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사람 앞에서 싫은 티 못 내고 억지로 미소를 띤 채 고개만 주억거린다면, 당장 박차고 나오고 싶은 자리에서 괜히 손가락만 조물거리며 관심 없는 이야깃거리의 흐름을 따라가려 애쓴다면, 차라리 공식적인 배우로 전향하는 일이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결론이 섰다. 사적이든 공적이든 타인을 접하는 모든 상황에서 연기하는 생활은 이미 익숙하니까. 차라리 상대방이 내가 연기를 하고 있음을 안다면 적어도 몸에 과부하가 걸리는 날은 줄어들 것 같았다. 지금은 내 앞에 마주 앉은 사람들에게 내가 연기 중이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조마조마하며 연기하니 그들을 만나고 집에 가는 길이면 간신히 역에 내려 계단을 오르지 못하고 벤치에 앉은 채 가쁜 숨을 고른다.
연기에 소질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열 살 때기는 하지만 나름 연극의 주인공으로 상도 몇 번 받았다. 비록 할아버지가 지은 쿠키나 용에게 납치된 공주를 구하는 늠름한 기사이기는 했지만. 사회에 나오면서는 오히려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슬프지도 않은데 동정을 사기 위해 슬픈 일을 끌어와 잠잠할 때 눈가에 눈물을 고이게 하는 법이나 지인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 웃기지도 않는데 눈까지 웃음을 짓는 법 정도는 완벽히 터득했다.
이제 남은 건 정통 연기뿐. 발성을 배우고 동료 배우와 호흡을 맞추며 카메라나 관객 앞에서 상심 섞인 말투로 대사를 읊다가, 박수갈채를 받은 뒤 감정을 무사히 퇴근시킨다면 누군가에게 심장을 타격당한 듯한 고통에서 해방되지 않을까. 연기 학원에 등록하고, 배우로 데뷔해 조연의 조연 역할부터 맡아 무대에 서는 법을 익히고, 나에게 할당된 대사에 마침표가 붙는 순간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감정을 퇴근시키는 것. 비록 일면식 없는 대중에게 배우라는 이유만으로 일거수일투족을 검열당하겠지만 차라리 그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연기 학원을 찾다 문득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싫은 사람을 만나면 그냥 피해. 싸우거나 마주치는 것도 상대가 상식이 통해야지. 벽에게 얘기를 걸지는 못하니까. 다섯 번 만날 자리라면 한 번만 가는 걸로. 모든 사람들이 미워지면 좋아하는 사람마저 피하게 되니 차차 멀어지는 방법이 스스로를 위한 방법이랬다.
감정을 퇴근시키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억지로 빚은 감정을 애초에 출근시키지 않는 것. 타인에게 잘 보여야 하고, 세상의 관습과 추구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내 감정을 억지로 다듬어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완성된 연기를 보여주라며 밀어붙이지 않는 게 옳다. 출근하지 않았다면 굳이 퇴근할 필요는 없으니까. 아직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어쩌다 보면 이미 감정이 나 몰래 출근해 일을 하고 있지만, 감정이 일을 한다는 상황을 알아차리면 억지로 반차라도 시켜보려 한다. 고생한다며, 앞으로도 밤낮 없이 일하라며 박카스나 홍삼 캔디 같은 건 쥐여주고 싶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