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을 알아야 개념이 선다
개념이란 무엇인가?
개념이 왜 중요한가. 개념이 없다면 우리가 경험한 것은 흘러가는 물처럼 지나가 버린다. 개념이 경험을 포착해 주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준다. 막연하고 모호했던 경험이 개념을 통해서 정리되고 의미를 부여해 준다.
세계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념을 사용해야 한다. 인간이라는 주제가 무수히 다양한 것을 붙잡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바로 개념이다. 우리는 개념에 너무 익숙하기에 모든 직접적인 경험을 개념을 통해서만 이해해야 한다. 그럴 때 오히려 개념이 세계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개념을 통해서 경험이 포착되어야 하기도 하지만, 또한 역으로 경험을 통해서 개념이 풍부한 내용을 갖추어야 한다. 개념과 경험은 서로 전제하며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힘을 가질 때 개념 없는 경험이나 개념 없는 개념이 나타나게 된다
하나의 개념이 무수한 사물을 압축하고 있기도 하지만, 거꾸로 하나의 사물이 무수한 개념을 압축하고 있기도 하다. (전자가 ‘위로의 추상’이라면 후자는 ‘아래로의 추상’이다.) 그래서 개념과 사물 또는 개념과 경험은 서로서로 역설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념은 경험을 포괄하지만, 또한 경험도 개념을 포괄한다.
개념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개념이 있으면 반드시 그 개념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다른 개념을 불러온다. 개념에는 어떤 울림이 있다. 하나의 개념은 자체와 연관되는 다른 개념의 갈래(계열)를 응축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의 개념은 언제나 개념의 갈래 속에 존재한다. 하나의 개념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것을 포함하는 개념-갈래를 생각하는 것이다. 개념 하나하나가 마치 그 안에 다른 개념을 접고 있는 주름 같다고 할 수 있다. 그 주름을 펴서 그 안에 접혀 있는 다른 개념을 펼쳐내는 것이 그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정우의 《개념 - 뿌리들》중에서 <서강_개념-뿌리란 무엇인가>에서 ‘개념’에 대한 부분을 적어본다. 문자로 정리하다 보면 사물의 실체가 분명해진다. 쉽게 말해, 개념이 잡힌다. 정리하면 정리가 되고 개념이 잡힌다. 또 정리된 것을 읽는 것만으로도 개념이 잡힌다.
우리 삶에서 개념이 왜 중요한가? 만약 개념이 없다면 우리가 경험한 것은 흘러가는 물처럼 지나가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설혹 그것을 기억한다 할지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념이 경험을 포착해 주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준다. 막연하고 모호했던 경험이 개념을 통해서 정리가 되고 의미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개념은 인간으로 하여금 단순한 물리적 존재로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사유할 수 있는 문화적 존재로 만들어 준다.
개념이란 무엇인가? 세계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념을 사용해야 한다. 이 세계를 직접적으로 만날 때, 즉 개념을 전제하지 않고 만날 때, 이 세계는 다양한 질적 차이로 다가온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한 질적 차이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경험은 미세하게 보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로운 측면을 함축한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주체가 이 무수히 다양한 것을 붙잡기 위해 사용하는 게 바로 개념이다. 왜 붙잡아야 할까? 아무리 경험을 많이 해도 개념을 가지고 그것을 파악하지 못할 경우, 그 경험은 어떤 인상이나 희미한 기억이나 순간적인 느낌 같은 것으로 지나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냥 지나가게 하지 않기 위해서 그것을 잡아야 한다. 보다 적극적인 맥락에서는, 단순히 경험 자체에만 머물기보다 그 경험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개념이 필요하다. 요컨대 개념이 없다면 우리의 경험은 흘러가는 물처럼 그냥 다 지나가 버리거나, 설사 기억한다 해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 개념이 경험을 포착해 주고 또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개념이란 극히 미묘하고 유동적이고 모호한 우리의 경험 내용을 분절하고 일반화해서(註-그러나 역으로 말해서, 우리는 개념에 너무 익숙하기에 모든 직접적인 경험을 개념을 통해서만 이해하여한다. 그럴 때 오히려 개념이 세계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 때문에 개념을 통해서 경험이 포착되어야 하기도 하지만, 또한 역으로 경험을 통해서 개념이 풍부한 내용을 갖추어야 한다. 개념과 경험은 서로 전제하며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힘을 가질 때 개념 없는 경험이나 개념 없는 개념이 나타나게 된다.) 잡아주는 것이며, 나아가 그 내용의 의미를 드러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개념이란 것은 우선은 구체적인 사물이나 경험 위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일반화되고 추상화되고 평균화된 것으로 개별적인 존재 위에 존재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하나의 개념이 무수한 사물을 압축하고 있기도 하지만, 거꾸로 하나의 사물이 무수한 개념을 압축하고 있기도 하다. (전자가 ‘위로의 추상’이라면 후자는 ‘아래로의 추상’이다.) 그래서 개념과 사물 또는 개념과 경험은 서로서로 역설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념은 경험을 포괄하지만, 또한 경험은 개념을 포괄한다.
개념이란 존재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개념이 있으면 반드시 그 개념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다른 개념을 불러온다. 개념에는 어떤 울림이 있다. 개념은 마치 연쇄반응을 일으키듯이 이어진다. 하나의 개념은 자체와 연관되는 다른 개념의 갈래(계열)를 응축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의 개념은 언제나 개념의 갈래 속에 존재한다. 하나의 개념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것을 포함하는 개념-갈래를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념의 세계는 무수한 개념-갈래의 장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개념은 사실상 한 갈래만이 아니라 무수한 갈래의 교차로에 존재한다.) 개념 하나하나가 마치 그 안에 다른 개념을 접고 있는 주름 같다고 할 수 있다. 그 주름을 펴서 그 안에 접혀 있는 다른 개념을 펼쳐내는 것이 그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접고 있는 (註-따라서 역설적 관계는 개념과 경험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개념과 개념 사이에서도 성립한다. 어떤 개념이 더 상위 개념인가를 확정하는 것이 단단치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점에 관련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너무 낙관적이었고 데리다는 너무 비판적이었다.) 복잡하기 이를 테 없는 그런 개념, 더 정확히 말해 개념-갈래의 장을 펼쳐서 명료화하는 것, 이 작업이 우리가 사유하고자 할 때 부딪쳐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_이정우, 《개념 - 뿌리들》, 그린비,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