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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벚신발 Sep 18. 2019

<단편 소설>

습작

    수정이는 세상에 나온 지 이틀이 되는 날에 세상을 떠났다. 병원 측에서는 선천적으로 심장판막에 이상이 있었다 했다. 하기야 이틀 만에 병원서 눈을 감은 아기에게 후천적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갓난아이가 후천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었을 리가 없을 터였다. 나는 반나절이 지나서 밤이 돼서야 뒤늦게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아내는 혼자서 반나절 동안이나 수정이의 빈자리를 고독하게 뼈에 새겼을 것을 생각하니 '왜 곧장 말해주지 않았냐'같은 의문이 들 틈조차 없었다. 나로서는 최대한 당황하지 않은 척 대처할 뿐이었다. 아내가 적게나마 의지할 대상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간에 아내는 결국 퇴원 날, 수정이 대신에 평생 지니고 갈 절망을 베고 퇴원한 셈이다. 


    그때부터 나는 이따금씩 똑같은 꿈을 꾸곤 했다. 먼저 활짝 웃고 있는 수정이와 아내의 얼굴이 보인다. 그런데 어떤 유리막 비슷한 것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윽고 막에 거울처럼 반사되어 초췌해진 내 모습이 보인다. 마치 시간의 흐름이 나에게만 해당하기라도 하는 듯이 내 머리는 흰머리가 성성하고, 주름이 얼굴 군데군데에 자리 잡고 있다. 눈앞의 화목한 장면에 나만 포함되어 있지 않다. 있는 힘껏 둘을 불러보지만, 내쪽으로는 시선이 닿지 않는다. 마치 무지개처럼 가까이 가려고 노력할수록 어렴풋이 멀어져만 간다. 얼마 안 가 나는 혼자 깜깜한 공간에 홀로 남게 되고, 그때 꿈에서 깬다. 꿈에서 쫓겨났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고 꿈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한다. 블라인드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희미한 달빛을 전등 삼아 방 안을 둘러본다. 아내를 바라보면서 꿈을 되짚어본다. 방 안이 어두운 탓에 벽에 걸린 시계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초침 넘어가는 소리로 방안이 가득 채워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딱히 꿈에 대해 이렇다 할 해석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기야 떠오르지 않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절망 속에서 더 큰 절망을 두려워하는 것밖엔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내는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갔다. 밥 한 끼 먹는 것조차도 죄책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어쩌다 평소같이 먹은 날에는 구역질까지 해댔다. 요컨대 아내가 느끼는 죄책감과 절망감이 배고픔의 고통을 이겨버린 모양이었다. 솔직히, 나로서는 아내의 행동이 조금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수정이가 죽은 것은 죄책감을 느낄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수정이의 병은 어떻게 보나 사고였다. 아내는 종전에 자신이 몸을 좀 더 건강하게 했으면 수정이가 온전하게 살아있지 않았을까라며 자책하는 모양이었다. 자식 잃은 부모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일 것이다.


    아내는 항상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사람이 그렇게 오랫동안 쉬지 않고 울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울지 않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아내의 눈에서 생명력을 전혀 볼 수 없었다. 마치 눈물과 함께 영혼이란 것이 빠져나가기라도 한 듯.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돌이켜보면 그때 아내는 이미 죽음에 한없이 가까워진 상태였던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아내가 '아이는 낳지 않는 게 좋겠다'라고 말한 것은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자식 따위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생각이었다. 수정이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수정이가 존재했다는 사실마저 깨끗하게 잊어버렸으면 했다. 그저 아내가 하루빨리 과거의 절망 속에서 벗어나서 현재에 머무르길 바랄 뿐이었다. 시간의 흐름 위에 수정이를 그만 놓아주고 나아가길 바랬다.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거에 남은 한 살의 수정이를 평생토록 붙들고 있을 순 없는 것이다. 


    내가 이따금씩 꾸던 악몽들이, 이를테면 하나의 직감이었다는 것이다. 이제 막 현실로 다가온 후에야 스스로의 무력감에 대해 화가 치밀었다. 아내가 생사를 넘나들 때마 저도, 나 같은 존재는 곁을 지키는 것, 말에 경청하며 위로를 건네는 것과 같은 형식적인 도움밖에는 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로서는 나름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 것이 고작 그 정도에 그쳤다. 아마 아내의 눈동자에서 생명력이란 것을 찾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아내는 이미 살아갈 의지를 모조리 상실해버린 상태였던 것이다. 


    아내의 장례절차를 모두 마치고 나서, 나는 집에 돌아와 부엌 식탁 위에 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인 채 두 시간 동안 울었다. 난생처음 그렇게 울어보았다. 그러고 나니 더 이상 울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도저히 고개를 들어 텅 빈 거실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눈을 감고 내일이 오지 않기를 빌었다. 다시는 해가 뜨지 않길 빌고 또 빌었다. <시간이 멈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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