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 순간이라도 잘 되리라는 마음 없이 지내야 하는 건가 싶은 불만이 울컥 올라와서다. 확정된 계약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아름 기대를 안은 건 그 때문이었다. 소설 장편 계약에 성사하고, 면접을 오라던 회사에 곧 입사하고, 함께 부산까지 가서 대학 면접을 본 수험생 막내에게도 좋은 소식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생각에 그치지 않고 단언까지 했다. 말미에 '몰라요'를 붙이기는 했지만, 거의 다 이루어진 것처럼 이야기하고 다녔다. 어쩌면 소설 단행본을 쓸지 몰라요. 곧 취업을 할 것 같아요. 막내는 한 번에 붙을지 몰라. 떠들고 보니 어느덧 이미 이루어진 사실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경지까지 다다른 느낌이 들었다.
새로 산 가글로 입을 몇 번 헹구고 소설 편집자를 만났다. 간략한 기획안과 프롤로그만 가져간 소설에 대해 한 시간 동안이나 심도 높은 평을 해주었지만, 계약을 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결말이 담긴 원고 전편을 써 오면 계약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미한 언어가 제대로 소화되지 못해 애꿎은 침만 꼴깍 삼켰다. 애초에 단편 하나만 보고 장편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없다는 걸 알면서, 나만은 특별하다고 믿었던 것 같다. 지난번, 생기 있는 화분을 새로 들여야겠다며 쓴 설렘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미팅을 끝내고 지하철에 몸을 넣는데 문자가 왔다. 급하게 채용 일정이 종료되어 면접이 취소되었습니다. 애써 기분을 가다듬고 막내의 대학 입학 홈페이지에 들어가 합격자 발표를 눌렀다. 예비 번호로 21번이 떴다. 합격자를 빼고도 뒤에 스무 명이 기다린다는 뜻이었다. 이쯤 되니 스스로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확언을 한 이유를 묻고 싶었고,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않고 사람들에게 왜 자랑했는지 알 수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거니 막내는 상심이 컸는지 문을 잠그고 대답 없이 게임만 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도와줘서 떨어진 걸까 싶은 물음표가 고개를 내밀었다.
집 근처 지하철역에 도착했는데 빗방울이 쏟아지고 있었다. 빗줄기가 거세다며 나가지 못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출구 근처에 서 있었다. 나는 무릎을 몇 번 털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 빗속으로 들어갔다. 집에 와서는 채 마르지 않은 수건으로 머리를 닦았다. 밖에서 묻은 빗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출판사 미팅과 회사 면접을 위해 새로 산 니트가 흠뻑 젖어 실밥이 튀어 올랐다. 손에 잡히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더니 오늘 벌어진 일들이 전부 꿈처럼 희미했다. 초점이 잡히지 않는 난시 렌즈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세 명으로 보이는 편집자님 앞에서 눈을 끔뻑거리며 잘 계시라고 이야기했고, 어떻게 역까지 갔는지 모르게 지하철에 몸을 욱여넣다가 면접 취소 메시지를 받았다. 어느 게 꿈이고 어느 게 현실인지 애써 분간하는데 엄마에게서 내일 면접을 잘 보라는 응원이 왔다.
누군가의 말대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실망에 휘청거리며 좌절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 기대를 한 나를 미워하기 싫어지니 끝이 없었다. 우선 급하게 번복하는 글을 올려야 했다. 소셜 미디어 계정에 소설은 잘 안 될 것 같다고, 기다려주셔서 감사하다는 상투적인 문구를 적었다. 거짓말쟁이가 된 기분이라는 말을 한참 넣고 빼다가 결국 넣어 올렸다. 상황에는 변수가 많으니 거짓말쟁이는 아니라는 말이 다행히 와닿았다. 체감되는 시각은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 같은데, 아직 저녁 먹을 시간이 되지 않아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했다. 수면제를 먹고 일찍 잠들고 싶은 욕구가 들어서 문구를 뺄지 넣을지 고민하듯 수면제를 쥐었다가 책상에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맵고 짠 배달 음식으로 폭식을 하면 속만큼은 따뜻하게 채워질 것 같아 앱을 켰다 끄기도 했다. 맵고 짠 음식이든, 간이 잘 되지 않은 심심한 음식이든 무엇이든 먹어야 했다. 돌이켜보니 긴장했다고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악재에
대처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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