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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Oct 19. 2023

시절의 길목

다정을 베푸는 일


10.



  그런 밤이 있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괜히 옛날 사진을 뒤적거리며 추억에 홀로 젖는 밤. 시간을 거스르며 손가락을 내리다 보면 애써 피하려던 존재를 마주치게 되는데, 바로 옛 연인이다. 헤어진 지 꽤 된 연인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노라면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대체로 사진은 기분 좋은 순간만을 남겨두기 마련이라 시끄럽게 싸운 기억은 쏙 빼고 즐거운 기억을 주로 더듬는다. 가을밤 함께 빙빙 돌던 어린이대공원은 참 좋았는데, 그날 지인들과 떠난 글램핑장에서 몰래 나와 바닷가를 걷던 저녁도 잊히지 않는데, 하는 식으로. 한참 추억 여행을 하다 보면 자야 할 시간을 넘긴다. 사진첩을 닫고 눈을 감는 순간부터 추억 여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진에 담지 않은 현실 연애의 기억이 소환되는 거다. 길거리에서 고래고래 싸우던 우리 곁을 서성거리던 온갖 사람들부터 이별 선언을 받았답시고 내 짐을 바리바리 싸서 현관 앞에 덩그러니 놓아둔 그까지. 아무래도 오늘 밤은 쉽게 넘기지 못할 것 같다는 스산한 확신이 든다.


  따로 일기에 적지도 않고 영상으로 남기지도 않았건만 그와의 좋지 않았던 기억이 생생하게 앞을 스친다. 왜 그때 나는 그런 애꿎은 답을 했을까? 왜 가스라이팅을 그만하라고 소리치지 못했던 걸까? 그는 어떻게 나에게 그런 행동을 보였을까? 수없이 떠오르는 많은 물음표 사이로 불현듯 하나의 커다란 물음표가 솟아오른다. 걔는 지금 어떻게 살까? 못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나보다 잘 사는 것도 배가 아프다. 일 년에 한 번 들어갈까 말까 하는 염탐용 계정에 들어간다. 비공개이던 그의 계정이 웬일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 처리가 되어 있다. 나와 헤어진 후 바로 만난 연인과는 잘 지내는 듯싶고, 고대하던 사업을 하면서 돈도 잘 버는 것 같고, 반려 동물도 키우면서 하루의 소소한 기쁨을 잔뜩 누리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잘 만나고 있는 연인 계정도 슬쩍 훔쳐보다가 현실을 자각하곤 내려놓았다. 혹시나 힘들게 살지는 않을까 걱정한 내가 우스울 만큼 잘 지내는 모습에 문득 화가 났다. 나도 잘 지내고 싶어!


  헤어진 연인의 소식도 보았으니 이제는 절교한 친구의 근황이 궁금하다. 각자의 이유로 더는 우정을 지속하기 어려워 내려놓았던 인연에 호기심이 이는 거다. 요즘은 단순히 사진을 올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글을 쓰듯 생각을 기록하는 창구가 하나씩 있어서 어떤 고민을 안았는지까지 알 수 있다. 대학원에 진학했구나, 그렇게 그 학문을 다루고 싶어 하더니. 다음 친구는 유튜브에 브이로그를 올리는 중이란다. 런던에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구나, 바리스타 자격증이라니 멋지다. 훌쩍 지난 시간과 함께 지나가버린 인연의 현재 소식을 곱씹고 있노라면 약간의 허탈감이 찾아온다. 이제 그만하자는 통보와 함께 끊긴 길을 빙빙 헤매다 들여다보지 말아야 할 집의 창문을 몰래 들여다보는 기분이랄까. 내 경우는 특수한 지 모르겠는데 연인도 그렇고 친구도 그렇고 모두 교집합의 지인이 있다. 한 지인이 있다고 가정할 때, 그 지인은 나도 알고 내 옛 연인도 안다. 그 지인은 옛 친구도 만나고 나도 만난다. 멀어진 친구와 연인에게 성격적 결함이 있는 게 아니라 이쯤 되면 내게 있는 건가 싶다. 지인들은 지금도 두루두루 그들과 새로운 추억을 쌓고 있어서다.


