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과 양말과 잠옷을 잘 갖춰 입는 일
18.
거울을 본다. 뾰루지 파티가 열렸다. 위치도 어쩜 둘이 약속이라도 한 듯 중앙을 차지했다. 인중 가운데에 하나, 이마 가운데에 하나가 났다. 심지어 크기도 만만찮다. 두툼한 컨실러를 발라도 가려지지 않는다. 입으려고 전날에 고이 개어둔 셔츠는 접힌 그대로 주름이 잡혔다. 집에는 스팀다리미도 없다. 쭈글쭈글한 옷에 가려지지 않는 피부와 밤마다 먹은 간식으로 퉁퉁 오른 볼살까지. 이 상태로는 어디든 가고 싶지 않다.
약속만 없었더라면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았을 텐데, 오늘은 빠지기 어려운 일정이 있는 날이다.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약속을 취소할지 망설이다가 결국 나간다. 최대한 외모 걱정을 안 하려 애쓰지만 밥 한 숟갈 뜨면 색이 지워지는 밋밋한 입술이 두려워 주머니에 든 립스틱을 만지작거린다. 다행히 아무도 뾰루지 얘기를, 주름진 셔츠를, 잔뜩 오른 볼살을 언급하지 않았다. 무사히 끝난 일정에 안도감을 느끼던 중 들리는 한 마디.
“이렇게 모인 것도 인연인데, 단체 사진 찍을까요?”
기념으로 찍은 장면이 빠르게 메시지로 날아온다. 정녕 내가 이렇게 생겼다니. 거울로 봤을 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못생겼을까. 꾹꾹 참았던 절망이 쏟아진다.
지금은 그러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불과 오 년 전까지만 해도 그날의 얼굴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그날 입을 옷이 마땅치 않으면 급한 일이 생겼다는 핑계를 대고 약속을 취소하곤 했다. 어렵게 일정을 맞춘 친구를 앞에 두고는 그렇게 말하기 어려웠지만,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 애인에게는 그러기 쉬웠다. 언제부터인가 당연하게 약속 두 시간 전에 만남을 미루는 나를 향해 애인이 불만을 토로했다. 어쩜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마다 아프다는 게 말이 되냐는 얘기였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란 어렵다는 걸 깨닫고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오늘은 내가 못생겼단 말이야. 애인은 한숨을 쉬고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그때는 알겠다는 말을,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다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연히 고맙다는 대답도 거짓이었다. 오늘의 얼굴이 별로라고 생각되는 날에는 억지로 나간다는 뜻으로 모자와 안경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애인이 예쁜 얼굴을 왜 가렸냐고 말하면, 못생긴 나를 위해 애인이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중이라고 여겼다.
반대로 애인이 나에게 “오늘 못생겨서 나가기 싫어.”라고 한다면 너의 어떤 면이 멋지고 내가 너의 어떤 면을 좋아하는지 하나하나 짚어 이야기해 줄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설령 누군가 너의 외모를 지적했어도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이지 나는 네가 세상에서 제일 멋지다고 말할 텐데 그때는 반대고 뭐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름답다는 그의 말이 진심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의 눈은 다른 사람보다 한참 낮은 게 분명했다. 그가 아무리 좋은 말을 건네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내가 못생겼다는 것이었다. 길을 걸어가는 저런 예쁘고 멋진 사람들보다 한참 못 미치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었다. 같이 길을 걷는 친구에게는 번호를 묻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오는데,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없었다.
훌쩍 지나간 유년 시절을 탓하고 싶지 않지만, “왜 너는 네 외모를 좋아하지 않는 거야?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라는 친구의 질문에 곰곰 기억을 돌이켜봤다. 엄마의 영향이 컸다. 엄마는 언제나 둘째와 셋째가 우리 집의 예쁨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일 못난 아이는 첫째인 나라고. 태어났을 때 쭈글쭈글하니 못생긴 나를 보고 경악을 했고, 어린이가 된 뒤의 나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못났다고 집에 놀러 온 아주머니들에게 말했다. 엄마가 자랑스럽게 여긴 둘째와 셋째는 나도 질투 날 만큼 예뻤다. 커다란 눈과 오밀조밀한 코, 날렵한 턱선까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태어난 동생들이 부러웠다.
아주머니들과 열린 한바탕의 티타임이 지난 후에 엄마를 붙잡고 물었던 적이 있다. “나 정말 못생겼어?” 그러면 엄마는 작게 답했다. “네 동생들이 예쁜 건 사실이지. 하지만 네가 완전히 못생긴 건 아니야. 못생겼다고 미리 말해두면 아주머니들이 너를 보고 그렇지 않다고 말할 테니까. 쉽게 얘기하면 기대치를 낮추는 거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잠깐 쉬었지만 동생들의 외모를 칭송하는 엄마의 버릇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엄마는 아직도 동생들의 외모를 칭찬하며 나를 깎아내린다. “아마 그 여파로 내 외모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 이야기를 한참 듣던 친구가 붉어진 눈을 슥슥 닦았다.
오늘은
유독 못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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