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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루장 Aug 17. 2021

미생을 너머 완생으로

삶을 얻기 위해 전전긍긍해서는 승리를 얻지 못한다.

바둑은 매우 특별합니다.

세상 어느 일이 나를 이긴 사람과 마주 앉아 왜 그가 이기고 내가 졌는지를 나눈답니까?

그들에게 패배란 어떤 의미일까요?

그들은 패배감을 어떻게 관리할까요?


우리는 늘 승리할 수도, 성공할 수도 없다. 우리에게 패배나 실패는 일상이다. 우리는 모두 완생이 아닌 미생이다. 그들은 패배감을 어떻게 관리할까? 그 패배감은 다음에 어떻게 성취감으로 바뀌어 어떤 모습으로 그들에게 올까? 미생이란 죽은 돌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살지 못했으며 다시 말하면 아직 죽지 않았고 살아있다는 말이다. ‘아직’은 말이다.


이익은 싸워 이기는 데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만으로도 얻어낼 수 있다.


미생이 완생이 되는 방법은 내가 잘하든지 아니면 상대의 실수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잘하는 것과 상대의 실수를 기다리는 것과 둘 중 어느 것이 빠르고 효율적인 방안일까. 바둑은 상대적이니 상대에 따라 다르다. 인생도 그러하다. 나만 잘하면 바둑은 이길 수 있지만 그렇다고 꼭 명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있어야 한다. 나의 승리를 극적으로 만들어주며 패배감을 안을 상대가 있어야 한다. 인생은 꼭 그렇지 않다. 둘 중 하나가 이기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승자와 패자는 나뉠 수 있지만 둘 중 하나가 패배감을 맛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고수는 겁이 많다. 뒤를 알기 때문이다.

하수는 겁이 없다. 뒤를 모르기 때문이다.


《미생》은 비현실적이다. 현실에서는 절대 생기는 않을 일이다. 주인공 장그래는 한국기원 연구생이었다. 아마추어 사범을 직업으로 한다면 중요한 경력이다. 회사라면 그저 이력서의 한 줄일 뿐이다. 학력은 검정고시 고졸이다. 외국어 능력도 전혀 없다. 정상적으로 인턴이 되어 회사 문턱을 넘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그래도 장그래는 인턴이 되었다. 장그래가 인턴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 낙하산으로 회사 문턱을 넘는 데는 성공했다. 그래서 《미생》은 현실적이다. 현실에서 자주 생기는 일이다. “1루는 도루할 수 없다.”라고 했지만, 장그래는 안타이든, 포볼이든 아니면 몸에 맞는 공이든 1루에 나갔다. 그다음은 자신의 몫이다.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는 사소취대捨小取大는 바둑의 가장 중요한 명제다.

그러나 어렵다.

어느 게 작고 어느 게 큰가. 그걸 보는 눈이 없으면 거꾸로 큰 것을 버리고 작은 것을 취하는 우를 범한다.


《미생》이 현실감이 없다는 지적은 한편으로는 옳다. 뭐가 현실인지에 대한 생각 차이일 뿐이다.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다. 모두 알지만 애써 외면할 뿐이다. 현실이 꼭 현실과 같아야 한다는 생각은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며 더 자극적이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판을 흔들려는 자가 함께 흔들리는 것은 확신을 공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그래는 1루는 나갔지만, 2루로 가지 못하고 회사에 연착륙하지 못한다. 회사는 한 번도 고졸을 직원으로 채용한 예가 없었다. 지금도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장그래는 그냥 계약직 사원이었을 뿐이다. 현실이다. 소설이나 드라마처럼 반전은 없다. 동정심에 호소하지 않는다. 그저 현실을 만화로 그린다. 회사에 남지 못했다고 실패한 인생은 아니다. 회사가 하나뿐이겠는가. 이것도 현실이다.


삶은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삶을 얻기 위해 전전긍긍해서는 승리를 얻지 못한다.


다시 돌아가 미생을 완생으로 바꾸는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살아남는 것이다.

상대의 실수를 기다리기에는 남은 삶이 그리 길지 않다.



덧_

윤태호, 《미생》,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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