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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Dec 16. 2023

망했다는 게 다 뭘까


요즘 나의 알고리즘을 장악한 키워드는 ‘망함’이다. 망한 문구 브랜드 사장님부터 망한 카페 사장님의 이야기가 속속들이 올라온다. 아무래도 스스로 망했다는 생각에 여러 망한 이야기를 찾다 보니 어느새 사업을 접으려는 사람들의 생생한 사연이 내 영상 목록을 차지하는 모양이다.


여러 편의 영상 중에서 단연 인상 깊은 것을 하나 뽑으라면 <1만 팔로워 문구 브랜드 사장님에서 백수가 되어버렸다>다. 영상은 거대 문구 온라인 쇼핑몰로부터 반품된 박스를 여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사장님은 스티커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한다.


“전시부터 행사까지, 문구 브랜드 사업으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왜 망하게 됐나? 글쎄요. 그걸 알았으면 안 망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사장님은 잘 팔리지 않는 이유를 은근하게 안다. 자신의 그림 스타일이 유행에서 차츰 멀어지게 되었다는 말이 이어져서다. 다만 시종일관 사장님은 자신의 처지를 비난하거나 비관하지도 않고 낙관적으로 바라본다. 비관하기는커녕 오히려 “망한 문구 사장님의 브이로그는 처음이죠?”라는 말로 재치를 겸비한다.


사장님의 집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위층에서 떨어진 물로 인해 석고보드에 구멍이 나고 천장에 곰팡이가 슬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덤덤하게 넘긴다. 유행에서 뒤처졌다는, 가위로 잘라야 하는 스티커를 과감히 쓰레기통에 버린다. 나라면 철 지난 스티커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을 텐데. 그러다 빠르게 바뀌는 유행을 미워하고 내 일러스트를 더는 구매하지 않는 사람들을 조금 미워했을 텐데. 튼튼한 사장님은 전혀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사장님은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지 않는 것 같았다. 혹여나 그런 마음을 품었더라도 우리에게 들키지는 않았다.


나는 후회에 빠져 사는 날이 더 많다. 하루는 기쁘게 일어나지만 이틀은 슬프게 일어난다. 과거에 했던 일로 괴로워하는 동료를 보면 “지난 일은 아무리 되짚어도 달라지지 않으니 후회하지 않는 게 나아요. 그때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어요.”라고 조언하면서, 정작 내게는 그 말을 적용하지 않는다. 퇴사하지 않고 틈틈이 더 멋진 글을 썼다면 적어도 지금 망했다는 기분은 느끼지 않았을 거라는 확신을 한다.


괴롭힘을 당한 회사로부터 퇴사한 건 나를 지키기 위해 무척 잘한 결정이라는 걸 아는데, 월급과 복지를 생각하면 어느덧 회사에서 손을 떨며 일하던 과거가 미화되기 시작하더니 회사를 발 차고 나온 과거의 나를 미워하는 지경에 이른다. 생각을 과거로 돌리는 일을 반복하면 어느새 두통이 생겨나서 빠르게 흡수된다는 액상 두통약을 삼켜야 한다. 조금씩 삼키다 보니 벌써 두 통 가까이 비웠다. 언제나 다정한 문체로, 위트 넘치는 이야기를 보내고 싶은데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 소망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


포기하기에는 이르다는 걸 안다. 아직은 월세가 밀리지 않았고, 매번 돈을 빌려달라고 전화 오는 가족이 있기는 하지만 돈이 없어 빌려주지도 못했다. 그러니 갚기를 희망하며 기다리는 생활도 없다. 방구석에 팔지 못한 책이나 스티커가 가득하게 쌓인 것도 아닌데 자꾸 은은하게 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를 밝게 바라보지 않으니 현재도 따라 어둑하게 보인다. 이럴 때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고 뜬 문구 사장님의 브이로그는 슬픈 나를 조금은 더 씩씩하게 만들었다. 그는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 일러스트가 잘못된 게 아니라, 내 그림이 잘못 그려진 게 아니라 유행이 바뀐 거라고. 사람들이 더는 찾지 않는 것뿐이지 그렇다고 일러스트를 그리고 문구를 판 나의 결정이 잘못된 건 아니라고.


