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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루장 Aug 21. 2021

열독가가 아니어도 수집가가 아니어도 좋다

맘이 가는 데로 책을 읽는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어느 헌책 수집가의 세상 건너는 법이다. 그는 자신이 수집가라고 말한다. 그가 수집가가 되어 세상을 잘 건너고 있는지 궁금하다. 세상을 건넜다면 지금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전작 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노력과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집착해야 한다. 집착을 버리는 게 책 읽기의 근원적인 목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위해 집착을 한다면 근원부터 혼란스럽다. 전작보다는 맘이 가는 데로 책을 읽는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분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열독가와 수집가로 나눠볼 수 있다. 둘 다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실 열독가이면서 수집가인 경우가 비율상 가장 많다. 굳이 나눠 보자면 열독가란 말 그대로 책 본래의 존재 가치인 읽는다는 면에 치중하는 사람이다. 즉 자신의 소유와 관계없이 열심히 책을 읽는 사람이다.

 

반면 수집가는 열심히 책을 모으는 사람이다. 한때 열독가였거나 앞으로 열독가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현재는 미처 다 읽지 못하더라도 좋은 책을 모으고 바라보는 것에 만족한다. 그래서 수집가는 열독가에게 때로 책을 모으기만 하지 읽지는 않는다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열독가가 실용주의자라면 수집가는 낭만주의자이다. 남에게 자신이 가진 책의 양을 자랑하려는 천박한 수집가는 논외로 한다면, 수집가는 책의 다양한 효용성을 좋아하고 책 그 자체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이다. 책에서 얻은 지식이나 문자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삶 그 자체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책은 그들에게 읽어야 할 대상일 뿐만 아니라, 늘 곁에 두고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친구인 셈이다.

 

나는 열독가인가, 수집가인가.

그보다 먼저 책을 좋아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열독가인지 수집가인지 구별하는 게 무의미하다. 일단 책을 읽고 글을 끄적거리니 책을 좋아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열독가라기보다는 수집가에 가깝다.



책을 읽을 때 형광펜이나 연필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책을 읽기 어렵다. 당장 읽지 않을 책이지만 책을 산다. 책장이 말을 못 해서 다행이지 아마 말을 했다면 당장 태업에 들어갔을 것이다. 나는 책장을 혹사하고 있다. 그에게 가중한 무게로 억압하고 있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내 수집가적 취향을 위해 못내 못 본 척하고 있다. 수집가라고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수집가의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읽지 않은 책이 넘쳐나는 이 사태를 단번에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늘 고민한다. 내가 열독가가 아니라 수집가인 또 다른 이유이다. 열독가는 이런 고민을 하기 이전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먼저 읽을 것이다. 하지만 수집가로 가는 길에 서 있는 내가 좋다. 이렇게 위안하며 책을 사고 내키는 데로 읽는다.

 


덧_

조희봉, 《전작주의자의 꿈》, 함께읽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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