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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Sep 02. 2023

욕조를 둘 공간이 없어도

마음에 드는 다채로운 입욕제를 쓰는 일


3.



  비행기를 타고 본가인 제주에 도착했더니 여기저기서 귀여워졌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그다지 기분 좋게 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말 그대로 귀엽다는 의미만 담겨있어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장 마를 때와 비교하면 무려 삼십 킬로가 늘어나 심지어 지인 몇은 나를 더듬거리며 알아봤고, 가장 오랫동안 유지한 몸무게와 비교해도 최소 십오 킬로가 늘어난 상태였다. 상사에게서 불합리한 요구를 들을 때마다, 글이 잘 쓰이지 않을 때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짙어질 때마다 짜고 매운 음식으로 스스로를 달랬다. 일 년어치의 헬스장 이용권을 끊었으면서 운동은커녕 가벼운 산책조차 꺼렸다. 아무리 열심히 움직이고 도전해 봤자 무엇이 돌아오냐는, 결국 사람의 생명은 유한하지 않냐는 의문과 헛헛함이 들 때마다 입을 벌려 온갖 단 음식을 집어넣었다. 식탁에 놓인 요리가 안주라는 기분이 들면 위스키를 꺼내 곁들이며 내일이 없다는 듯 마셔댔다. 집은 깔끔하게 치우려고 애쓰면서 정작 내 속은 담백하고 깨끗한 요리로 채울 노력을 쏟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온라인 요가 클래스를 신청했다. 앞으로 진행할 수업을 빠짐없이 잘해보자는 뜻으로 선언하는 시간에서 우리를 지도하는 선생님이 불현듯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차례로 이렇게 외쳐보자는 말씀을 하셨는데, 어찌 보면 형식적으로 보일 법한 말이 조금 뒤 모두를 저마다 훌쩍이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리는 선생님의 손짓과 눈빛을 따라 가슴에 손을 얹고 입을 벌렸다. "나와 내 몸은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또렷하게 읊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로 울컥하는 마음이 앞서서, 그러니까 배달 음식과 짜고 매운 자극적인 음식으로 속을 데우던 지난날이 떠올라 자신에게 미안한 감정으로 단어와 단어 사이에 긴 공백을 둔 사람도 있어서 먹먹해졌다. 나는 주먹을 쥐어 손톱을 손바닥에 꾹꾹 새기며 울음을 간신히 참았다. 그 순간을 견디어 선언한 만큼 요가를 성공했느냐 하면 당연히 아닌데, 내 몸은 쓰레기통이 아니라고 모두들 앞에서 뭉뚱그리며 문장을 맺던 그 순간만큼은 잊으래야 잊을 수 없다.


  내게 몸무게와 자존감은 직결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고무줄 바지만을 애용하는 내게 옷이 몸에 착 감긴다는 표현을 쓰기란 어렵다. 굳이 말한다면 바지 밑단이 흐물흐물 거릴 만큼 널따랗다는 표현이 적확하다. 평소 자주 들르던 옷가게에 가서도 바지가 모인 옷걸이로는 절대 향하지 않는다. 가장 커다랗다고 주장하는 바지 사이즈도 내 하체를 감당 못한다. 결국 남자 바지를 기웃대는 나를 발견할 때면 종종 부끄러움이 일지만 바지를 입지 않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결국 남성용 바지를 신속하게 산다. 통통한 여자를 위한 쇼핑몰에서도 투엑스라지를 입는 나는 어느 때라고 콕 짚어 형용할 수 없는 시각부터 콤플렉스가 생긴 것 같다. 마른 다리를 지닌 사람과 나를 시시각각 비교하고, 살이 빠지면 꼭 입고 말겠다며 장바구니에 옷을 집어넣는다. 말랐을 때 입었던 치마를 차마 버리지 못해 옷장 안에 꾹꾹 욱여넣었다.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할 때도 내가 뚱뚱하다고 손가락질하면 어쩌지 싶어서, 미팅을 앞둘 때도 프로필 사진과 다르다는 비웃음을 당할까 봐 겁에 질려 외출을 피한다. 피한 외출은 고스란히 집에 남아 또다시 움직이지 않고 음식을 입에 넣는다. 천천히 오래 씹을 새 없이 우선 삼켜놓고 본다.


