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을 기대 않고 정성스런 서평을 쓰는 일
글을 쓰다 보면 도대체 이 이야기를 누가 읽어주나 싶은 상심에 빠진다. 쓰는 이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반면 읽는 이는 빠르게 줄어든다. 백만 부를 찍어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다던 말도 차츰 사라졌다. 이제는 십만 부만 팔려도 어마어마하다. 특히 여태껏 한 권의 책도 내지 않은 신인이 십만 부 넘게 팔았다면 각종 출판사의 러브콜이 쇄도할지 모른다. 그렇다. 출판계는 나날이 어렵다는 곡소리를 내고 있고, 삼천만 원도 되지 않는 연봉을 받고서라도 신입 편집자가 되고 싶은 지망생은 한가득 줄이 서 있다. 편집자 지망생이 많은 것처럼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작가 지망생도 정말 많다. 인스타그램을 조금만 둘러봐도 6주 만에 책을 내게 해주겠다는 둥 퍼스널 브랜딩의 기초 작업은 책이라는 둥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운 이야기가 잔뜩 쓰여 있다. 포털 사이트에 이름을 넣으면 작가로 나올 수 있게끔 자비 출판을 해보는 게 어떻냐는 광고는 따로 댓글을 쓰지 않고 조용하게 다시 보지 않겠다는 버튼을 누른다. 삶을 꾹꾹 눌러 담아 열렬히 쓴 글도 주목받지 못하는 시대에 누구나 할 법한 이야기로, 자신만의 언어를 발견하지 못한 채로 타인의 목소리를 담아 오직 브랜딩이나 한 줄의 명예를 위해 쓴 글이 사랑을 받기란 더더욱 어려운 법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요아 님은 요아 님의 이름을 얼마나 찾아보나요?" 나는 하루에 한 번씩이라고 답했다. 질문을 한 작가님은 스스로 일주일에 한 번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하루에 한 번은 검색한다는 내 답장에 깜짝 놀란 듯하셨다. 나는 내 이름을 아주 많이 검색한다. 카페든 블로그든 인스타그램이든 내 이름 석 자와 내가 쓴 책을 찾고, 감명 깊게 읽었다는 글을 발견하면 일주일 어치의 위안을 받는다. 그러나 마지막 책을 쓴 지 어느덧 일 년이 넘었으므로, 신간은 하루에도 엄청난 수로 쏟아져 나오므로 책의 후기도 덩달아 하락세로 기울었다. 그러니 드문드문 서재에 세로로 꽂혀 있는 책을 늦게 발견해 쓰인 후기를 읽으면 아직 잊히지 않았다고 느끼며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아쉽게 대부분의 날에는 아무 글도 올라오지 않거나 아무 댓글도 달리지 않는 날이 부지기수다. 그럴 때면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을 느낀다. 지금은 썼다 하면 종합 순위에 자리 잡는 어떤 소설가도 등단 후 몇 년간 청탁을 받지 못해 고역이었다는 인터뷰를 읽으며 마음을 달래도 그때만 위로받고 돌아서면 읽었다는 사실마저 까맣게 잊는다. 두 권이나 냈는데 왜 나는 다음 책을 내자는 청탁이 오지 않는지 침울하다.
책을 내는 건 마치 편지를 쓰는 일을 닮았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나는 정성이 가득 담긴 편지를 받는 일은 좋아하지만 힘이 없거나 말을 고르느라 답장을 제때 보내지 못한 적이 많았다. 바로 부치지 못한 편지는 마음 깊이 쌓여 상대에게 애정을 주기는커녕 서운을 건넸다. 빠짐없이 완벽한 작품을 만들겠다고 구상하면 정작 백지에서 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머물게 되는 것처럼 상대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내가 느낀 감동을 전부 표현하는 단어를 고르기 위해서는 까마득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나 새로운 문장을 고심할 힘이 없는 상태라면, 빨래도 제대로 돌리기 힘들고 다 마른 옷감을 판판하게 털어 너는 것조차 힘에 부칠 지경이라면 답장을 쓰는 건 자연스레 뒷전으로 미뤄진다.
새 책이 세상에 막 나올 무렵 사랑하는 지인들에게 친필 사인을 꼼꼼하게 그려 한 권씩 집으로 보냈다. 잘 받았다는 메시지와 함께 받는 대로 사진을 찍어 인증하고 메시지나 간간이 선물로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나 하면, 받았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고 읽었다는 메시지도 보내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 나는 답장을 보내지 않은 그들의 이름을 줄줄이 읊을 만큼 서운했다. 언젠가 만나는 날 넌지시 다 읽었냐고 물어보면 아직 읽는 중이라고 답하는 친구에게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속상함을 느꼈다. 손에 꼽을 만큼 친한 친구들마저 내 책을 읽지 않으면 생판 나를 모르는 독자 분들은 얼마나 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싶었다. 호기심에 펼친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붙잡고 완독 하는 사람은 훨씬 적으리라는 예상을 하면 더욱 침울해졌다. 괜히 작가를 택한 게 틀림없다고, 괜히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정했다고, 사진이나 영상이나 그림의 세계로 가면 좋았을 걸 싶은 마음이 뭉게뭉게 들면 글을 쓰는 현재는 그와 비교되어 더욱 미워졌다. 어느새 나는 나를 다시 싫어하고 있었다.
