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긍정 확언을 전하는 일
황금종려상을 받아 화제가 된 영화 ⟪슬픔의 삼각형⟫에서는 시선을 붙잡는 장면이 몇 등장한다. 그중 데이트비를 두고 다투는 주인공들 사이에서 나오는 대사를 꼽고 싶다. 매번 돈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려는 여자를 향해 남자가 왜 그러는지 묻자 여자는 이렇게 답한다. "돈 이야기는 섹시하지 않아." 우연하게 돈 생각을 많이 하고 있을 때였으므로 나는 그 대사가 지나간 장면에 한참 남아있었다. 지금부터 나는 섹시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돈이 없다고 칭얼거리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지만, 이왕이면 돈 이야기 말고 다정과 사랑 이야기를 줄줄이 꺼내고 싶지만, 출간 계약을 했음에도 스스로를 못 미덥게 생각하는 이유는 대부분 통장 잔고에서 기인하므로 돈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고는 나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다.
회사를 나온 지 두 달이 됐다. 꼬박꼬박 입금될 정기적인 수입원이 끊겼다. 게다가 내 성향과 맞는 회사도 찾지 못했다. 최대한 돈을 아끼려 배달 음식도 줄이고 카페를 가는 횟수도 줄였지만, 빨래를 돌리고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돈이 든다. 침을 삼키고 통장 잔고를 열었다. 이대로 쓰다가는 일 년도 못 버틴다는 결론이 나왔다. 늘 피하던 계산을 마주 보는 일은 상당히 버거웠다. 몇 년 동안 쉬지 않고 일했는데, 일 년조차 버티지 못한다니. 돈 벌 구석을 찾지 못하다가는 아끼는 가구와 물건을 모두 처분해야 한다. 비싸게 주고 산 푹신한 의자와 판판한 나뭇결 책상을 바라보았다. 이 아이들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책상과 의자를 파는 일은 단순히 가구를 파는 일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글을 쓸 공간을 잃는 거다.
글쓰기 수업을 할 때였다. 질문이 있냐는 상투적인 물음에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나요. 잘하는 일을 해야 하나요?" 작가를 꿈꾸는데 작가에 관한 책을 읽으면 모두가 전업 작가의 힘겨운 생계 이야기를 해서 진이 빠지는 중이라고 했다. 좋아하는 글을 쓰면서 강의도 잘하면 전업 작가는 무리 없냐는 꼬리 질문을 할 때는 조금 당황했다. 밀려드는 강의를 모두 수락하는 바람에 서둘러 준비하느라 정작 마감을 앞둔 글을 못 쓴 적도 많아서였다.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좋아하는 건 취미로 하고 잘하는 걸 직업으로 삼으라'는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재미가 동반되지 않은 잘하는 일은 아무리 잘해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좋아하는 일을 오 년만, 꼭 오 년이 아니더라도 버틸 만한 기간을 정해두고 해 보라는 답변으로 마무리지었다. 집에 돌아왔는데 정답을 말한 게 아닌 것 같아 한참을 끙끙댔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을 아이들에게 전달한 게 아닌가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현실적으로 접근한다면 잘하는 일로 돈을 버는 게 어쩌면 더 많은 돈을 거머쥘 텐데.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소망은 취업을 위한 면접 자리에서도 감추지 못했다. 글을 업으로 하고 싶어 에디터 직무로 지원했는데, 면접관에게서 "퇴사한 이유가 출간 때문이라면, 다시 출간 계약이 됐을 때 또 퇴사하시겠네요?"나 "그러니까 회사 일보다 작가 일이 더 우선이신 거죠?"라는 무례한 질문을 받을 때면 주눅 들지 않고 꼿꼿이 목을 세웠다. 대답은 유순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글 쓰는 사람을 구하면서 정작 글을 존중하지 않는 곳은 나도 거절이었다. 숙이지 못하는 자존심은 불타는 열정의 밑바탕이 되는 날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하기 싫은 일도 해내야만 하는 회사라는 조직에 일 년 넘게 몸담고 일하는 친구들이 존경스러웠다.
저녁마다 상사 욕을 하면서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아무렇지 않게 웃음을 띠고 출근하는 친구에게 동력에 관해 물었다. 친구는 "월세를 내야 하니까."라고 무덤덤하게 답했다. 그에게서 청소 일을 하던 엄마의 모습이 겹쳤다. "나랑 놀아, 응?" 하고 바짓가랑이를 잡던 내게 단호한 음으로 "내가 돈을 못 벌면 우린 굶어 죽어."라며 팔을 뿌리치던 엄마. 월급을 못 받으면 당장 다음 달 생활비도 빠듯하다고 한숨 쉬는 친구. 나는 왜 자존심을 지킨답시고 그들처럼 하기 싫은 일에 팔을 걷지 못하는 걸까. 혹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겠다며 종일 글을 써도 모자랄 판에 불안감을 지니고 정규직을 힐긋거릴까. 누군가 수없이 많게 펼쳐진 갈래 중 어떤 길을 걷겠냐고 물으면, 나는 울상 지으며 모든 길을 둘러보면 안 되겠냐고 물을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친구들은 하나의 길을 골라 이미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었다.
어느 게 맞고
어느 게 틀린 지는
⟪내가 너무 싫은 날에⟫에서 전문을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