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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산프로 Feb 11. 2024

최고의 순간에 찾아온 좌절감_1편

이번 설날 연휴는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다. 너무 힘들었던 일을 잠시 쉴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다시금 고민하게 되는 기간이다.


내 최고의 고민은 "앞으로 어떻게 밥벌이를 해야 하는가?" 이다. 지금 직장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높다. 너무바쁜거 빼면 말이다. 그런데 이 바쁨을 이제는 버텨내지 못하겠다. 돈도 많이 받고 이런저런 대우도 다 좋다. 팀원도 좋고...다 좋다. 근데 그냥 내가 너무 힘들어서 버텨내지 못하겠다. 전설같이 들려오는 메이저 컨설팅 회사 또는 글로벌 투자은행에 다니는 사람들의 업무량을 비슷하게 따라가는 것 같다. "지난 1년은 새벽 2시 전에 퇴근해본 적 없다." 하는 그들의 레전드 같은 말들이 자꾸 나에게 벌어지고 있다.


사실 그만큼 바쁘게 일해도 될 만큼 많이 받는건 아니라고 생각드는게 문제겠지...근데 얼마를 줘도 이렇게 일하고 싶지 않은게 더 큰 문제이다. 체력이 바닥을 보이니까 아무것도 해낼 의지와 욕심이 안생긴다. 흔히 말하는 "지속가능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더 갖고 싶은 것도 없고, 지켜야 할 것은 꼭 이렇게까지 일 안해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더 하기 싫다.


방금 얘기한 "지켜야 할 것은 꼭 이렇게까지 일 안해도 지킬 수 있다"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대출이 없는 자가에 살고있다.

2. 배우자도 돈을 벌고 있다.

3. 자녀가 없다.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다.

4. 30대 후반의 나이로 이제 잠깐 쉬어도 취업에 문제없는 마지막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5. 여차하면 예전 다니던 회사들로 돌아갈 수 있다.

6. 집근처에서 알바하며 이런 저런 사이드잡을 하면 그래도 월 300이상 벌 수 있을 것 같다.

  -> 강의 요청 들어왔던 것들 다 하면 확실히 할 수 있다.


이런 여섯 가지 이유가 있다보니, 내가 글로벌 투자회사 다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일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리고 3~5년차 이럴 때는 지금 내가 하는 이 어려움과 고통들이 나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물론 계속 성장할 수 있고 더 높은 곳을 향해 갈 수 있겠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더 높은 곳"에 대한 정의를 못하겠다는 것이다.


돈을 많이 주는 곳? 유명한 회사? 뭐 그런 것들이 "더 높은 곳"일 수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더 높은 곳"에 가고싶은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더 높은 곳에 가고싶은 마음이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중소/중견/글로벌/유니콘/협회 등 다양한 형태의 직장에서 느꼈는데 규모가 큰 곳은 나랑 잘 맞지 않았다.

2. 지금보다 더 높은 연봉을 줄 수 있는 회사에서 나를 뽑아주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3. 돈을 지금보다 더 많이 주는데 그렇다고 더 바쁜 회사에 가고싶지도 않다.

4. 만약 내가 연봉 2억이 돼서 월 실수령액 1,000만원을 받아도 결국 생활은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5. 기껏 해봐야 더 좋은차 사고 좀 더 좋은 동네에 있는 집에 사는 것인데 그건 지금에서 만족할 수 있다.

6. 더 좋은걸 가져도 그 때가 되면 그보다 더 위의 것들을 열망하게 될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면역력이 떨어져 온 몸이 가려워 미칠 지경이며, 어차피 이직을 해도 직장을 다니는 이상 계속 이 삶이 유지될 것이기에 그만살고 싶다. 회사생활 때문에 그만살고 싶지 않아서 심리상담을 다시 받고있다. 심리 상담에서 지금의 내 상태를 "겨울철 전기차"라고 정의했다. 겨울철 전기차는 기온이 낮아지면서 배터리 효율이 엄청 낮아진다. 여름보다 딱 절반의 전비를 보이는데 지금 내 상태가 그렇다고 했다. 보통 "뭔가를 사고 싶다." 또는 "뭔가를 해야만 한다." 같은 이유가 고통을 버티게 하는데, 지금의 나는 고통을 참아낼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체력적인 부담까지 같이 와버리니까 버텨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생각해봤다. 어떻게 사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인가에 대해서.


1. 너무 바쁘지 않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며 적당한 성장을 하고싶다.

 > 너무 바쁘지 않은: 아무리 늦어도 10시 전에는 끝나는 야근을 주 3회 미만으로 할 수 있는 상태

2. 주말과 퇴근 후에는 월급 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강의나 내 역량 강화를 위한 시간을 갖는다.

3. 주 2회 이상 운동을 하며 적당히 건강한 식단을 생각할 수 있는 정신적/신체적 여유를 갖는다.

 > 1번 상태일 때 난 주3회 출근 전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었다.

 > 이 때는 매일 4개 씩 영어 구동사도 외워가며 열정적으로 살기 충분한 에너지가 있었다.


물론 삶은 완벽할 수 없다. 방금 얘기한 1~3번을 완벽히 지킬 수 있는 곳이 직전 회사였다. 재무제표에서의 부채와 당기순이익 비율만 따지는 문화에서 모든 것을 포기한 구성원들과 함께 하는 것이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서 지금 회사로 온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원하는 것을 얻음으로 생기는 새로운 결핍을 계속 다시 채워가며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하는게 문제다. 아마도 이건 인간의 본능일 것이다. 이런 본능을 제어할 수 있는 성인군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만 살아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어차피 자꾸 이런 얘기해도 그럴 용기도 없기에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이게 너무 어렵다.


사실 지금 브런치에 이렇게 솔직한 내 마음을 쓰는 것 자체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내 몸부림이다. 생각을 정리하면서 내 문제점을 정확히 정의하고 새로운 시도를 위한 가능성을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지금 직장에서 덜 바빠질 수 있는 방법은 새롭게 채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빠르게 온보딩을 해서 일을 좀 나눠갖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5월정도는 돼야 이 모든 것들이 이뤄질 것 같은데 그 때 까지 버텨낼 에너지가 없다. 솔직히 그 때 까지 버텨야 할 이유도 모르겠고 간절함도 없다. "팀원들보자 먼저 그만두는 팀장이 되어서는 안된다." 라는 이유 말고는 아무것도 없으니...목적 자체가 "나"를 위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바라보고 있는게 문제이다. "팀원들한테 비난받는 팀장이 되고싶지 않다"는 이유로 "팀원들보다 먼저 그만두는 팀장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해결책은 "(1)돈을 더 벌고 싶은 이유를 만들자" 혹은 "(2)적당히 일해도 어느정도 벌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건방진 소리지만 두 가지 해결책을 선택할 수 있고 그것을 실현에 옮길 수 있는 상황도 되어있다. 그런데 나는 1번은 의미가 없어 못할 것 같고, 2번은 용기가 없어 못하고 있다.


너무너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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