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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S Jun 11. 2016

뿌리 온 더 플레이트

ppuri on the plate

채식이라는 것을 시작해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한강의 맨부커 상에 빛나는 그의 작품 채식주의자 때문은 아닙니다. 동물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동물복지를 위해 싸우는 투사가 되기로 결심하여 채식을 선택한 것도 아닙니다. 주변 사람 중 채식주의자가 몇몇 있어서 또한 아닙니다.


 다만 이미 살아온 환경 자체가 페스코-락토 정도 수준되는 저에게는 이제까지 그마저도 가끔 먹던 고기류와 알류만 제한하는 채식이 몹시나 쉬워보였고, 삶의 방식을 이것으로 인해 많이 바꾸지 않으면서도 근사한 이름을 가지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혹적이었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복병은, 제가 탄수화물 중독자라는 것에 있었습니다. 빵과 과자류를 너무나도 좋아하여, 네이버 빵관련 최대 카페라고 하는 곳에서 빵집 얼리어답터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제가, 계란이 들어간 빵류 섭취를 제한하기 시작하자 탄수화물 금단현상에 시달리게 된 것입니다. 업무 중에도 계속 빵들이 생각나고, 출장이라도 가는 날에는 해당 지역의 빵집들이 가는 길 내내 동동 떠다니고 말입니다. 기껏 사먹는 빵이라곤 100퍼센트 통밀빵, 호밀빵-볼콘브로트, 덴마크호밀빵, 테프사워도우, 스펠트호밀빵...덕분에 온갖 사워도우와 발효종별 빵을 먹어보았지만 르빵 딸기케익과 세시셀라의 당근케익, 아이모리의 슈와 카페 드 나타의 에그타르트를 찾아 먹던 저에게는 채식은 너무 힘든 것이었어요.



딱 봐도 건강해질 것 같은 덴마크 호밀빵
제니쿠키. 버터가 많이 들어가 엄청 맛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분명 맛이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늘, 항상, 언제나 가지고 있었고, 저의 행동반경과 동선 안에 있으나 항상 지나치던 유명한 채식빵집에 가보게 됩니다. 우유와 계란의 대체재를 사용하기에 다소 텁텁한 맛은 남지만, 저에겐 신세계가 열리는 듯했습니다.


매주마다 제 집처럼 들락날락하기를 몇 주, 주말과 붙은 휴일을 맞이하여 쉬는 내내 삼시세끼 빵과 과자로만 살기로 결심한 저는, 연휴 전야제로 그 곳의 채식빵을 휩쓸어왔습니다. 그리고 먹었습니다. 맛있게. 빵의, 과자의 맛에 집중하며 음미하며.


그리고 그 다음날, 얼굴이 모두 부어버리는 대참사가 일어납니다.


빵을 많이 먹었더니 호빵맨이 되었어요.


채식이라고 모두 건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다, 채식빵러들의 애정을 받는, 풍문에 소리 한번 들어본 뿌리온더플레이트에 가게 됩니다. 현대무용 공연을 보러 들른 대학로, 공연시간까지는 한시간 정도가 남아있었어요. 대학로 뒤편 길, 고불고불한 골목을 따라 이 길이 과연 맞나..?라는 의문의 끝에서 뿌리온더플레이트를 만납니다.


출처 : 이코노믹리뷰


좋게 말하면 아늑...나쁘게 말하면 비좁습니다.


흑임자머핀


생각보다 가격이 조금 있어 놀라긴 했지만, 먹어보면 압니다. 공감하실 겁니다. 채식베이킹이 이렇게 촉촉하고 모양이 잡혀있을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먹어보면 아주 고소하고 오독오독 씹는 맛이 살아있습니다. 환경호르몬이 나올까봐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케이크피스들을 직접 맨손으로 들어 케이스에 넣어주신 사장님의 손맛 덕분일까요?


당근현미파운드


이외에도 현미캐슈넛크림케이크도 참 고소하고 맛있습니다. 동물성 생크림을 사용하지 않으니 식물성 생크림을 사용했으려나 싶었지만 그 특유의 느끼한 식물성의 맛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흑임자머핀에 흑임자가 어찌나 많이 들어있는지, 이빨 사이사이에 낍니다. 검은 알갱이들이...


사장님은 좋은 먹거리를 판매하신다는 자부심이 있으셨습니다. 저는 이런 자부심을 가지신 분을 좋아합니다. 스스로를 인정하시는 분은 그런 이유가 있거든요. 결코 쉽지 않은 공정이겠지만, 자신에게 떳떳하고, 남에게도 자신있게 추천해줄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미더운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역시나, 모든 베이커리류는 담담하고 고소하고 은은하면서도 뿌리온더플레이트만의 유니크한 개성이 살아있는 맛이 났습니다. 베이커리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지만, 이곳 특유의 맛과 향이 인상적이더군요. 식감 또한 입에서 바스라지는 것이 아닌, 적당한 씹힘과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이 좋았습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채식, 비건 브래등 즐거움을 알게 해준 뿌리 온 더 플레이트였습니다 : )


칭찬을 하려다 도입이 너무 길어지긴 했지만, 대학로 한번 들르시는 김에 여기도 가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제 돈 내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 뿌리온더플레이트 사장님과 아는 사이 아닙니다.

- 제가 사진 못 찍는다는 것쯤은 저도 압니다 하하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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