독자도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인스타그램 피드를 하릴없이 내리는데 한 서점을 운영하는 작가님의 이야기가 눈에 밟혔다. 작가라는 직업이 존재하듯, 독서량이 바닥에 가까운 지금으로 보건대 어쩌면 미래에는 독자라는 직업이 새롭게 나타날지 모르겠다는 요지였다. 내게 오만 원을 내시오. 그러면 당신의 책을 한 권 읽어드리리다. 그렇다면 독자 서평단에게 서평을 써 달라고 요청하는 건 십만 원이려나. 상상에 빠지는데 마음 한편이 답답해졌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말도 안 되지는 않는 소리였다. 독자가 이리도 귀하다. 브런치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은 물론이거니와 물성을 지닌 종이책 한 권을 내리읽고 당신의 목소리를 담아 이런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으며 책을 읽고 이런 느낌이 들었다고 자신의 소중한 공간에 서평을 올리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없다.
내가 쓴 글은 아무도 안 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어느 날에,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한 내가 미워지는 날에 나는 내 글을 다듬지 않고 오히려 타인의 책을 편다. 한 손에는 연필을 들고 본격적으로 독서에 임한다. 마음을 아리게 하는 문장에는 밑줄을, 이런 삶을 이런 표현으로 쓰고 싶다고 여기게 되는 부분에는 별을 그린다. 청소년 소설부터 동화나 에세이, 소설이나 심지어는 극본까지 줄줄이 읽고 천 자를 넘기는 분량에 맞춰 잘 읽었다는 편지를 남긴다. 서평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혹여나 책을 쓴 작가님을 상처 입히게 할 수도 있으리라는 가능성에 기대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분명 내 이야기는 힘이 될 거라고, 내가 읽은 마음이 작가님께 전달되리라고 확신하며 글을 쓰는 게 자신만만하게 애정을 담는 방법이다. 출판사에 마케터로 취업하겠다거나 북스타그램으로 팔로워를 늘리겠다는 목적 없이 그저 가만가만 편지를 쓴다. 이토록 누군가의 삶이 뚝뚝 묻어난 책에 대해서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에 관한 답으로 이 책을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책에 촘촘하게 쓰인 삶의 분투를 쿠키와 함께 찍기에는 자신이 못마땅하다는 마음을 덧붙인다.
답장을 기대하지 않고 쓴 글이므로 기다리는 마음은 덜하지만 그래도 가닿았으면 하는 마음이 동반된 글을 발행하고 나면 몇 시간 뒤, 늦으면 며칠 뒤에 해당 책을 쓴 작가님에게서 답장이 온다. 조그만 흰색의 하트를 누르든 고맙다는 댓글을 남기든 개인적으로만 읽을 수 있는 통로로 이 마음과 글을 잊지 않겠다는 연락이 온다. 나는 오만 원을 받지 않고 사비로 책을 사서 끝까지 글을 읽었고, 십만 원을 받지 않고 내 작고 개인적인 공간에 서평을 올렸다. 작가님께 선물을 받으려고 글을 쓴 것도 아니고, 명예를 얻는다거나 칭찬을 받기 위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그저 나는 여기 있다고, 당신의 책을 읽는 사람이 이곳에 살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셀 수 없이 많은 작가님께 힘을 건네는 일이다. 영수증 리뷰를 쓰면, 설령 그 음식이 맛이 없더라도 맛있다는 이야기를 지어내면 음료나 사이드 메뉴를 주겠다는 이 시대에 살면서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 힘을 조금 떼어다가 글을 쓴다는 건 비단 그 책의 작가님 뿐만 아니라 내게도 힘을 주는 기묘한 일이어서 나는 자주 서평을 올린다. 당연히 마음에 와닿지 않은 책은 서평도 쓰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마저 일이 되고 마니까. 서평단으로 책을 받아도 그 책이 썩 마음에 들지 않다면 출판사의 다음 책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책을 손에서 놓는다. 그러지 않고 이런이런 점이 좋았다고 쓰면 내 추천글을 읽고 책을 살 다른 분들에게도 미안한 일이니까.
여기까지 이 글을 읽은 당신이 혹시나 어떤 일에 열렬히 임하는 중이라면, 그럼에도 그 일을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을 것 같은 우려에 빠진다면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그저 타인에게 작은 감사의 편지를 올렸으면 좋겠다. 그 편지는 당신의 작은 공간에 놓여도 파도를 타고 멀리멀리 나아가 어쩌면 그 사람에게 닿을 수 있다. 어떠한 제품이, 어떠한 플랫폼이, 어떠한 앱이, 어떠한 요리나 책이 당신의 마음에 들었다고 적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편지를 쓰는 일은 굉장한 노력이 드는 일이어서 쉽게 시작하기 어렵지만 그만큼이나 완성하면 뿌듯한 마음이 뒤따라온다. 아무도 모르지만 오롯이 누군가를 위해 정성을 들인 일이라 스스로에게도 조금씩 힘이 난다. 우울이 오면 얼른 움직여야 한다는 이야기처럼, 울적함이 찾아오거든 얼른 편지를 쓰기를. 영영 닿지 못해도, 영영 부치지 못해도, 영영 홀로 간직하게 되더라도. 실은 여기까지로 글을 매듭지을 예정이었지만 잠깐 욕심을 내자면, 댓글에 평소 내 글을 잘 읽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준다면 나는 단번에 확인할 예정이다. 말을 고르느라 바로 답글을 달지 못해도 나는 옛날 옛적의 댓글마저 들춰보는 미련한 사람이라 당신의 마음을 한결처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