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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Feb 14. 2020

말 더듬기로 유명했던 내가 말 잘한다는 얘기를 듣네

그 노력을 모아 공유합니다


내 별명은 요요요아였다.


이름인 '요아'와 합쳐져, 말을 더듬어 붙여진 이름이었다. 엄마는 그 별명에 기분 나쁘지 않냐 물었지만, 나는 정작 아무렇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말을 더듬는다는 것이 그렇게 안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고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으며 친구들이 "아아아아 알았어."라며 내 말을 따라 할 때면 그저 웃고 넘겼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될 무렵, 사고를 논리적으로 피력하고 내 주장과 의견을 실현하게 하기 위해서는 말을 잘해야 했다.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일과는 달랐다.


맞다. 많은 이들이 내게 이렇게 묻곤 했다. 글을 어느 정도 쓰는 사람이니 마음만 먹으면 말을 잘하는 건 금방이지 않냐고. 그러나 글과 말은 엄연히 달랐다. 말에 쓰는 어휘와 글에 쓰는 단어들이 미묘하게 달랐으며, 글은 지울 수 있지만 말은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었고 말을 듣는 상대방의 태도와 표정을 시시각각 신경 써야 했다.


그렇게 꼬박 오 년을 말에 돌입했다. 재치 있으면서도 진중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연습을 했고, 흥분해 말을 더듬거리려 할 때면 연달아 침을 삼켰다. 청중의 수가 많으면 많아질수록 부풀었던 나의 긴장감을 잠재우려는 노력도 소홀할 수 없었다. 노력만 하면 바로 나아지리라 예상했으나 당연히 아니었다. 말실수도 많았고, 지인의 기분을 상하게도 했으며 발표를 망쳐 집에서 엉엉 운 적도 있었다. 그 모든 경험이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들었나 보다. 어제 칭찬을 받았다. 말을 잘한다는 칭찬이었다.


원래부터 말을 잘했던 이들이라면 감사하다고 답했겠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괜히 울컥해 어떤 답도 하기 어려웠다. 긴장할 때마다, 화가 날 때마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말을 더듬었던 내가 드디어 꿈꿨던 말을 들었다. 그래서 이 글은, 말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내 모든 팁이다.




말을 느리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더듬거리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성격이 급한 사람에게 더 가닿는 말일 것 같다. 하려는 말이 많지만 발음이 또렷하지 않은 사람, 평소 너무 말이 빨라 사람들이 알아듣기 어려워하는 사람이라면 우선 0.7 배속으로 말하자고 다짐하면 좋다. 그런 스스로가 답답하더라도 빨리 말해서 그 사람이 못 알아들으면 한 번 더 같은 얘기를 해야 하니까 오히려 이게 입이 덜 아프다. 속도를 느리게 조절하되 발음을 더욱 또렷하게 신경 쓰면 진중한 느낌이 든다. 속도는 조절하면 되지만 성급하거나 정리되지 않은 말들은 어리바리한 느낌을 준다.


말하려는 말의 첫 문장을 혀로 굴렸다.

회의나 면접에서는 한 질문을 많은 이들이 차례로 답변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답변을 속으로 준비하게 되는데, 이때 입술을 다물고 말하려는 말의 첫 문장을 읊어본다. 세상은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을 때가 많지만 여기서만큼은 말 한마디만 하면 그 이후는 차차 이어지고 이어질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는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는 문장 하나를 읊고 또 읊지만, 속으로 되뇌이는 걸 넘어 입 안까지 되뇌어본다. 물론 말보다 듣기가 더 중요하니, 다음 문장을 어떻게 이을까 고민하며 다른 이들의 말을 놓치기보다는 같은 문장을 익숙하게 만들었다. 첫 문장은 내 것으로.


홀로 연습할 때 : 일상적인 주제를 하나 잡아 대본을 썼다.