이십 분 가까이 이어지는 영상이 끝날 즈음에는 그런 마음이 들었다. 망했다는 게 다 뭘까. 과연 이 사장님은 영상의 제목처럼 망했다고 쉽게 말해도 될까. 몇몇은 겉모습만 보고 그를 망한 문구 사장님으로 여기겠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망하다’는 뜻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끝장이 나다’라면, 이번에는 ‘구실’을 살펴봐야 했다. ‘구실’은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맡은 바 책임’이다. 그러니 망했다는 건 ‘마땅히 해야 할 맡은 바 책임을 하지 못하고 끝장이 났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텐데, 사장님은 문구 사장님으로서의 책임을 다했지만 쏟아지는 일러스트에 묻힐뿐더러 엉성하게 그리는 유행의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는 새로운 다짐을 하고 다른 모습의 그림을 그리고 다양한 문구를 만들 수 있다. 끝이 났다고 단언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한때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뜻의 ‘이생망’이 유행했다. 나는 그 흐름을 타지 않으려 애썼지만 망했다는 언어가 쉽게 쓰인 시점부터 계획과 조금만 비틀어져도 망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여행은 망했고, 이번 글은 망했고, 이번 면접은 망했고, 이번 연애는 망했고, 이번 우정은 망했다고.


과연 그럴까. 내가 자발적으로 놓은 적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그러지 않은 적이 더 많았다. 상대 탓을 하기 싫어 내 탓으로 돌렸을 뿐,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다면 회사도 꿋꿋하게 다녔을 테고 친구가 잘못을 하지 않았다면 우정도 이어졌을 거다. 나는 내가 마땅히 맡은 책임을 다했다. 망한 게 아니었다. 오늘 밤에 바로 연인에게 차이고 친구에게 절교 선언을 받고 면접에서 떨어져도 망하지 않았다. 망했다는 이야기를 속으로 자주 읊조리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는 걸 직접 경험했다. 어차피 망했으니까 해도 안될 것 같고, 다시 용기 내도 여전히 망할 것 같고, 회생 불가능한 느낌이 든다.


몇 만장의 재고 스티커를 꺼내 보여준 사장님은 그다음 영상에서 공원으로 나갔다. 돗자리를 펴고 스티커를 팔았다. 비록 많이 팔리지 않아 빠르게 접었지만 인형이나 떡메모지를 파는 온라인 사이트를 닫지 않았다. 사장님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미련이라고 설명했지만, 나는 미련이라고 보이지 않았다. 그가 닫지 않은 건, 다 놓아버리지 않은 건 모두 망하지 않아서라고.


그는 최근 일러스트페어에 참가하기 위해 부스를 신청했다. 예비번호를 받은 탓에 대기해야 하지만 어찌 되었든 사장님은 페어를 신청했다. 책임을 놓지 않는 이상 망하지 않았다. 아니, ‘망하다’는 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책임을 못하고’이기 때문에 사장님은 계속해서 망하지 않을 예정이다. 그리고 이 말은 이 글을 쓰는 나와 읽을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다. 갚을 빚이 많이 남았어도, 번번이 시험에 떨어져도, 집에 누수가 생겨도, 결별을 했어도 망한 게 아니다. 아직은 망하지 않았다는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책임을 지닌 이상 우리는 영원히 망하지 않는다고, 감히 전하고 싶다.


평일 레터로 발행하는 ‘요아의 방’ 12월 12일호에 실은 글을 슬쩍 공개합니다. 영상의 주인공이신 ‘폐업왕 김사장’님께서 읽어주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올려요. 멀리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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