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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Oct 07. 2023

계절 맞이 라이딩

휘날리는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 타는 일


8.



  습관처럼 연 창문으로 선선한 바람이 들어온다. 하루아침 달라진 공기에 문득 달력을 봤더니 시월이다. 영원히 그 자리에 가만 머물러 있을 것만 같던 여름이 흐르고 가을이 왔다. 옷장 깊숙한 곳으로 손을 뻗어 숨겨진 후드티를 찾았다. 얕은 기모가 달렸으니 어쩌면 땀을 흘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문을 나섰는데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옷차림이었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자 문득 훌쩍 떠나버린 여름을 너무 미워하기만 한 것 같아 왠지 미안했다. 등이 흠뻑 젖는 한여름일 때는 더위만 끝나면 삶의 질이 높아질 거라 단언했는데, 막상 시원해지니 지난 더위를 더 많이 즐기면 좋았을 텐데 싶은 후회가 든다. 해변가에서 수영을 하고 숲에서 캠핑도 하면서. 나는 늘 이랬다. 여름에는 가을을 기다리고, 가을에는 여름을 돌아본다. 현재에 사는 일은 거의 없다. 좋은 일이 생겨도 미래를 걱정할뿐더러 잠에 들기 전에는 느닷없이 과거의 행동을 떠올린다.


  여름 한가운데 서서 가을을 손꼽아 기다리듯 회사를 다닐 때 역시 퇴사 후의 프리랜서 생활을 기대했다. 더는 지하철에 몸을 욱여넣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설렜고 껄끄러운 동료에게 주말에 무얼 했냐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있어 기뻤다. 입사일만큼이나 퇴사를 기다렸지만 막상 출근을 그만둔 지 한 달이 지나자 불안에 휩싸였다. 앞으로 뭘 먹고살아야 하지? 사람 인생에 평생직장은 없다지만 최대한 오래 붙어 있을 걸 그랬나? 보험비부터 월세까지 나갈 돈은 한가득인데 꼬박꼬박 들어올 돈이 없었다. 아무래도 이번 생은 망한 건가?


  시시각각 떠오르는 물음표를 잊기 위해 펼친 일기장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요즘따라 할 말이 많지만 회사에 해를 미치는 말은 쓰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어 입과 손을 막고 살고 있다. 일상을 그대로 표현하는 게, 누군가의 허락을 받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게 이렇게나 그리운 사실이라는 걸 몸소 깨달으며 출근한다. 프리랜서일 때는 불안하고 답답했지만 괴롭지는 않았다. 무료하고 지루하고 때로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움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이유 없이 종종 슬퍼지지는 않을 때였다.” 그러면 프리랜서 생활은 과연 즐거웠을까. 회사에 소속되지 않았을 때의 심리가 궁금해 여러 장을 넘겼더니 이번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새벽 일찍 사람들이 저마다의 가방을 들고 부리나케 목적지를 정해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이 부럽다. 정오 가까운 시각에 눈을 뜨는 내 주변에는 인기척이랄 게 없다. 분한 일을 겪을 때 함께 동조해 주는 동료도 없다.” 프리랜서일 때는 이런 걱정에 시달리고 회사를 다닐 때는 저런 걱정에 시달리면 도대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나 막막했다.


  아직 서른 전이건만 일곱 번을 퇴사했다. ‘스티브 대리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이상한 외국계기업부터 위태위태한 초기 스타트업과 나름 건실해 보이는 중견기업까지 여러 곳에 몸을 담갔다. 친구들은 여러 곳에 빠르게 입사하는 나를 향해 듣기 좋은 말로 인재라며 추켜세워주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흔히 커리어 로드라 불리는 직업의 길이라는 게 있다면 내 길은 종 잡을 수 없는 꼬불꼬불한 길이었다. 심지어 아스팔트도 깔리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돌길. 어렵사리 서류에 붙고 나서 면접관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언제나 나를 괴롭히는 단골 질문이 등장하곤 했다. “회사를 일 년 이상 다녀본 적이 없네요?” 그 질문이 나오면 맥이 빠졌다. 아무리 예의 바르게 답해도 열에 아홉은 떨어져서였다. 왜 나는 남들과 다르게 이토록 끈적하게 한 곳에서 일할 수 없나 고민했더니 느리게 답이 나왔다. 계절을 맞는 관점과 비슷했다. 겨울에는 봄을 기다리고 봄에는 겨울을 그리워하듯 회사에 다닐 때는 프리랜서를 소망하고 프리랜서일 때는 회사원을 희망했으므로.