  평소 품었던 내 심리가 상담 선생님께도 간접적으로 닿았는지 연장을 위해 제출해야 할 소견서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비만에 대한 열등감과 무기력이 있음." 소견서를 찬찬히 읽으며 상담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으므로 결국 상담을 연장했다. 내 몸을 완전히 사랑하지는 못하더라도 불완전하게 좋아하자는 마음을 떨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다짐처럼 잘 되지는 않는 법이다. 최소한 싫어하지는 않으려고, 미워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어느 날은 그것조차 어려워서 머리를 쥐어뜯는다. 살이 쪘을 때나 살이 찌지 않았을 때나 본연의 나는 나인만큼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자고 혼잣말하지만 메아리는 멀리 퍼지지 않고 가까이에서 슬며시 사라진다. 어떤 이는 살이 찐 내게 "밤낮이 바뀐 건 아니죠?"라며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했다. 나는 정확한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며 꽤나 규칙적인 하루를 보냈는데, 단순히 살이 쪘다는 이유만으로 밤낮이 바뀌어 바이오리듬이 뭉개지고 말았을 거라는 편견에 걸려들었다. "아니에요! 지난주까지만 해도 출근했는걸요." 답을 하는 목소리가 왠지 가느다랬다.


욕조를 둘
공간이 없어도 


  처음 입욕제의 세계에 눈을 빛낸 건 파랗고 반짝이는 입욕제의 영롱함에 반한 후배의 독촉 어린 손짓이었다. "언니, 저 믿고 이거 한 번 써봐요. 색깔이 엄청 영롱해요. 꼭 우주를 담은 것 같다니까." 굳이 물에서까지 우주를 담고 싶은 마음이 아직 없던 나는 입욕제를 받아놓고 한동안 집의 소품으로만 활용했다.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이 "입욕제를 쓰는구나! 나도 가끔 입욕제를 써.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더라."는 이야기를 할 때에도 그저 넘겼다. 솔직히 말하면 한 번의 목욕에 만 원부터 삼만 원가량의 돈을 쓰는 게 아까웠다. 입욕제를 골라볼까 싶은 마음에 매장에 들어섰을 때 나를 맞는 활기찬 분위기가 익숙지 않아 문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돌아선 적도 많았다. 입욕제에 들일 한 번의 기쁨으로 한 달의 기쁨, 전기세나 관리비 같은 공과금에 투자하는 게 더욱 효율적 이어 보였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내가 사는 오피스텔의 화장실은 한가운데 욕조를 놓는 순간 화장실 입구에 서서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팔을 고무처럼 늘려 손을 씻어야 할 만큼 좁았다.


