸다. 이어서 거품망으로 보글보글 푹신한 거품을 내고 오랜 시간 천천히 따뜻한 물로 몸을 녹인다. 이건 어쩌면 좋아하는 향의 초를 켜는 것과 비슷한데, 원하는 향이 오롯이 내 코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둘 모두 아늑한 기쁨을 가져온다. 평소의 나라면 샤워를 하는 동안 온갖 걱정을 주렁주렁 매달고 오늘은 어떤 일을 해치워야 하더라, 냉장고에 남은 음식물은 제때 비웠나, 하는 생각으로 좀처럼 샤워에 집중을 하지 못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다르다. 내내 나를 너무 싫어했으니 나를 조금 더 좋아하자고 만든 시간이기 때문에 완벽하리만큼 지금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 눈여겨볼 지점이다.


  언젠가 친구가 집에 놀러 왔던 적이 있었다. 예기치 않은 친구의 등장에 짐짓 당황할 무렵이었다. 싱크대 거름망은 제대로 씻겨지지 않은 채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으므로. 물론 음식물 쓰레기를 포함한 모든 쓰레기는 제때 비워야 냄새도 나지 않고 벌레도 꼬이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쌓인 설거지더미만큼이나 해야 할 일이 수북하다는 핑계로 청소를 미뤘다. 종일 머릿속으로 기획안을 구상하고 키보드로 생각을 옮기고 나면 밀린 잠이 쏟아졌다. 식탁 위에는 배달로 시킨 커다란 떡볶이가 채 치워지지 않은 채 자리를 지켰고, 친구는 결국 들어오자마자 현관에서부터 “으앗, 냄새!” 라며 소리쳤다. 나는 당황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뜻으로 “무슨 냄새?”라고 되물었고, 친구는 “음식물 쓰레기 냄새. 이 냄새를 맡고 어떻게 지낸 거야?”라 답했다. 그 쓰레기 냄새를 무감각하게 맡으며 지낸 내가 부끄러워 어딘가로 숨고 싶어 졌으나, 이미 나의 몸은 집에 있었으므로 더는 숨을 곳이 없다는 걸 동시에 알았다.


  빠르게 싱크대 거름망을 비우고, 음식물 쓰레기를 내다 버리고, 쓰레기를 정리하면서 “이제 냄새 안 나지?”를 연거푸 말하던 나와 계속 난다며 아무리 바빠도 음식물은 치우라는 소리를 하던 친구의 이야기에서 거의 처음으로 냄새와 향기의 차이가 궁금해졌다. 사전에 냄새와 향기를 검색하면 향기는 ‘꽃, 향, 향수 따위에서 나는 좋은 냄새’라고 나오지만 냄새는 ‘코로 맡을 수 있는 온갖 기운’이다. 그건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기운도, 그렇지 않은 기운도 한데 냄새로 묶을 수 있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나는 늘 냄새를 덮기 위해 애썼다. 땀 냄새를 덮기 위해 몸을 씻었고, 비바람이 부는 날이면 혹여나 집에서 퀴퀴한 냄새가 날까 봐 디퓨저로 냄새를 덮었다. 사무실에서는 화장실을 다녀온 내게 화장실 냄새가 묻었을까 싶어 핸드크림으로 냄새를 덮었더랬다. 오로지 향을 내기 위해서, 게다가 그 향이 남들에게 퍼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낀 건 생일을 맞아 선배에게 비싼 바디워시를 받았을 때였다.


  음에는 데이트를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때, 강의가 있거나 중요한 자리에 참석할 때만 바디워시를 꺼냈다. 차츰 그 사실이 당연하게 느껴진 후로부터, 그러니까 타인을 만날 때에만 단정한 차림이고 혼자 있을 때는 꾀죄죄한 모습이 익숙하게 여겨질 때가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스스로를 되돌아봤다. 이왕이면 판판하게 펴진 옷을 입고 은은한 향을 내면서 나를 싫어하는 쪽이, 주름이 잔뜩 진 티셔츠를 입고 떡진 머리를 한 채 나를 싫어하는 것보다 조금은 낫지 않을까 싶었다. 확실한 건 둘 다 나를 싫어한대도 조금 더 정돈되고 깨끗한 모습의 내가 나를 덜 싫어할 확률이 높았다. 설령 두 모습일 때 모두 나를 싫어한다고 해도 조금 더 빠르게 그 기분을 떨칠 수 있었다. 특히 혼자 있을 때 나를 위한 요리를 하는 것이, 혼자 있을 때도 깔끔한 차림으로 지내는 쪽이, 혼자 있을 때도 몸에서 은은한 향이 피어오르는 편이 훨씬 기분 좋다는 걸 깨달은 뒤로 나는 발끝을 들어 올려 찬장 깊숙한 곳에 숨겨진 바디워시를 손가락 끝으로 들어 올린다. 우는 아이를 조곤조곤 달래 알맞은 온도로 따뜻하게 씻겨주고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말리고 잘 개어진 옷을 입히듯 스스로를 챙긴다. 그러니까 오늘은, 다시 그 바디워시를 꺼내야 할 때다. 잘 개어진 수건을 준비해 문 앞에 가지런히 놓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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