  "불교 용어 중에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일어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연이 닿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일어날 일은 언젠가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그 결과 또한 우리의 의지만으로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어디선가 들은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귀를 간지럽힌다. 한때 몇십 년의 미래를 약속할 만큼 열렬히 사랑했던 연인과 서로의 장례식에서는 생전 가장 좋아한 노래를 틀자고 약속한 친구 역시 시절 인연이 되었다. 그때 우리들은 서로에게 기댔고 두터운 신뢰를 쌓았다. 이제는 시절이 흘렀다. 서로의 인생을 살다 우연히 맞닿은 길에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각자의 길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물론 마음 한구석에는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즐겁게 웃고 싶다는 미련이 있지만, 그 소망을 훌훌 털지는 못해도 인정해야 한다.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못할 속 깊은 비밀을 슬며시 내놓던 우리는 이제 무얼 하며 돈을 버는지도 묻지 못할 만큼 서먹한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왜 나는 아직까지 뒤를 돌며 그 시절을 빤히 바라보는지. 다른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단호하게 인연을 끊고 뚜벅뚜벅 잘도 걸어가는 것 같은데. 다른 누군가에게도 옛 애인과 친구의 소식을 들여다볼 염탐용 계정이랄 게 있을지 궁금해졌다. 지금은 나만 있는 것 같았다. 겉으로는 호탕하고 시원한 척하면서 정작 속으로는 말 한마디를 곱씹고 챙기며 끙끙 앓는 내 성격이 지긋지긋했다.


시절의
길목


  끊어진 인간관계를 곱씹는 순간, 내가 저지른 실수가 연달아 생각날 테니 관점을 바꾸기로 했다. 지난날 중에서 사람들을 위해 나누었던 배려와 마음을 떠올리기로. 애정을 담은 칭찬을 플러팅으로 이해해 간혹 오해에 빠질 만큼 칭찬에 야박한 시대다. 나는 설령 상대가 플러팅으로 해석할지라도 칭찬을 내놓는다. 그의 약점이나 단점을 찾아 꼬집기 보다, 그 열정과 관찰력으로 장점을 찾는다. 오늘 입은 옷이 무척 잘 어울린다고, 조금 전 해낸 발표가 대단했다고. 친척 언니의 도움이 컸다. 막 성년이 되었을 때 처음 만난 커다란 사회적 집단에서 골치를 앓을 무렵 언니는 이렇게 조언했다. "나는 누가 아무리 미워도, 그 사람 장점을 꼭 찾으려고 해. 단점만 가득해 보이는 인간이래도 눈 씻고 찾으면 장점 하나는 보이거든." 말에 감동한 나는 이후 아무리 싫은 사람을 만나도 장점을 구태여 찾아 일기에 적었다. 이 사람은 말을 잘하지 않는 대신 다른 이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구나, 이 사람은 재치로 주변인에게 웃음을 주는구나. 가끔 선 넘는 농담으로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당연히 이 마지막 한 문장은 지우개로 벅벅 지웠다.


  상대의 장점을 찾고, 나아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자 어느새 나도 모르게 배려가 몸에 녹아들었다. 작년 겨울이었나, 회사에 다닐 때 나를 괴롭히던 거래처 사장님이 계셨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이번엔 무슨 일이에요?"라고 묻는 건 기본이고 대답 사이에 한숨을 연달아 쉬셨다. 연락하기는 싫지만 연락하기 싫다고 말할 용기도 없어 그날도 받고 말았는데, "예쁜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친절하게 말하지도 않았을 거야."라는 기분 나쁜 말에 자존감이 무너졌다. 전화를 끊고 주변을 돌아봤는데 모두가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동료를 잡고 호소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인데 그렇다면 이야기를 듣는 동료도 함께 기분 나빠질 게 뻔했다.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매번 동료를 데리고 칭얼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혼자 씩씩대다가 나빠진 기분에게서 멀어짐과 동시에 내 기분을 높일 방안을 찾기로 했다. 그건 바로…… 커피를 쏘는 거였다. 커피 내기에서 진 것도 아니고, 왜 갑자기 동료들에게 커피를 사냐 하면 이유는 단순했다. 동료들은 기분이 좋아야 하니까. 나는 기분이 안 좋으니까. 그……으러니까 동료들은 기분이 좋아야 한다.


