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게 좋을까, 사는 게 좋을까. 요즘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자주 멈춘다.
어느 헌책 수집가의 세상 건너는 법이다. 자신을 수집가라고 말한다. 궁금했다. 정말 수집가가 된다는 건 세상을 잘 건너는 길일까. 그렇다면 지금 그는 어디쯤 건너고 있을까.
전작주의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모든 작품을 끝까지 읽는다는 건 대단한 성취지만 동시에 집착을 요구한다. 책 읽기의 목적이 집착을 버리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집착을 통해 그 목적을 추구한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전작보다는 마음 가는 대로 책을 펼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분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열독가와 수집가로 나눠볼 수 있다. 둘 다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사실 열독가이면서 수집가인 경우가 비율상 가장 많겠지만, 굳이 나눠 보자면, 열독가란 말 그대로 책 본래의 존재 가치인 읽는다는 면에 치중하는 사람이다. 즉 자신의 소유와 관계없이 열심히 책을 읽는 사람이다.
반면 수집가는 열심히 책을 모으는 사람이다. 한때 열독가였거나 앞으로 열독가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현재는 미처 다 읽지 못하더라도 좋은 책을 모으고 보는 것에 만족한다. 그래서 수집가는 열독가에게 때로 책을 모으기만 하지 읽지는 않는다는 비웃음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열독가가 실용주의자라면 수집가는 낭만주의자이다. 남에게 자신이 가진 책의 양을 자랑하려는 천박한 수집가를 논외로 한다면, 수집가는 책의 다양한 효용성을 좋아하고 책 그 자체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이다. 책에서 얻은 지식이나 문자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삶 그 자체로서 사랑하는 사람이다.
책은 그들에게 읽어야 할 대상일 뿐만 아니라, 늘 곁에 두고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친구인 셈이다.
그렇다면 나는 열독가일까, 수집가일까. 무엇보다 먼저 책을 좋아하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일단 책을 읽고 글을 적으니 좋아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나는 열독가보다는 수집가에 더 가깝다.
책을 읽을 때 형광펜이나 연필이 없으면 불안하다. 당장 읽을 계획이 없어도 책을 사둔다. 책장은 이미 과부하 상태다. 만약 책장이 말을 할 수 있다면 태업에 나섰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책을 들인다. 스스로 수집가라 부르기엔 부끄럽지만, 분명 그 길 위에 서 있다.
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속에서 책은 쌓인다. 읽지 않은 책이 산처럼 높아져도 해결할 방법은 없다. 이것이 내가 열독가보다는 수집가에 가까운 또 하나의 이유다. 열독가는 고민하기 전에 먼저 읽는다. 나는 읽기보다 사고, 채워 넣으며 위안을 얻는다.
결국 책을 향한 마음은 읽든 모으든 다르지 않다. 나는 오늘도 내 수집가적 기질을 인정하며 책을 사고, 마음 가는 대로 책을 펼친다. 그러다 언젠가, 읽지 못한 책이 나를 읽어줄 날이 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