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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Oct 25. 2023

화분은 내일
사라지지 않아

식물을 돌보는 일


11.



  꿈에 그리던 일이 현실이 되면 어떨까. 매주 사던 복권이 어느 날 당첨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 성적보다 훨씬 상향 지원한 대학교에서 합격 통보를 받는 것. 시인이 되겠다고 이십 대를 전부 시로 보낸 지망생이 유서 깊은 문예지에서 신인으로 데뷔하는 것. 거절을 각오하고 오랜 친구에게 사랑 고백을 했는데 친구가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 엄청난 환호를 내질러 아랫집 사람에게서 층간소음을 주의하라는 쪽지를 받을 수 있고,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 급하게 안정제를 찾을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기쁨, 행복, 즐거움, 놀라움이 시시각각 꿈에 도취된 그를 경탄시킬 게 분명하다.


  나는 아니다. 놀라움은 잠시뿐, 조금 전 내가 얻은 행운을 잃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잠식된다. 행운이 지난 몇 년의 시간을 곱씹기도 한다. 당첨된 복권이 내일 아침 사라지면 어떡하지, 복권이 당첨됐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알려야 하는 건지, 시인으로 데뷔하거나 대학에 합격했다면 그 발표가 실은 오류가 난 게 아닌지, 곧 무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건 아닐는지. 사랑 고백을 받은 친구는 친구라는 관계를 잃기 싫다는 마음으로 억지로 고개를 끄덕인 게 분명하다는 확신에 이르면 불안은 더욱 깊어진다. 괜한 일을 벌였다는 자책감과 후회가 잇따라 나를 괴롭힌다.


  십 대가 주인공인, 청소년에게 주로 읽히는 청소년 소설이라는 장르를 알게 된 후로 꼬박 십 년 동안 청소년 소설 한 권을 집필해 세상에 내놓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조그만 힘과 희망을 전달하는 그런 이야기를 내놓고 싶었다. 그건 소망보다 활활 끓는 열망에 가까웠다. 물론 청탁받지 않아도 시간과 애를 들여 장편을 쓰면 그만이지만 잘 쓸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몇 년 동안 동화 작가 모임에 짤막한 단편 소설만 데려간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추세를 보면 고양이가 말을 하거나 유령과 추억을 쌓는 판타지 동화가 인기를 끈다. 사무치는 고독과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 드는 적적함과 곤란함 같은 세세한 감정 묘사를 한 권으로 이끄는 청소년 소설은 드물었다. 작은 문예지에 소설을 내놓아 오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지만 거기서 그만이었다. 장편은 조금 더 화려한, 적어도 환상 존재나 가상 세계를 바탕으로 써야 할 것 같았다. 책은 그 자체만으로 매력적이지만, 팔려야 그 매력을 사람들이 알 수 있으므로.


  작가가 어렵다면 열혈 독자라도 되자는 심산으로 책 두어 권을 들고 단골 카페로 향했다. 노트북을 챙길지 말지 주저하다 가방에 담았다. 읽던 중 혹시나 쓰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를지 몰랐다. 약간의 가능성을 가지고 조금은 더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다른 카페에서 메일을 받았다. 제목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현요아 작가님께, 청탁 관련 메일 드립니다. 이제껏 에세이를 주로 냈으니 또 다른 내용의 에세이일 거라는 마음으로 메일을 조심스레 열었다. 청소년 장편 소설 청탁 메일이었다. 밝은 분위기를 애써 짓거나 판타지 세계를 구축하지 않아도 된다는, 고유한 결과 문체를 담담하게 담아 소설을 한 권 내고 싶다는 편집자님의 이야기에 심장이 요동쳤다. 단편만 줄줄이 쓰던 네가 긴 호흡의 장편을 단번에 쓸 수 있을 것 같아? 마음 어디선가로부터 목소리가 크게 들렸지만 무시하고 답장을 보냈다. 그럼요. 쓸 수 있습니다.


  어렴풋하게 만날 날짜를 잡고 노트북을 덮었다. 집이었다면 눈치도 안 보고 노트북 위로 머리를 털썩 내려놓을 게 확실했다. 애써 정신줄을 붙잡고 어떤 주제로 장편을 내보이면 좋을지 상상에 빠졌다. 요즘 신간으로 나오는 청소년 소설의 동향을 살피는 건 물론, 지침서처럼 붙잡고 읽는 작법서를 꺼내 장편을 쓸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에 대한 글을 읽었다. 정답이 없다는 게 요지였다. 추리 소설 같은 사건 중심의 이야기라면 플롯을 먼저 짜고, 대략적인 이야기를 구상하고 인물을 촘촘하게 짜도 되고, 문체를 믿고 가느다란 줄기로 손전등을 비추며 느리게 나아가도 된다는 이야기가 성실하게 적혀 있었다. 내 경우는 처음부터 결말까지, 갈등이나 복선을 미리 짜두면 막상 전문을 쓸 때 지쳐 나가떨어지므로 다소 둥글한 구상이 필요했다. 어떤 이야기를 적으면 좋을지 고민하는데 아까부터 요동치던 가슴이 아직까지 빠르게 뛴다는 걸 알아챘다.


  실은 이게 다 꿈이면 어쩌지, 기획안을 들고 갔는데 번복당하면 어쩌지, 청소년 소설을 냈는데 반응이 좋지 않으면 어쩌지,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보내고 싶었는데 그 의도가 왜곡당하면 어쩌지, 온갖 생각이 머리를 옥죄었다. 어렵사리 나를 찾아온 기쁨이 한순간 모래처럼 흩어질 것 같았다. 친구에게 내가 겪는 이 불안을 고스란히 전했다. "기쁠 때는 기뻐해야지!" 명쾌한 답을 내미는 친구의 목소리를 듣고 좌절감을 느꼈다. 기쁨을 온전히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화분은 내일
사라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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