  기분이 태도로 보이는 사람은 하수라지만 정말 기분이 태도로 하나로 표현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없다고 본다. 화를 받으면 눈썹에 힘이 들어가고 숨이 더 깊게 쉬어지는 건 당연한 증상이 아니던가. 어쩌면 나는 전화를 받으면서 나도 모르게 화를 방출했을지 모른다고. 낌새를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동료는 통화를 마친 나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는 걸 눈치챘을지 모른다. 오늘은 요아 씨를 건드리지 말아야지, 하고 어쩌면 나도 모르는 배려를 시작할 수도 있다. 세상에는 은근히 좋은 사람이 많으므로 나는 그 가능성을 모두 안고 동료들을 카페로 데려갔다. 고맙다는 동료들에게 진짜 웃음을 보인 건 물론이다. 내내 가짜 웃음만 짓다가 진짜 웃음을 지으니 나를 위한 대책이 맞았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한층 나아졌다. 실수를 곱씹지 않는데서 나아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건넸던 기억이 이 질척한 염탐꾼을 막았다. 서로의 일정에 바쁜 나머지 이전처럼 자주 연락을 나누지는 않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시절 인연인 것 같지만, 상관없다. 최선을 다한 기억이 촘촘하게 박혀 있어 나를 구출해 주므로.


  저번 주에는 부산에 다녀왔다. 막내의 대학 면접이 부산에서 잡혔으므로 제주에서 날아온 막내를 데리고 종일 면접 연습을 했다. 기껏 부산까지 왔는데 내 면접도 아닌 연습만 하기에는 괜히 억울해서 막내를 제주로 보내고 숙소에 하루를 더 묵었다. 짧은 하루가 흐르고 비행 시각보다 네 시간이나 일찍 공항에 나섰다. 공항으로부터 삼십 분 걸리는 카페에 가기 위함이었다. 배낭을 메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데 백발의 어르신이 길을 물었다. "학생, 공항 가는 길이에요? 지하철로 김해 공항을 가본 적이 없어서 괜찮으면 동행해 줄래요?" 카페를 가기 위해서는 공항역에서 하나 더 가야 하지만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지하철 의자에 앉아 소소한 대화를 나눴다. 실은 어색함을 못 이겨 내가 먼저 꺼낸 말이 물꼬를 틔웠다.


  "부산에는 어쩐 일이세요?"

  "조카가 결혼을 해서 왔지요. 이십 년 전에 부산에 왔을 때는 이렇게 으리으리하지 않았는데, 세월이 신기하네요."

  "숙소로는 차로 가셨어요?"

  "응. 그런데 갈 때는 비행기로 가려고 아는 사람에게 부탁했지요. 내가 젊을 때 여행을 많이 가서 마일리지가 한가득이거든. 마일리지로 부산에만 열 번이나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거예요."


  조카 분께서 나와 같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한다는 이야기에 두 번 깜짝 놀랐다. 지갑 속에 꼬깃하게 접힌 비행기표 영수증을 표로 바꾸는 일도 기다려드리고 검문소로 안내해 드렸더니 어르신께서 지갑을 꺼냈다. "고마워서 그래요. 차라도 한 잔 마셔요." 한사코 괜찮다는 거절과 함께 인사를 드린 뒤 뒤를 돌았다. "학생, 고마워요!" 들리는 목소리에 다시 뒤를 돌아 꾸벅 인사를 나눴다. 문득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떠오른 건 우연일까. 이름 모를 조카 분께서 즐거운 결혼 생활을 하시기를 바라며, 어르신께서 앞으로도 오래 건강하게 여행을 떠나시기를 바라며 공항 밖을 나섰다. 이런 좋은 기억까지 떠올리자 슬슬 잠이 왔다. 더 졸리기 전에 염탐 계정을 삭제했다. 시절 인연들이여, 앞으로도 부디 잘 지내기를. 나도 무척이나 잘 지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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