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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Apr 09. 2020

10분 일찍 일어나 멍 때리는 효과

아침에 영어 단어 같은 건 외우지 않고요

30분.



집을 나서는 순간을 기점으로 딱 30분 전에 일어난다. 물론 뷰러로 속눈썹을 한 올 한 올 올리거나 언더 마스카라까지 꼼꼼히 칠하는 일은 빼고서. 피부와 립, 눈썹까지만 칠하고 의자에 널브러진 편한 옷을 고른다는 조건 하에. 친구들은 1시간에서 1시간 30분까지도 준비한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내 준비 시간은 비교적 짧다. 30분의 외출 준비 시간은 아침 샤워까지도 합친 거니까.


내 아침 루틴은 이렇다.


1) 아침에 일어나 밀린 카톡을 확인하고 (지하철에서 봐도 되지만 왜 눈뜨자마자 보고 싶은 건지, 잘 오지도 않는 카톡 ……). 2) 따뜻한 물을 쐬며 샤워를 느긋하게 하다가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3) '아니, 15분밖에 안 남았잖아?' 하고 허둥지둥 앞머리를 말린 뒤 화장과 옷을 빠르게 해치운다.


옷을 입는 일이 해치워야 할 행동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공들여 꾸민 적도 있었다. 오늘의 나를 조금 더 세심히 가꾼 듯한 기분이었지만, 단점도 있었다. 딱히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단장한 건 아니지만 뭔가 집에 빨리 들어가기 싫다는 거다(?). 그래서 서점도 기웃기웃, 테이크 아웃해도 될 커피를 굳이 앉아 홀짝댄 적도 있었다. 여유는 생겼지만 잠깐 얻은 여유만큼 다시 또 밀린 일을 촉박하게 해치워야 했으므로 일을 해치우는 것보단 옷을 해치우는 게 낫겠다는 결론으로 돌아갔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8시 30분. 밀린 카톡에 답장하면 9시가 된다. 그러니까 출퇴근만 했는데 벌써 아홉신 거다. 저녁이라도 먹었으면 행복하겠지만 배는 당연히 쫄쫄 굶은 상태. 반년 전부터 식사는 해치운다는 느낌 없이 집중하겠다는 다짐을 지키고 있으므로 느긋히 저녁을 먹으면 아홉 시 반이다. 글 좀 쓰고 책 좀 읽다가 누우면 새벽이고…. 후. 멍 때릴 시간이 필요했다.


멍은 지하철에서도 때릴 수 있지만 조금 더 효율적인 멍(? 그게 뭐야)을 위해 아침 10분을 기꺼이 투자했다. 자기 계발서에 흔하게 등장하는 '아침 시간'이란, 영단어를 욉거나 새벽 기사를 확인하는 일이겠지만 나는 그냥 가방을 열기로 했다. 그리고 나를 위한 물건을 하나 담는 거다.


우움 …… '점심 먹고 요 틴트를 발라볼까' 하며 가방 안에 틴트를 톡 떨어뜨리는 것. '출근길에 스마트폰 하다가 지치면 요 책이나 읽어볼까' 하며 사뒀던 책을 톡 떨어뜨리고. '나중에 달달한 게 땡기면 먹어야지' 하며 마카다미아 쿠키를 똑 떨어뜨리는 것.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딱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필수템이 아니어야 한다. 필수템은 없으면 불편한데 옵션템은 없어도 그만 있으면 좋은 것이니까. 두 번째는, 급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는 거다. 읽고 싶은 책을 사두고 포장지도 안 뜯었다며 오늘은 꼭 읽어야지!라고 다짐하며 넣어선 안 된다. 그저 읽으면 좋고, 바르면 좋고, 먹으면 좋고오 …… 하는 느낌으루다가 떨어뜨리는 거다. 무엇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게 또 하나의 과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7분간 멍 때리며 뒷짐을 지고 방을 걸어 다니다가 오! 요거! 하면서 가방에 똑 떨어뜨리면 끝.


그럼 쫌 더 행복하다. 아침잠 10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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