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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S Jan 17. 2016

수화라고들 이야기하는 수어에 대해서


2015년, 이직한 직장에 청각장애인 동료가 있었다.


아침 회의를 마치고 다들 즐겁게 떠들고 이야기하는 와중에 그 동료가 혼자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의 웃는 얼굴과 빵터지는 대화들을 바라만 봐야 하는 그 마음은 어떨까.

내가 그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미안했다.


그리고 나는 수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수어에서는 표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나는 참말로 나 중심으로 살았다. 관련 전공을 공부해서 적어도 장애우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장애인 비장애인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했으며(장애나 정상이라는 개념이 기준이 되지 않는 단어, 반대의 의미가 아닌 단어로써 장애인의 대립 개념은 일반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들 정말 힘들겠지라고만 추상적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먼저, 수화교육원에서 배운 것은 구화, 즉 입모양을 보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청각장애인이라고 하고, 수화라고들 하는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농인이라고 한다고. 농인 중에서는 본인은 청각장애가 아니라 농인이라는 이유로 장애등록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미의 재정립.

수화가 아니라 수어였다. 손으로 하는 대화가 아니라 손으로 하는 '언어'였기 때문이다.

농인들의 언어. 영어로는 sign language. 손말.






남미에 살았던 적이 있다. 대학도 수료하고 갔는데

언어가 안 되니 일단 현지 초등학교 3학년으로 편입했다. 같은 반 아이들은 나를 지적장애라고 판단했는지 머리를 툭툭 치고 다녔고, 내가 그러지 말라고 영어로 이야기하면 그들끼리 낄낄대며 비웃었다. 선생님들조차 예외는 아니어서, 무려 산수시간에(...) 나를 불러 칠판에 써놓은 백의 자리 나눗셈을 풀어보라고 하던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 나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그들의 속사포같은 스페인어 회화를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모자란 사람 취급 당하고, 내 언어를 사용해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비웃었다.


더 슬픈 것은, 관계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건, 의사소통의 부재.

미묘한 단어의 차이들을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말이 들리지 않으니 반응하지 못하는 것을 무시한다고 이해받고. 스페인어와 영어, 한국어의 문장구조가 다른데 농식 문장 구조 또한 마찬가지여서 일반인 문장구조와 서로 이해하기 어렵고.


(윗 사진은 사랑이라는 한국 수어. 일반인들이 이 단어만 어디서 배워 모든 농인들에게 이 말을 남발하는 게 개인적으로는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입으로 내뱉는 언어로는 즉, 구화로는 모르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사랑한다고 하지 않는다. 농인의 언어인 수어로 이런 말을 하고 다닌다는 건 오히려 농인들을 낮게 보는, 무시하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수어를 배우러 간 농아인의 세계.

처음에 놀란 것은, 화장실 문이 열려있었다는 것.

일반적으로는 용변보는 소리가 부끄러워 화장실의

문을 닫아놓곤 한다. 그러나 여기는 닫을 필요가 없었다. 농인 사회에서는 그게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이다. 누구도 소변보는 소리, 대변보는 소리에 신경쓰지 않는다.



이 세계는 이 자체로 완전하다.


일반인이 들어오는 순간, 그 완벽함에 장애가 생긴다. 진짜 장애 요소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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