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루장 Sep 16. 2021

약장수가 약을 팔려면 먼저 사람을 모아야 한다

소설가 이윤기의 글 쓰는법

노회한 약장수는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다짜고짜 만병통치약 사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노련한 작가도 마찬가지다.


약장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약을 파는 것이다. 무작정 약을 사라고 하거나 호객행위를 한다고 팔리는 게 아니다. 그보다 먼저 사람을 모으는 게 우선이다. 그는 먼저 여흥을 베풀어 사람들의 경계하는 마음을 푼다. 무작정 지나가는 사람에게 약을 사라고 권유하지 않는다. 여가수의 흘러간 노랫소리, 사람들이 그 목소리에 이끌리면 원숭이가 나오고, 차력사가 나와 자리를 뜨지 못하게 만든다. 결정적인 순간 약장수는 모든 것을 멈춘다. 약장수는 약에 대해 썰(?)을 풀기 시작한다. 이 약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비기의 명약이며, 지금 당장 구매하지 않으면 다시는 살 수 없는 만병통치약이라는 둥. 만일 효과가 없다면 돈을 물려주겠다는 호언장담은 빠지지 않는다. 모인 사람은 약을 사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손에는 약이 들려있다. 약은 이렇게 판다.


나에게는 소용없는 약이다. 아련한 여가수의 노래, 원숭이 우스깡스러운 묘기 그리고 차력사의 묘기로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다. 그리고나서 약을 팔았다. “언필칭 성동격서(聲東擊西)다. 공갈은 동쪽에다 치고 주먹질은 서쪽에다 하기다.


글 쓰는 일 역시 장터 약장수가 약을 파는 것과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장거리 약장수가 약을 팔려면 먼저 사람을 모아야 하듯이, 글로써 자기 뜻을 전하려면 먼저 독자를 글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읽게 해야 한다.


···


노련한 작가가 쓴 글의 도입부는 대체로 사람 마음을 푸근하게 만든다. 그래서 독자는 그 글에 끌려 들어간다. 작가는 한참 끌고 들어가다가, 본론에 이르면 안면을 싹 바꾸어 버린다. 약은 이 대목에서 파는 것이다.



덧_

이윤기(소설가), 약장수가 가수를 내세우는 까닭

매거진의 이전글 채우기 위해서는 비워둬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