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루장 Jan 10. 2022

노자, 함곡관으로 돌아오다

나의 이 《도덕경》을 태워버리는 것이 현명할 듯하네. 세상 사람들 모두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알지만 그것은 곧 추함일 수 있고, 선善을 선으로 알지만 그것은 곧 불선不善일 수 있네. ··· 내가 의식하고 잇었던 것은 사실 다름 아닌 선을 어떻게 베풀 것인가 계산했던 것에 불과했지. ···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에 밝게 드러나고 자신을 옳다 않기에 널리 빛나며 자신을 자랑 않기에 공을 인정받고 자신을 뽐내지 않기에 우두머리가 되네. 일부러 어리석은 흉내를 내며 총명한 척했던 것이나 다름없던 거지. ···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가 되고 고요함은 경솔함의 주인이 되네. 타인으로부터 큰 이익을 취하려면 일부러 작은 이익을 내놓아 유혹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지. 싱싱한 고기를 먹기 위하여 특별히 물고기를 연못에 방생하는 것과 같은 거였지.


역사 인식을 새로 하는 것(재해석)으로 현실적 문제에 대한 지혜와 비판을 얻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작업에는 늘 두 가지 혐의가 따른다. 첫째, 현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를 동원하는 것(관제화된 역사문화), 둘째, 검열을 피하기 위해 역사 뒤에 작가의 발언을 숨기는 것(도피로서의 역사 문학). 다행스럽게도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소품문에서는 두 가지 혐의를 발견할 수 없다.


<노자, 함곡관으로 돌아오다> 중국인의 현실주의를  드러내 주는 작품이다. 소를 타고 인간이 없는 사막을 찾아 道와 덕德을 찾으려고 했으나, 자신이 아끼던 소만 죽이고 다시 마을로 돌아와 이렇게 말한다. 검둥이 소가  선생이 됐던 거지. 그는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네.  인간관계를 절대로 떠나서는  된다는 것과, 인간관계를 떠나면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이지. 도덕이나 열심히 떠들어대며 사막으로 뛰쳐나가기보다는, 오히려 일반 사람 속으로 뛰어들어가  포기 묘목부터 심는  좋다는 것이지.


《역사 소품》은 계몽적 성격을 피해 갈 수 없다. 그럼에도 각 편마다 선전 문학을 뛰어넘는 문학적 향기를 품고 있다는 것도 말해두고 싶다. 예를 들어 <노자, 함곡관으로 돌아오다>의 중의적 구성은 이렇다. ①사막으로 떠난 노자로부터 《도덕경》을 받은 관윤(문지기)이 탈속적인 세계관에 취해 나무 밑에 거지처럼 누워 있다. ②사막으로 떠났던 노자가 허기와 갈증에 지친 채 돌아와 관윤에게 물과 떡을 얻어먹고 마시며 인간 세계를 찬미한다. ③속세로 돌아가는 노자를 향해 관윤이 욕을 해댄다.


이 짧은 소품문의 주제는 노자의 현실 긍정에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노자가 환속의 소감을 펼치는 ②가 아니라, 관윤이 두 번이나 농락당한 ①과 ③이다. 노자는 탈속이나 현실 어느 양쪽에도 포함되지 않는 사람이다. 거기에 이 소품문의 묘미가 있다.


나는 이제 중원으로 돌아가려 하네. 인간계로 돌아가려 하는거지. 내가 말한 것은 모두가 엉터리였다네. 도와 덕이라는 것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네. … 사람들에게 이기주의적인 도덕 같은 것일랑은 애기하지 않을 작정이라네. … 사람들을 올바르지 않은 길로 나아가게 하는 나의 이 《도덕경》을 내가 태워버리지 않으면 안 되겠군.  노자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쳇! 저놈의 거짓말쟁이, 사기꾼, 도둑놈, 내가 저 늙은 낙마의 놀림감이 되다니. … 저놈은 그 검둥이 소를 팔아먹은 게 틀림없어. 그래놓고 억지로 길게 거짓말을 만들어서는 내 보리떡 두 장까지도 빼앗아 먹어버린 거야. … 관윤은 분하다는 듯이 중얼거렷다. … 이 역사 이래 최고의 도둑놈아.(도둑놈은 적賊인데 적은 철哲을 의미하기도 함) 노자 네 이놈. 너 또 그 《위선경》을 걸머지고 가서 책방에 내다 팔고 보리떡 몇 개 얻어 처먹으려고 가져가는 거지. 이놈아. …  관윤이 노자를 향해 외치는 소리는 노자와 장자를 팔아먹고 사는 위선적인 작자들에게 외치는 소리로 들린다.


노자는 미스터리 한 인물이다. 늘 소를 찾아보려 했지만 찾지 못했다. 노자의 소를 만나려 한다. 하지만 노자의 검둥이 소는 무슨 이유든지 죽어 노자가 검둥이 소꼬리만 들고 돌아오지 않았는가. 없는 소를 찾으려하니 찾을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않는가. 노자가 관윤에게 《도덕경》을 태워버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물론 태우지 못하고 보리떡 몇 개에 넘긴 것이 내가 보고있는 그것일지도.


지하는 《애린》에서 ‘소’를 찾아 나선다. 지하는 애린을 소에 빗대어 찾아 나선다. 지금 보면 지하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장정일은 “노장사상이나 자연에 대한 경도는 반체제 성향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것을 의식화할 수 없었던 사람이 밟게 되는 자연스러운 행보”라 했다. 장정일의 생각에 백 퍼센트 공감한다. 특히 ‘경도’에.




그 소, 애린 4

_김지하


외롭다

이 말 한 마디

하기도 퍽은 어렵더라만

이제는 하마

크게

허공에 하마

외롭다


가슴을 쓸고 가는 빗살

빗살 사이로 언듯언듯 났다 저무는

가느란 햇살들이 얕게 얕게

지난날들 스쳐 지날수록

얕을수록

쓰리다


입 있어도

말 건넬 이 이 세상엔 이미 없고

주먹 쥐어보나

아무것도 이젠 쥐어질 것 없는

그리움마저 끊어진 자리

밤비는 내리는데


소경 피리소리 한 자락

이리 외롭다


덧_

《역사 소품》, 괄말약, 범우사

《장정일의 독서일기 6》, 장정일, 범우사

《애린》, 김지하, 실천문학

《장정일의 독서일기》, 장정일, 범우사

매거진의 이전글 세계를 속인 거짓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