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감과 촉감을 느끼며 명상하는 일
찾아온 감기에 고열로 하루를 꼬박 앓듯 지난 주말은 내내 앓았다. 다만 감기와의 가장 커다란 차이점은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콧물에서 세균이라도 발견되면 세균을 탓할 텐데, 괴롭히는 주체가 나라서 오로지 나만을 원망해야 했다. 나를 괴롭히는 원인은 친구를 향한 열등감부터 세상을 향한 냉소까지 다양했으나 가장 큰 원인은 성실이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며 동생을 괴롭힌 나는 더 이상 사람에게 쓸모라는 가치를 대입하지 않기로 결심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는 쓸모와 몫을 쓰지 않는 대신 성실이라는 지표를 가져왔다. 타인에게 강제로 대입하지 않고 자신에게 대입하기로 한 건 덤이다.
너는 성실하게 무언가를 하고 있니? 성실한 태도로 꾸준히 하는 게 있니? 그 꾸준함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라는 가치로 증명할 수 있니? 침대에 누워 마지막 질문으로까지 다다르면 숨이 막혔다. 프리랜서에 관해 몇 가지 정보를 찾으면 적어도 한 달에 천만 원은 벌어야 떠오르는 프리랜서라고 설명하는 시대인 것 같았다. 누군가 장난 어린 어투로 내 업을 명확히 짚던 날이 떠올랐다. 지금 하고 있는 건 없고, 준비 중인 것은 많다고 즐겁게 얘기하는 내게 "백수네."라고 단언하던 앞에서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당혹스러운 표정이지 않았을까 싶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마음 안에 사는 나는 맞다고 환호했으므로.
식사하는 시간도 허투루 쓰면 안 될 것 같아 자기 계발 영상을 켰다. 자신을 트렌드 예측가라고 정의하는 사람이 진지하게 주장했다. 나는 즐겁게 뜬 밥을 어렵게 삼켰다. 분명 국이 옆에 놓여 있는데 없어진 기분이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이미 사라졌어요. 취업을 한대도 공개 채용으로 사람을 뽑는 대신 능력 있는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채용하는 제도가 인기를 끈 지 오래되었고요. 그러면 직업은 오래가나요? 아니요. 십 년 안으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직업이 소멸될 겁니다. 굶지 않으려면 자신의 업을 스스로 정의해야 해요. 대체되지 않는 유일무이한 사람이 되어야……."
물론 이렇게 전부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다 망했어요. 그나마 망하는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똑똑하게 성실해야 해요. 어쩐지 똑똑하지도 않은 것 같고, 성실하지도 않은 것 같은 내게 미래를 예상해본 이야기는 절망적으로 다가왔다. 친구에게 전문가의 말과 그 위에 슬며시 덧붙인 내 의견을 전하자 친구가 웃으며 "넌 너무 비약이 심해. 아직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 걸?"이라고 답했다. 당장 친구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정신 차리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커다랬다.
시간을 쪼개야 했다. 빚에 허덕이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성공하는 수밖에 없었다. 트렌드 서적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성공했다는 이들의 강연을 찾아다니고 인터뷰집을 읽었지만 이상하게 더욱 조급해졌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했다. 인간 관계도 챙기면서 새로운 업무를 벌이는 게 성공인 것 같았다. 할 일이 많았다. 이 많은 일을 전부 처리하려면 적어도 몸이 세 개는 되어야 하는 데 하나뿐이니 잠을 줄여야 했다. 고등학생 때 하다가 이틀 만에 포기한 나폴레옹 수면법에 도전했다. 커피를 네 잔이나 마시며 각성 상태를 유지하려 애썼다. 밀려드는 잠에 항복할 때면 오늘도 성실함은 글렀구나 싶어 답답했다. 서너 개의 외국어를 통달하고 계절마다 책을 내고 연봉이 일 억 원을 넘긴 직장인들과 나를 시시각각 비교하니 끝이 없었다. 가장 힘든 건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어떻게 그토록 성실하게 움직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자연스레 우는 얼굴이 됐다. 한참 부족해 보이는 나도 모르는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게 기이했다. 도대체 성실의 끝은 어디인지 싶었다. 도착점이 사라진 마라톤을 그야말로 성실하게 달리는 기분이었다.
성실의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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