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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루장 Aug 28. 2021

허균과 홍길동이 꿈꾸던 세상

조선은 역성혁명易姓革命을 꿈꾸지 않는가

《홍길동》도 삼국지처럼 여러 판본이 있겠거니 했지만 내용마저 다르다. 내가 읽은 것은 20세기 초 사직동 세책방에서 제작된 3권 3책으로 이루어진 “세책본貰冊本”이다. 세책이란 대여본을 의미한다. 대부분 완판이나 경판을 번역한 것이다.

 

아동용 홍길동에서 광해군을 폭군으로 말하는 것은 불편하다. 광해군의 폭정으로 허균도 그로 인해 죽었고, 왕에서 쫓겨나게 된다는 식이다.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부정확한 정보는 아이에게 잘못된 역사인식을 심어준다. 홍길동을 읽으며 무엇을 생각할지, 책을 만드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며 안타깝다. 아이 책일수록 더 신중하게 다루어야 함에도 통념으로 해석을 달고 있다. 차라리 해석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원문만을 보여주는 것이 낫다.

 

홍길동 이전에 허균의 삶을 아는 것이 우선이다. 허균의 누이는 여류 명문장으로 유명한 허난설헌이다. 아버지, 형, 누이와 더불어 명문장으로 당대에 널리 알려졌다. 그의 명문장으로 관직에 여러 번 오른다. 하지만 개인적인 호방함과 ‘칠서의 난’에 연루되었다. 얼마 뒤 허균은 역모죄로 죽임을 당한다. 광해군 때 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훗날 대부분 복권되었지만 조선 왕조가 망할 때까지 허균은 위험한 인물이었다.


‘세책본’은 다른 판본보다 내용도 길고 대본용 답게 흥미를 끄는 부분이 많다. 역자 후기를 대신하는 역자 허경진과 허균과의 가상 인터뷰는 이 작은 책자를 읽을 이유를 말해주기도 한다.

 

허균은 1614년 1615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천주교를 알게 되었고 중국이 아닌 다른 서양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세계지도와 천주교의 계를 가지고 들어와 친구들에게 보여준다. 인터뷰에서 허균은 “나는 서양의 지식을 받아들여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그게 이루어졌다면 연암의 《열하일기》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거라 말한다. 중국이나 일본의 누군가의 “한수일기”가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17세기에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다면 20세기 일본에게 당한 굴욕은 없었을 것인데... 표류되어 제주도에 십여 년을 조선에서 보냈던 하멜에 대한 태도도 이와 마찬가지로 아쉬운 부분이다.


맹자가 제선왕齊宣王더러 “왕의 신하 중에 만일 제 처자를 그의 친구에게 맡기고 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본즉 그의 처자들을 추위에 얼리고 굶주리게 하여 놓았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 자와는 절교할 것입니다.”

“옥관이 옥졸들을 통솔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 자는 파면입니다.”

“나라 구석이 잘 통치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은 곁에 있는 사람 쪽을 돌아보면서 못 들은 척하고 딴 말을 꺼내었다.


맹자는 덕을 잃은 황제를 치고 새로이 왕조를 세우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주장했다.


정중부의 난 이래 나라의 공경대부는(公卿大夫) 노예 계급에게서도 많이 나왔다. 왕후장상(王侯將相)에 어찌 원래부터 씨가 있겠는가. 때가 오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주인의 매질 밑에서 근골(筋骨, 근육과 뼈, 즉 신체)의 고통만을 당할 수는 없다. 최충헌을 비롯하여 각기 자기 상전을 죽이고 노예의 문적(文籍)을 불 질러, 나라로 하여금 노예가 없는 곳으로 만들면 우리도 공경대부 같은 높은 벼슬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고려 무신 강점기 시절 최충헌의 노비, 만적이 일으킨 '만적의 난'은 한반도 역사에서 '신분해방'을 목표로 외친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의 사고로서는 급진적이었지만 ‘역성혁명’까지는 아니었다.



길동의 소원이 병조판서를 한번 지내고 조선을 떠나는 것이라고 했으니, 제가 원하는 것을 한 번 들어주면 제 스스로 전하를 사모할 것입니다. 이때를 타서 잡으면 좋지 않을까 하나이다.

···

길동이 궁궐 안에 들어가 절을 하고 아뢰었다.

신의 조가 깊고도 무겁건만 도리어 천은을 입어 평생 한을 풀고 돌아가옵니다. 전하를 영영 떠나고자 하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만수무강하소서.

···

신의 마음을 정하지 못해 무뢰배와 어울려 관청에 폐를 끼치고 조정을 시끄럽게 한 것은 신의 이름을 전하께 알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성은이 망극하여 신의 소원을 풀어주셨으니, 충성을 다하여 나라 은혜를 만 분의 일이라도 갚는 것이 신하의 떳떳한 도리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고 전하께 하직하고 조선을 영영 떠나 한없는 길을 가려고 합니다. 벼 천 석을 한강으로 실어다 주시면 이제 수천 명 목숨을 보존하겠으니, 성상의 넓으신 은덕을 바랍니다.

 ···

율도국 왕이 무도하여 정치를 제대로 하지 않고 술과 여색만 즐겨, 백성이 도탄에 빠졌다. 하루는 길동이 여러 사람에게 말했다.

이제 군사도 정예해졌고 곡식도 넉넉하니, 무도한 율도를 치는 것이 어떻겠느냐.




홍길동의 소원이 ‘병조판서’라는 발상이 전근대적인 허균의 사상을 드러낸다. 계략으로 수여한 ‘병조판서’를 제수받은 홍길동은 왕에게 엎드려 절을 하고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무뢰배와 어울려 관청에 폐를 끼치고 조정을 시끄럽게 한 모든 게 자신을 알리고자 했고, 이제 조선을 영영 떠나려 하니 벼 천 석을 요구한다. 종교, 신념을 내세우는 테러리스트가 하는 전형적인 양아치(?)의 수법이다.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든가. 


공갈로 삥(?) 쳐서 돈과 수하를 확보한 길동은 다른 나라 내정에 간섭해 율도를 정벌한다. 민주주의를 세우고 나라의 평화를 위해 세계 경찰을 내세우는 미국米國의 행태를 보는 것 같지 않는가. 무도한(?) 율도라는 것을 왜 길동이 평하는가. 길동의 목적은 자신과 패거리가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허균은 진정 ‘새로운 나라’를 꿈꿨을까? 그랬다고 생각한다. 단지 21세기 우리가 생각하는 근대국가의 개념을 그가 가졌을 리는 없다. 그 나름의 지식으로 ‘새로운 나라’를 꿈꿨다. 허균이 ‘역성혁명’을 꿈꾸고, 홍길동이 조선이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면 그 이후 세상을 달라졌을까? 홍길동이 행동하는 과정이 우리가 보기에는 전근대적이고 봉건주의를 벗어나지 못해 보이지만 당대의 시각에서 보면 반역이자 혁명적인 시각이다. 허균을 조선 왕조 내내 불경으로 취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덧_

허균, 《홍길동전》, 책세상, 2004년 2월 초판 1쇄

맹자, 이을호 역, 《맹자》, 올재, 2012년 4월 초판 1쇄 


덧_둘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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