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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루장 Sep 27. 2021

자유를 원하지 않는다. 단지 ‘출구’를 원하고 있을 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프란츠 카프카


너는 모르지,

自由라는 말이 생긴 그날부터

그 自由 때문에 감옥이 생기고

철조망을 친 인간의 역사

이 땅은 하나의 거대한

사상의 감옥이 되었다.


···


동물원은 또 하나의 슬픈 共和國

自由가 그리울 때 찾아가

철책을 사이에 두고

부끄러운 自畵像을 그리는 곳.


문병란 시인의 〈동물원에서〉의 일부이다. 

그토록 원하던 自由 때문에 “이 땅은 거대한 사상의 감옥”이 되었다. 

학술원에서 원숭이 피터도 “자유로써 사람들은 인간들 가운데서 너무도 자주 기만당”한다고 했다. 

또한 “자유가 가장 숭고한 감정의 하나로 헤아려지는 것과 같이, 그에 상응하는 착각 역시 가장 숭고한 감정의 하나”라 했다.


피터 자신은 결코 붙잡혀 왔지만 결코 자유를 원하지 않는다. 

단지 ‘출구’를 원하고 있을 뿐이다.


자유를 전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의 출구를 오른쪽, 왼쪽, 그 어디로든 간에, 저는 다른 요구는 하지 않았습니다. 출구 또한 비록 하나의 착각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요구는 작았습니다. 착각이 더 크지는 않을 테지요. 계속 나아가자, 계속 나아가자! 계속 나아가자! 궤짝 벽에 몸을 눌러 붙인 채 팔을 쳐들고 가만히 서 있지만은 말아야지.


카프카에 있어서 자유란 일종의 ‘기만’이다.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자유라는 이름의 허상을 꿈꾸는 것이다. 

100년 전 카프카가 원하던 자유는 지금도 찾기 어렵다.


피터는 학술원의 원로와 방청객인 독자, 즉 우리를 조롱한다. 

피터를 빌어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카프카의 독설이다.


인간들은 너무 자주 자유를 착각합니다. 자유가 가장 숭고한 감정에 속하듯이 착각 또한 가장 숭고한 감정에 속하는 것이지요… 저는 오로지 보고만 할 뿐입니다.


덧_

《변신. 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민음사

《뻘밭》, 문병란, 한마당, 1983년 10월 초판 1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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