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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Nov 07. 2023

애착 물건을 찾아라!

사고 싶은 물건을 저장하고 직접 사는 일


13.



  한창 우울할 때는 기분부터 엉망이었지만, 집도 문제였다. 특히 문 밖이 그랬다. 무얼 시켰는지조차 잊어버린 주인에게 온 택배들이 문 밖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차마 밖에 그대로 방치할 수 없어 가까스로 현관 안으로 들인 택배 더미들 때문에 신발을 제대로 벗을 수도 없었다. 택배를 집에 들였다고 바로 가위를 가져와 뜯는 일도 없었다. 꼭 필요한 생활 용품을 주문한 것도 아니어서 택배를 뜯지 않아도 하루는 잘만 이어졌다. 마땅한 일이 없으면 침대에서 나올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뿐더러,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스마트폰이 다 채워주어서 택배 뜯기를 미뤘다. 예전에는 운송장 조회를 하고, 내가 시킨 물건이 어디쯤 왔을까 궁금해하며 기사님께도 문자를 드린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내가 언제 이런 택배를 시켰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우울을 상쇄하겠다고, 기쁠 때는 물건을 들여야 한다고 클릭해 도착한 택배 박스들이 집에 나뒹굴었다. 주문할 때는 이 물건만 있으면 하루가 윤택해지겠다고 자신했는데, 정작 그 물건을 시킨 때를 잊었으니 스스로가 한심했다.


  채 뜯지 않은 택배를 한 구석에 던져놓고 온라인 매장만 한참을 들락거리는 나를 발견하자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숨을 크게 내쉬고 과거의 나만은 질책하지 말자는 약속을 한 뒤에 택배를 뜯었다. 지퍼가 잠기지 않는 바지 한 벌과 꽉 끼는 니트 한 벌에서 한 번 좌절했고, 분명 온라인에서 봤을 때는 영롱했는데 막상 실물로 보니 조악한 손목시계 끈에서 두 번 좌절했다. 외에도 당장은 필요 없지만 할인한다고 쟁인 커피 캡슐 박스나 다시는 이런 가격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문구에 혹해 산 염색약이 있었다. 막상 염색은 미용실에서 하면서, 왜 염색약을 이렇게 많이 샀는지 아득해졌다.


  지금이라도 돌려보내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했지만 몇 개는 반품을 할 수 있는 날짜인 일주일에 닿거나 흘러 있었다. 옷은 살을 빼고 입으면 되고, 커피 캡슐은 나중에라도 쓰면 되는데 워치 스트랩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향의 디퓨저가 걸렸다. 돌아다니는 게 번거롭더라도 직접 대보고 맡으며 사는 게 훨씬 좋았을 텐데 왜 카피 몇 줄만 보고 덜컥 샀는지, 쓴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아 아깝지 않았지만 돈이 아까웠다. 게다가 내 마음에 안 드는 물건을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찜찜했다. 새해 다짐으로 미니멀리스트가 되자고 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다짐을 까맣게 잊고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택배를 시키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일정 금액 이상을 사면 배송비를 없애준다는 얘기에 필요하지도 않은 영양제를 몇 개씩 덧붙여 주문했다. 이러다가는 물건에 파묻힐 것 같다는 위험이 들 때쯤 중고 거래 앱에 글을 올렸다. 미개봉 물건 팝니다. 미개봉이더라도 엄연히 중고이니 값은 싸게 쳐야 했다. 팔리지 않는 물건들도 많았다. 블루투스 스피커 같은 것들은 이미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말 좋은 게 아니면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심지어 물건을 산 주인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물건을 볼 때마다 미안했다. 친구들이 이번 주에 가장 잘 산 아이템을 소개할 때면 나는 집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칙칙한 코트나 주름진 러그를 떠올렸다. 물건을 잘못 사거나 많이 사면 두 가지의 감정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익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코트를 사도 어쨌든 코트를 산 것이기 때문에 정작 마음에 드는 코트를 길거리에서 발견했을 때 사기 껄끄럽다. 이미 집에 코트가 있기 때문이다. 올 겨울을 든든히 버틸 코트를 장만해 두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많이 사면, 예를 들어 커피 캡슐이 집에 쌓여 있다면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시킬 때 주저하게 된다. 집에 커피 캡슐이 쌓여 있어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드는 택배가 때로는 미웠고, 쌓인 눈초리는 그 택배를 마구잡이로 시킨 내게로 돌아왔다.


애착 물건을
찾아라!


⟪내가 너무 싫은 날에⟫에서 전문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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