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을 알아야 개념이 선다
개념이란 무엇인가?
개념은 보고 느낀 특정 대상의 여러 표상 중에서 성질이 다른 것을 갈라내고 공통된 것을 집어내는 역할을 한다. 인간은 대상을 개념에 의해 인식하지만, 그때 인간은 그것을 손에 잡는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의 사고방식은, 아름다움은 보편적으로 존재하기에 개별적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있으며, 개별적 아름다움은 보편적 아름다움보다 한 단계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념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개념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개념은 개별적인 것에서 만들어진 추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가”, “실재하는 모든 것은 개별적인 것인가”라는 논쟁이 진행되어 왔다.
중세 철학 논쟁에 막을 내린 것은 실재하는 것은 개념이 아니라 개념은 ‘이름’에 지나지 않고 실재하는 것은 개별적이라는 결론이었다. 근대는 실재에 대한 개념의 우위가 그 지위를 잃음으로써, 역으로 인간의 지위가 확인된 시대였다. 분명히 ‘인간이라는 개념이 어디에 존재하는가’라는 문제는 근대적 관점에서 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다. 인간은, 인간이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이 지구에서 없어져 버린다면 인간이라는 개념 그 자체가 불필요할 것이며 결국 소멸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았다면 이 인간이 자기를 사고하기 위해서라도 인간이라는 개념은 존속할 것이다. 즉 인간이라는 실재가 있기 때문에 개념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사고는 추상에 의해 생겨난 개념이고, 추상에 의해 조립된 것이다. 개념적이라 하면 때로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포함하기도 하지만, 인간이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이 개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때에 따라서는 같은 개념을 사용하지만 상당히 다른 것을 가리킬지도 모른다. 인도의 민주주의 개념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개념이 다르다면, 두 나라 국민 사이에 서로 의사소통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같은 의미로 쓰이는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보편적 사고 자체에 대한 신념까지도 흔들어 놓을 수 있다.
나카야마 겐의 《논술 시험에 꼭 나오는 키워드 100》에서 정의한 ‘개념’이다. 문자로 정리하다 보면 사물의 실체가 분명해진다. 쉽게 말해, 개념이 잡힌다. 정리하면 정리가 되고 개념이 잡힌다. 또 정리된 것을 읽는 것만으로도 개념이 잡힌다.
나카야마 겐의 《사고의 용어사전》에서 정의한 ‘개념’도 있다. 하지만 ‘논술 시험’을 위한 제목처럼 좀 더 쉽게 다가온다.
여러 가지 서양철학의 전통적인 개념군을 끈질기게 분석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많이 아는 유식한 사람이 되지 위해서가 아니다. 그 개념이 안고 있는 과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_나카야마 겐
개념이라는 말은 형이상①과 함께 중국의 오래된 문헌에서도 다루어졌다는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개槪’는 되로 곡물 따위를 잴 때, 넘치는 부분을 깎아내는 도구를 나타낸다. 곡식을 그 되에 들어가는 만큼만 모아 주는 도구이다. 개념은 보고 느낀 특정 대상의 여러 표상 중에서 성질이 다른 것을 갈라내고 공통된 것을 집어내는 역할을 한다. 또 서양 말에서 개념이라는 말은 ‘잡다’②라는 동사에서 만들어졌다는 점도 흥미롭다. 인간은 대상을 개념에 의해 인식하지만, 그때 인간은 그것을 손에 잡는다고 생각한다.
개념이라는 의미는 때로 구체적 사물을 나타내는 보통명사와 비슷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돌’이라는 보통명사에는 돌과 돌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정의가 담겨 있기 때문에 이런 명사도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개념은 존재하는 사물뿐 아니라 ‘판단’, ‘의사’ 따위의 추상적인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개념’을 둘러싸고 오랜 역사적 논의가 있어 왔다.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 정의를 추구했고, 플라톤은 그 개념에 아름다움의 이데아(이념)라는 존재를 덧붙였다. 플라톤은 참된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을 이데아이고 아름다운 것은 그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부여받았기 때문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것이라 측정하기 어렵다.
바꿔 말하면 플라톤의 사고방식은, 아름다움은 보편적으로 존재하기에 개별적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있으며, 개별적 아름다움은 보편적 아름다움보다 한 단계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념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개념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개념은 개별적인 것에서 만들어진 추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가”, “실재하는 모든 것은 개별적인 것인가”라는 논쟁이 진행되어 왔다.
중세 철학 논쟁에 막을 내린 것은 실재하는 것은 개념이 아니라 개념은 ‘이름’에 지나지 않고 실재하는 것은 개별적이라는 결론이었다. 근대는 실재에 대한 개념의 우위가 그 지위를 잃음으로써, 역으로 인간의 지위가 확인된 시대였다. 분명히 ‘인간이라는 개념이 어디에 존재하는가’라는 문제는 근대적 관점에서 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다. 인간은, 인간이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이 지구에서 없어져 버린다면 인간이라는 개념 그 자체가 불필요할 것이며 결국 소멸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았다면 이 인간이 자기를 사고하기 위해서라도 인간이라는 개념은 존속할 것이다. 즉 인간이라는 실재가 있기 때문에 개념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사고는 추상에 의해 생겨난 개념이고, 추상에 의해 조립된 것이다. 개념적이라 하면 때로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포함하기도 하지만, 인간이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이 개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단순히 인간이나 자유와 같은 개별 개념으로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러 개념이 생겨날 때마다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즉 세계관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숲에 자라는 수목을 그냥 나무라고만 말하는 사람과, 그 숲의 나무에 가치를 부여해 식물과 약의 보고로 보는 사람에게는 숲과 수목의 개념 그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어떤 개념을 만들어낼까. 그리고 그런 개념이 어떻게 묶이는가에 따라 세계를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이 개념의 틀은 시대와 사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세대 간의 계승을 중시한 과거의 가정과, 핵가족 시대의 현대에 있어서의 ‘가정’은 큰 차이를 보인다. 가정이라는 개념은 시대별로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또 같은 시대라고 해도 인도 사회와 우리나라 사회 사이에서 이야기하는 가정은 그 사회적 기반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같은 개념을 사용하지만 상당히 다른 것을 가리킬지도 모른다. 인도의 민주주의 개념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개념이 다르다면, 두 나라 국민 사이에 서로 의사소통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같은 의미로 쓰이는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보편적 사고 자체에 대한 신념까지도 흔들어 놓을 수 있다.
① 형이상形而上:
형체가 없는 추상적인 것. 구체적으로 볼 수 없는 것, 유형의 현상을 초월한 무형의 것, 감각을 초월한 무형의 본질적 존재로 직관이나 이성, 사고에 의해서만 인식되는 추상적, 철학적, 초경험적인 것 _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② Concept의 어원은 ‘하나로 모아(Con) 꼭 붙잡다(Cept)’라는 뜻.
덧_
나카야마 겐, 《논술 시험에 꼭 나오는 키워드 100》, 넥서스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