  입욕제를 추천하는 사람을 두 번째로 만난 건 잡지에서 글을 편집할 때였다. 소소한 취미를 소개하는 기획 코너에서 어느 대학생이 입욕제를 푸는 기쁨에 대해 구구절절 적은 글을 편집하는 중에 이런 문구에 꽂혔다. 반신욕이 그냥 커피라면 입욕제를 푼 목욕은 비엔나커피예요. 하얗고 몽글몽글한 크림이 잔뜩 올라간 비엔나커피에 꽂힌 나를 건드리는 문장이었다. 바로 매료되어 그날 당장 집 근처의 숙소를 예약했다. 숙소를 예약하는 앱을 켜서 월풀과 스파를 검색하니 욕조가 마련된 방이 군데군데 나타났다. 평일이라 그런지 여유로워서 예약까지는 어렵지 않았는데 중요한 건 과연 돈 가치를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평일이라 해도 숙박은 값이 꽤 나갔고, 설령 입욕제가 비엔나커피처럼 마음에 쏙 들기라도 하면 앞으로 입욕제에 들일 어마무시한 돈이 두려웠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도 미리 걱정하는 유형이어서 숙소에 들어가 입욕제를 풀지도 않고 그런 걱정부터 했다. 심지어 입욕은 한 시간이 아닌 삼십 분이 될까 말까 하는 시간 동안 끝내는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입욕제를 푼 물에 몸을 담그는 일은 꼭 패러글라이딩과 비슷해 보였다. 패러글라이딩도 십여 분만에 십만 원을 호가하는 금액을 하늘에서 보내는 것처럼 느껴지곤 하니까. 하나밖에 없는 창문이 복도에 달린 고시원에서 몇 년을 보낸 내게 숙소를 빌려 입욕을 하는 건 사치였다.


  사치면 뭐 어때!


  이런저런 고민에 복잡해진 마음속 어느 내가 소리쳤다. 퇴근하고 집에 달려가 입욕제를 재빠르게 챙겨 숙소로 들어섰다. 욕조에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물을 잔뜩 채우고 입욕제를 넣는 순간 타닥타닥 하며 재가 타는 음이 났다. 탄산 입욕제는 물과 섞이자마자 빠르게 거품과 색을 내보였다. 나는 잘 개어진 타월을 문 앞에 두고 욕조에 들어갔다. 나의 몸무게가 합쳐져 넘쳐흐르는 물소리가 한바탕 잔잔해졌을 때, 그때 찾아온 고요함이 기뻐서 잠시 울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욕조에서는 라벤더향이 은은하게 피어올랐다. 이후 엄청 비싼 입욕제를 빼놓고는 거의 모든 입욕제를 다 써보았는데, 정작 이렇게 살이 찌고 난 후부터는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내 몸을 반듯하게 보는 게 힘겨워서 숙소를 빌린 적이 없었다. 살이 빠지면 허리가 잘록하니 들어간 원피스를 입겠다는 다짐처럼 입욕제 역시 그랬다. 살이 조금만 더 빠지면, 허리가 조금만 더 들어가면, 다리가 조금 더 날씬해지면 그때 고고하게 욕조 안에 발을 담겠다고 고집했다. 그 고집이 꺾인 건 가장 마를 때 쓴 나의 일기를 엿보고 나서였다.


  몸무게는 분명 최저치를 경신했는데 정작 내가 예뻐 보이지 않는다고 적힌 일기장에는 도대체 앞으로 무얼 해야 예뻐질까 싶은 고민이 줄줄이 쓰여 있었다. 나는 여기서 조금만 더 빠지면 소원이 없다고 여겼지만 목표를 이룬 나는 정작 다른 목표를 바라봤다. 코가 조금만 더 오뚝했으면, 눈동자가 조금 더 크고 뚜렷했으면, 턱이 각지지 않고 조금 더 동그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이야기와 그 옆에 적힌 액수가 적힌 글을 읽고 완벽하게 나를 만족할 만한 몸에 도달할 수는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근처 상점에 들러 새로 나왔다는 행성 모양의 입욕제를 손에 들였다. 숙소를 빌려 따뜻한 물을 채우고 입욕제를 넣어 손으로 휘휘 저었다. 베르가못과 오렌지가 섞인 달콤한 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욕조에 들어가 손가락으로 입욕제를 이리저리 매만졌다. 툭 튀어나온 뱃살도, 튼살이 생긴 허벅지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억지로 결론지은 괜찮음이 아닌 진정 괜찮다는 마음에 다가가는 순간이었다. 과거도 나고, 지금도 나고, 미래도 나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니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몸에 주름이 늘고 새치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 변화 모두 나니까 나를 미워하는 마음은 이 뜨끈한 우주에 모두 녹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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