계절 맞이
라이딩


  멈추려 해도 끊임없이 솟아나는 고민을 애써 잊어보겠다고 무작정 걸을 무렵 나무 옆에 세워진 초록색 자전거 무리를 발견했다. 정해진 목적지도 맞춰야 할 약속 시간도 없으니 여유로운 마음으로 자전거를 빌렸다. 답답한 속을 뚫겠다며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전기 자전거를 빌려 해안도로를 한 시간이나 달린 즐거운 추억이 생각나서였다. 물론 서울 도심에서는 빠른 속도로 쌩쌩 달리는 전기 자전거를 운전할 능력이 없으므로 따릉이라 불리는 일반 자전거를 골랐다. 서울 위쪽에서부터 시작한 라이딩은 금세 서울 중심부까지 다다랐다. 차가 많아 아무래도 제주보다는 조심하기 바빴다.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는 차를 피하고 혹시나 행인과 부딪칠까 바쁘게 눈을 굴렸다. 이 한 몸 탄 자전거를 운전했을 뿐인데 진이 빠졌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여유조차 없었다. 오르막길에는 페달을 밟는 일에 집중했고 내리막길에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바람에 날려 보내는 기쁨을 만끽했다. 앞으로 돈은 어떻게 벌어야 하지, 다음 들어갈 회사에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하지, 나름 프리랜서를 선언했는데 일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지, 계약한 책이 잘 팔리지 않아 다음 책을 영영 내지 못하면 어쩌지, 같은 나를 옥죄는 물음표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토록 잠잠한 머리는 오랜만이었다.


  자전거를 탔다고 고민이 완벽히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미래나 과거에 종일 매여있는 건 대체로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을 경우가 많으니 이럴 때는 오히려 잠시 걱정을 잊는 게 낫다는 걸 알았다.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에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진 몸으로 튼튼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뿌듯함도 기억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불을 기다리며 잠깐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서야 알았다. 자전거를 탄 이후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음을. 한 달 전 무심코 꺼낸 그 말은 잠시 넣어두었어야 했다고, 무례한 상황에 놓였을 때 울음을 참느라 반박을 하지 못한 과거의 내가 밉다고 과거를 돌아보며 자책하고 아쉬워하던 내 모습이 없었다. 물론 지난 시간을 헤집으며 돌아다니는 일과 육체적으로 단순하게 머리를 돌아보는 일은 다르지만 왠지 이런 것마저 기뻤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어. 주변을 신경 쓰고 앞만 보았어. 내리막에 즐거워하고 오르막에 충실했어.

  

  밀려오는 고민과 불안에 도망치다 맞닥뜨린 라이딩이라는 세계를 어떤 이름으로 반기면 좋을까, 어디서든 이름 붙이는 걸 취미로 삼으니 자전거를 타는 시간도 소홀히 넘기지 않고 명명하고 싶었다. 그건 이번 산문의 제목과 연결된 일이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현재에 기꺼이 충실해지는 방법?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 긴소매로 뒷목에 흐르는 땀을 톡톡 닦았다. 반팔을 입고 나간 어제였다면 긴소매를 활용하지는 못했을 텐데. 그제야 성큼 다가온 가을에 맞춰 후드티를 꺼내 입은 아침의 결정이 떠올랐다. 영화처럼 자전거를 타고 달린 모든 계절의 장면이 지나갔다. 휘날리는 벚꽃을 맞으며 달린 강 근처의 길과 첫 출근날 연달아 버스를 놓친 내가 정장을 입고 회사까지 무작정 페달을 밟던 여름, 기다란 소매로 땀을 닦는 시월의 초입과 한바탕 싸운 아빠가 화해의 손길로 내민 직접 고친 자전거까지. 아빠를 닮아 낯간지러운 말은 못 하겠고, 그렇다고 이 추운 날 밖에서 자전거를 고쳤을 노고를 생각하면 타야겠고. 할 수 없이 두툼한 장갑을 끼고 동네 한 바퀴를 빙빙 돈 한겨울의 열일곱. 자전거를 배운 순간부터 지금까지 자전거는 언제나 계절 옆에 있었다. 다가오거나 찾아온 걱정에 매여있느라 좋은 추억을 외면했을 뿐. 프리랜서건, 직장인이건 저마다 각각의 다채로운 고민이 있을 테니 어느 걱정에 묶여 있지 말고 정류소에 묶인 자전거나 꺼내야겠다. 새로운 계절이 도착했음을 축하하는 기념으로, 오늘밤에는 커다란 공원을 달려야지. 가을바람을 잔뜩 느끼며. 이름하여, 계절 맞이 라이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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