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간 동안 스마트폰 디톡스를 하는 일
17.
치과 의사가 턱을 이리저리 만진다. "평소에 치아를 꽉 깨무시나 봐요." 나는 고개를 젓는다. "평소는 아니고…… 스트레스받을 때만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한 차례 겪은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말을 덧붙인다. "턱관절 장애인가요?" 내 물음에 의사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다. 근육 이완제를 처방하겠다는 의사의 말에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입을 완전히 못 벌리시지는 않아서 다행이네요. 스트레스 조심하세요." 스트레스를 미리 파악해 찾아오기 전에 슬쩍 피하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한다. 현대인과 스트레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환상의 조합이다. 나는 어찌할 수 없는 스트레스와 그 스트레스를 받을 때 치아를 무는 습관을 연달아 생각하며 산부인과에 간다.
지도 앱으로 수소문해 찾은 인자하기로 유명한 산부인과 선생님은 내게 면역력이 무너졌을 때 염증이 자주 재발한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 염증은 감기 중에서도 독감과 비슷할 만큼 심각하다는 진료를 한다. 슬쩍 시계를 보던 선생님은 오늘이 수요일 낮 세시임을 인지하고 묻는다. "휴가 쓰고 오셨나 봐요?" 나는 고개를 젓는다. "퇴사하고 구직 중이에요." 선생님이 입을 연다. "한 번이라도 직장을 다녀본 사람들이 쉬는 시기에 더 걱정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 조심하라는 말을 다시 한번 들었다.
정형외과도 들렀다. 그러지 않아도 글을 쓸 때마다 욱신거렸는데, 비행기를 놓치지 않겠다며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달리다가 그만 삐끗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글을 쓰곤 했는데 그러지도 못하니 스트레스가 쌓여만 갔다. 아직은 움직이는 오른쪽 팔로 쉽게 넘길 수 있는 짧은 영상을 내리 봤다. 읽어야 할 책이 쌓여 있는데, 어디선가 누워서 스마트폰을 하는 자세가 좋은 자세가 아니라고 했던 것 같은데 싶었지만 몸이 아프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곳저곳이 따끔거렸고 입은 말하려고 벌릴 때마다 아렸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를 나누지도 못하고 아파서 잘 걷지도 못하니 누워서 허공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보는 게 다반사였다. 몸이 아프기 전까지는 몸이 아픈 게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스트레스가 몸으로 발현된다는 것도 간단히 알고 있었지만 몰아서 닥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몇 번뿐인 연말 모임을 잇따라 취소했다.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가서 요즘 근황을 나누면 분명 이곳저곳 아프다는 말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면 내 말을 들은 사람들도 분위기를 타서 기쁘고 소란스러운 연말 모임을 여기저기 아프다는 분위기로 바꾸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모임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아픈 것도 슬픈데 아파서 모임을 가지 못한다니 외롭기까지 했다. 심지어 못 간다고 말하자고 결정한 사람도 나여서 이 외로움도 내가 책임져야 했다. 영상 검색에 고독과 슬픔과 외로움과 스트레스 관리법을 넣었다. 어떤 영상은 외로움은 인간의 평생의 숙제라고 했고 어떤 영상은 현대인은 반드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으니 관리하고 조절하는 게 숙제라고 했다. 학교 숙제를 끝냈더니 인생 숙제가 남아 있었다.
이런저런 고민 때문인지, 아니면 몸이 아파서 머리까지 아파온 건지 두통약을 꺼내 먹었다. 아프기 전에 미리 몸을 챙기라고 충고하던 선배들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흘려들은 내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영양제도 꼬박꼬박 먹고, 운동도 하고, 배달 음식도 줄이고, 채소 위주의 건강식을 챙기자는 다짐 역시 연말이 되면서 서서히 흩어졌다. 체중계에 올라갔더니 진짜 나이보다 무려 열 살이나 많은 신체 나이 숫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또다시 스트레스를 받았다. 몸이 나쁘니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으니 몸이 나빠지는 상황이었다. 이 몸을 가지고 나를 좋아하기 위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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