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의 오적은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렸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시인의 말을 빌어 한마디 하자면 “약을 팔려면 좀스럽게 팔지 말고 딱 전유성처럼 팔아라.”라고 하고 싶다.
전유성은 말은 어눌해 보여도 그의 깊이가 있듯이 글도 약(? 나는 구라를 약이라 말하고 싶다)을 정말 잘 판다고 생각한다. 시골 장터에서 약을 팔 때 약의 효능을 분석, 검증하고 사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모두 파는 사람의 약(말)에 넘어가 약을 사지 않았던가. 물론 거기에 약간의 유희, 장돌뱅이나 원숭이 또는 차력이 양념으로 곁들여진다.
《구라 삼국지》는 집단 창작으로 보인다. 전유성, 이남훈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글, 그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구라가 어우러져 있다. 이 책은 삼국지를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삼국지를 한 번이라도 읽어본 이는 전유성의 약빨에 탄복을 할 것이다.
약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 물 건너 물론 북한을 통한다면 산넘어겠지만 중국의 이중텐이 있다. 그 양반도 약을 정말 잘 판다. 《구라 삼국지》와 비교를 하자면 《삼국지 강의》가 있겠지만 먼저 《품인록》을 보면 약을 잘 판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물론 그 책이 TV 강연을 옮겨 놓은 것이기에 더욱 그러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것이 책의 장점일 수도 있지만 태생적 한계가 있다.
강연이기에 사람을 흡입하는 능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시대를 아우른다. 말 그대로 왔다 갔다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활자에 얽매이지 말고 듣는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그의 약에 흠뻑 빠질 것이다.
삼국지만 본다면 중국에 이중텐이 있다면 한국에는 전유성이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삼국지의 내용보다 그 곁에 양념으로 곁들인 내용을 보면 그의 구라가 대단함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고 책이 가볍거나 천박하다는 말은 아니다. 대중적이라고 꼭 천박한 것은 아니다.
그의 구라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아직도 삼국지를 읽어야 하는가에는 논란이 있다. 그럼에도 삼국지는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동양 삼국, 적어도 이 땅 한반도에서는 남성의 로망이다. 삼국지를 논하면 안줏거리도 하고 누가 옳으니 누가 그르니 인물을 보는 관점도 각기 제각각이다. 어디 이렇게 논란의 소지가 많은 소설이나 이야깃거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고 논하거나 읽을 가치가 없다고 하는 것은 편협한 사고이다. 우리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그때를 상상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책은 보는 이의 상황, 상태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천차만별이다.
전유성의 《구라 삼국지》는 우리에게 《이문열 삼국지》와는 또 다른 관점 그리고 《장정일의 삼국지》와도 또 다른 시각을 갖게 한다. (황석영의 삼국지는 논란도 있고 읽지 않아 논할 수 없다.) 《고우영 삼국지》와도 다르다. 60권짜리 만화《전략 삼국지》와도 다르다. 쓰는 이, 보는 이에 따라 다 제각각이다.
2007년 나온 책이다. 아직도 팔리고 있을까? 잘(?) 팔리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한 때 반짝이는 시류에 나온 책일 수 있다. 그럼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원전(삼국지가 원전이 어디 있고, 정본이 따로 있겠느냐마는)을 그대로 읽는 것도 좋지만 그를 비틀어 새로운 시각으로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한다.
전유성의 약 파는 솜씨를 느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