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여자, 마른 여자 그리고 날씬한 여자
고대 비너스상은 풍만한 배를 가지고 있다. 이는 다산과 풍요로움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아름다움, 미美의 기준이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기에는 뚱뚱한 여자가 마른 여성보다 임신과 출산에 더 유리해 이상적인 조건이었을 것이다. 대가 끊기지 않고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주요한 요인이었다.
날씬한데도 살을 더 빼고 싶어 한다. 왜 날씬함에 집착하는 걸까? 아마도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욕망이 아닐까. 예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여성의 타고난 본능이다. 어쩌다가 날씬한 여자가 예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일까? 과거에는 약간 통통한 여자가 미인으로 묘사되었다. 매스컴 때문에 날씬한 여자가 미인의 기준이 된 한 요인이다.
풍요롭고 권태스러운 현대인에게 섹스는 질리지 않는 유희이다. 과거에는 섹스는 생산적인 기능이 중요했다. 그러나 자손을 남기고자 하는 본능이 줄어들면서 성의 생산적 기능보다 쾌락적인 면에 탐닉하게 되었다. 뚱뚱한 여자보다는 마르지 않은 날씬한 여자가 성적으로 더 자극적으로 느끼고 있다. 남성이 아이 어머니의 조건보다는 한 팔로 껴안고 섹스할 때 다양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 날씬한 여성을 선택하는 게 중요한 요건이 되었다.
잘 빠진 몸매, 아기 피부처럼 매끄러운 살결, 반짝이는 눈동자, 건강한 머릿결, 신선하고 유쾌한 이미지 등은 여성이 지닐 수 있는 최고의 무기로 꼽힌다. 그중에서 우선 몸매부터 자세히 살펴보자. 보디라인은 골격과 근육에 쌓인 지방이 연결되어 만들어 내는 곡선이다. 여성의 몸에서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적으로 볼 때 25퍼센트 이상인 반면 남자는 12.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여자가 남자보다 체지방 비율이 높은 것은 번식능력과 높은 상관관계를 지닌다. 가슴과 허리, 엉덩이 부분에 집중적으로 분포된 지방은 ‘나는 아기를 낳을 수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남자들에게 분명하게 전달하는 도구이다. 마른 여성, 다시 말해 체지방 비율이 24퍼센트 이하인 여성은 임신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하고, 깡마른 여자는 배란이 중단되거나 생리 불순을 겪는 일이 잦다고 한다. 즉, 체지방 지수가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배란과 생리가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_잉겔로레 에버펠트
여성을 깎아내는 게 아니다. 여자는 생산과 관계가 깊다. 가슴, 허리 그리고 엉덩이 부분에 집중적으로 분포한 지방은 “나는 아이를 낳을 수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남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런 지방이 매력을 발산하는 도구가 아닌 것으로 바뀌었다. 여성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이를 위해 학대하고 있다.
여자는 남이 자기를 쳐다보는 것을 칭찬으로 간주한다. 자신을 향한 다른 이의 시선을 자신감을 고취시키는 동시에 '주가'를 끌어올린다. 많은 여성이 자신의 몸매를 훑어보는 눈길을 은근히 즐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와닿는 시선을 굳이 제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는 누가 자기를 바라보고 잇는 것을 느낌으로 안다. _잉겔로레 에버펠트
날씬한 여자를 선호하는 것도 남성이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하는 잠재적 기능의 사회적 해석이 가능하다. 이는 중국의 전족한 여자를 부인으로 들이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전족, 작은 발은 성性적 도발을 위한 도구였다. 남성은 노동할 수 없는 여자를 아내로 맞아드리며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건을 사서 치장하는 것의 한계를 자신의 경제력과 잉여 시간이 있음을 잘 빠진 날씬한 몸매로 보여준다.
미인의 기준이 풍만한 여자가 날씬한 여자로 바뀐 것도 남성이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하는 잠재적 기능을 한다는 사회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아도는 식량이 문제가 되는 사회에서는 마른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날씬한 여자는 바로 그런 잉여를 갖고 있다는 증명을 자신의 신체로 행하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생물학적 요구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다 보니 못 먹은 것 같은 ‘마른 여자’가 아니라 잘 먹고 난 후 살을 뺀 것 같은 ‘날씬한 여자’가 미인으로 등장한 것은 아닐까. 지방이 충분히 있어야 할 곳에는 있되 허리는 잘록하고 배에는 王자가 새겨진 여자가. _서현
덧_
《유혹의 역사: 이브, 그 이후의 기록》, 잉겔로레 에버펠트, 미래의 창
《또 한 권의 벽돌》, 서현, 효형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