홀로 연습할 때, 절대 거창한 주제를 잡지 않았다. 그러면 그 거창한 주제에 맞춰 거창한 답을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 그 부담감에 도리어 말하기 싫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게 묻는, 가령 "주로 어떤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세요?"와 같은 일상적인 질문들을 골랐다. 그리고 그 답변을 외우고 힐끗거리다가 결국 대본을 다 지웠다. 암기에만 치중하면 중간만 잊혀도 그 뒤가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져서였다. 대본을 초고라 여기고 다 뒤집어 버리기. 일상적인 주제로 거부감을 줄인 뒤 대본을 없앰으로써 나를 믿기로.


머릿속으로 세 개의 핵심 단어를 정해 이었다.

대본은 모두 없애더라도, 발표문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단어를 세 개 추려 그 단어만은 잊지 않았다. 그래서 커다란 세 줄기가 나를 단단히 지탱하고 있으니 그 단어를 중심으로 하려는 얘기의 70%만 말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긴장으로 잊어버렸던 나머지 30%가 아깝기도 했으나 그건 다음에 비슷한 주제가 나왔을 때 말할 수 있으므로 내 머릿속이라는 냉장고에 재료들을 넣었다며 토닥거렸다.


모든 심증 뒤에 물증을 넣었다.

줏대 없는 사람으로, 괜히 이런저런 찌라시를 증거로 검증 안된 얘기를 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모든 내 의견과 주장 뒤에 물증을 넣는 습관을 들였다. 그러나 그게 꼭 팩트 체크일 필요는 없다. 그저 내가 어제 보았던 것, 최근에 만난 사람의 사례를 들며 나뿐만 아니라 이런 현상이 사회 곳곳에서 보인다는 얘기만으로 훨씬 내 주장이 단단해진다.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내가 날 촬영했다.

책상 위에 휴대폰을 놓고 후면 카메라로 스피치를 하는 날 찍었다. 엄청나게 오글거리는 일이지만 어차피 나만 볼 영상인데, 라며 철면피를 깔고 스피치를 기록했다. 그 뒤 머리를 자주 만진다거나 눈썹을 찡그리며 계속 발을 움직이는 행동들을 캐치해 3자의 눈으로 나를 합평하려 애썼다. 확실히 '말하는 나'를 타자화하니 부족한 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합평이 그렇듯, 당연히 장점도 기록했다.


실전에 돌입할 때는, 세상에 나만큼 말을 급속도로 느는 사람은 없다고 자기 암시한다.

말을 잘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가장 먼저 했던 건 '내가 배웠던 모든 말들은 잊고, 아기로 돌아가 다시 하나씩 말을 배운다고 생각하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실전에 돌입해 회의를 하고 면접을 볼 때, 하물며 친구들과 얘기하는 편한 자리에서도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면 상대방이 내 얘기를 알아듣는 것도 신기하게 보인다. 외국어를 처음 배우는 한국인의 심정으로, 엄마에게 말을 거는 아기의 태도로. 그러면 그 소통하는 과정들이 모두 소중하다. 또한 세상에 나만큼 말을 급속도로 느는 사람은 없으므로!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이 차오른다. 뭐 어떤가. 자신감이 제일 중요한 건 어느 일이든 마찬가지니까.




생각의 절반 이상을 말로 표현하는 법을 알게 되자,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태도도 변했다. 내 생각은 그대로였음에도 나를 더 논리적인 사람으로 바라봤고, 내 의견을 한 번 더 곱씹어주기도 했다. 또한 흥미진진하게 눈을 빛내며 심지어는 자신이 말할 때마저도 나만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말을 조금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의 질이 높아졌으므로, 나와 같은 고민을 앓는 모든 이들에게 이 얘기를 전하려 한 자 한 자 써보며. 당신의 마음에 머무는 말들이 서랍에서 나올 수 있기를 바라며.





2020-02-14, 브런치와 다음 담당자님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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