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무거운 이유
쇼펜하우어는 “독서는 사색의 대용품으로 정신에 재료를 공급할 수는 있어도 우리를 대신해서 저자가 사색해줄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누구나 쉬운 길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동일한 사색도 나의 개인적인 사색보다는 책을 통해 작가의 사색을 좇는 것을 더 좋아한다. 눈앞에 놓인 가시밭보다 작가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평탄한 길을 더욱 사모하는 것이다. 다독의 함정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나친 독서는 현실에 대한 감각을 떨어뜨리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_쇼펜하우어, 《문장론》
책이 무거운 이유
_맹문재
어느 시인은 책이 무거운 이유가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책이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시험을 위해 알았을 뿐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에 밑줄을 그었다
나는 그 뒤 책을 읽을 때마다
나무를 떠올리는 버릇이 생겼다
나무만을 너무 생각하느라
자살한 노동자의 유서에 스며 있는 슬픔이나
비전향자의 편지에 쌓인 세월을 잊을지 모른다고
때로는 겁났지만
나무를 뽑아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한 그루의 나무를 기준으로 삼아
몸무게를 달고
생활계획표를 짜고
유망 직종도 찾아보았다
그럴수록 나무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채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었다
내게 지금 책이 무거운 이유는
눈물조차 보이지 않고 묵묵히 뿌리박고 서 있는
그 나무 때문이다
시인은 책이 무거운 이유는 “나무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라 한다. “눈물조차 보이지 않고 묵묵히 뿌리박고 서 있는 그 나무 때문”이다. 그 나무에는 수많은 사연이 있다. 저마다의 사연이 나무를 더욱 무겁게 한다. 그리하여 책은 무겁다.
남: 책이 왜 이렇게 무거운 거야?.
여: 글자가 많아서 그러는 거지.
남: ???
_봉만대,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많은 것을 담아 무거운 책. 하지만 그곳에서 읽어 낸 내 머리는 깃털처럼 가볍다.
책의 무거움에 비하여 한없이 가벼운 내 머리를 돌아보며 나를 탓한다.
책의 무거움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는 혜안을 길러야겠다.
그저 책을 읽을 뿐.
덧_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 문장론》 , 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