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을 알아야 개념이 선다
개념이란 무엇인가?
개념은 의식 속에 있는 보편적인 틀이다. 구체적인 대상이 가진 가장 공통된 특징이 개념으로서 우리의 의식 속에 존재한다. 만약 개념이 자리 잡고 있지 않다면 외부 세계의 각 사물은 우리의 의식 속에 분석되지 않은 한 덩어리의 영상으로 지나갈 뿐이다.
우리는 점차 이 세계의 사물을 구분 지을 줄 알게 되고 그 속에서 사물 간의 질서와 관계도 이해해나갈 수 있다. 개념이란 우리의 의식 속에 구성된 인식의 틀이며, 우리는 그것을 통해 세계를 파악해 간다. 그 개념은 각 사물이 가진 보편적인 특성을 파악하려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대상에 상응하여 살아 움직인다는 점에서 생동하는 우리 의식의 활동성이다.
《대순회보》에 실린 개념에 관한 글이다. “넌 왜 그렇게 개념이 없니”라는 표현에서도 우리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개념이 뭐냐는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개념은 단지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문자로 정리하다 보면 사물의 실체가 분명해진다. 쉽게 말해, 개념이 잡힌다. 정리하면 정리가 되고 개념이 잡힌다. 또 정리된 것을 읽는 것만으로도 개념이 잡힌다.
여러 가지 서양철학의 전통적인 개념군을 끈질기게 분석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많이 아는 유식한 사람이 되지 위해서가 아니다. 그 개념이 안고 있는 과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_나카야마 겐
흔히 쓰는 말 가운데 개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까운 누군가의 실수에 핀잔을 줄 때 “넌 왜 그렇게 개념이 없니”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실수한 상대가 사리분별을 제대로 못한다는 뜻으로 쓴 말입니다. 사실 ‘개념’이란 단어는 철학 용어로서 상당히 중요한 말인데, 철학과의 만남을 통하여 이 개념에 대해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철학에 있어 개념은 ‘하나의 범주에 속하는 모든 개체에 공통되는 특성을 묶어주는 관념’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인간 의식의 도구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대면하는 순간부터 그 세계를 파악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의식 속에 있는 개념으로써 세계를 파악하게 됩니다. 나의 의식 속에 있는 이 개념이 외부 세계의 각 사물들을 비추어 그것과 대응하면서 사물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념은 의식 속에 내재한 보편적인 틀입니다. 구체적인 대상이 가진 가장 공통된 특징이 개념으로서 우리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나무를 예로 들자면, 나무에는 사과나무, 감나무, 참나무, 은행나무 등 여러 종류의 구체적인 나무들이 있지만 이들 서로 다른 나무들 속에는 공통된 속성들이 있습니다. 이 공통된 속성들이 의식 속에 개념으로 자리 잡혀 있고 이 개념을 사물에 비추어서 나무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만약 개념이 자리 잡고 있지 않다면 외부 세계의 각 사물들은 우리의 의식 속에 분석되지 않은 한 덩어리의 영상으로 지나갈 뿐입니다.
개념은 영어로 ‘concept’이며 단어 속의 ‘cept’는 ‘잡다’라는 의미를 가진 어근입니다. 독일어로는 ‘Begriff’라고 하는데 역시 ‘잡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개념이라는 것은 주어진 세계의 의미를 잡아챈 의식의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의 파악(把握)도 ‘잡을 파’에 ‘쥘 악’인 것을 보면 개념을 통해 외부 세계를 파악하려는 인간 의식은 능동적 활동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개념을 통한 파악이라는 것을 달리 말하면 내 앞에 주어진 대상들을 그 특성에 따라 구분 짓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현재 있는 시간과 공간 가운데 펼쳐진 세계는 여러 사물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영상으로 우리의 감각 기관에 주어지는데 이 영상들 속에서 각 개념들을 통해 하나씩 경계 짓고 분간해 갑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점차적으로 이 세계의 사물들을 구분 지을 줄 알게 되고 그 속에서 사물들 간의 질서와 관계도 이해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념의 틀을 거치지 않은 인식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그저 애매모호할 뿐입니다.
정리하자면, 개념이란 우리의 의식 속에 구성된 인식의 틀이며, 우리는 그것을 통해 세계를 파악해 갑니다. 그 개념은 각 사물들이 가진 보편적인 특성을 파악하려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대상에 상응하여 살아 움직인다는 점에서 생동하는 우리 의식의 활동성인 것입니다.
덧_
김대현 ,《대순회보》13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