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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벚신발 Aug 21. 2019

<요술 램프>

습작- 단편소설

"세계일주를 해보고 싶어" 남자는 낡은 침대 위에 걸터앉아 말했다. 몸을 가만히 두지 않은 탓에 침대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그리고?"


"안정적인 직장도 얻고 싶고, 결혼도 했으면 좋겠어"


"더 있어?"


"더 있긴 한데 이 정도면 나름 행복한 축에 속하지 않을까 싶은데"


"바라는 대로"

그는 박수를 치듯이 한쪽 손으로 반대쪽 손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신비한 힘이 공간을 휘감았다.


"오랜만이야 친구. 한 삼 년 만인가? 요즘엔 어때"


"돈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


"끝?"


"아니. 엄청나게 큰 집이 있었으면 좋겠어.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대저택으로."


"강아지는 어때?"


"너무 좋지"


"바라는 대로"

그가 박수를 치듯이 손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신비한 힘이 공간을 휘감았다.


"일 년 만에 다시 부를 줄은 몰랐는데, 남은 소원은 하나인 걸 알고 있지?


"항상 행복하게 만들어줘"


"음···난 표면적으로만 도움을 줄 수 있어. 이를테면 '행복하게 만들어줘' 같은 소원은 내 능력 밖이야. 어디까지나 물질적으로만."

"···뭐가 있어야 행복해질지를 모르겠어. 이젠 어설픈 거로는 행복 근처도 갈 수 없게 됐거든"


"음···친구에게만 특별히 말해두는데, 사실 가능은 해. 안 되는 소원은 없어. 근데 이전에도 너처럼 '행복하게 해줘'같은 걸 말한 녀석이 있었는데, 정신병원에 처박혀서 남은 생을 쓸쓸하게 죽어갔어. 뭐 본인은 실실 웃고 있었으니까 행복하게 죽은 거라면 할 말은 없지. 하지만 친구는 그 길로는 안 갔으면 해서 그래."


"···"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은데, 삼일이면 충분하지? 마지막 소원이니까 잘 생각해봐. 행복하게 만들어달라는 얘기는 아니었으면 좋겠어"


남자가 그를 불러낸 것은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남자는 화려하게 치장한 침대 위에 걸터앉아 그를 바라봤다. 달빛을 받은 눈동자가 은은한 빛을 띠고 있었다.


"결정했어?"


"내가 소원을 빌기 전, 사 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줘"


"소원을 다시 빌려고? 미안하지만 그건 안돼"


"아니. 소원은 이제 필요 없어"


"그럼 왜 불행하던 때로 돌아가려는 거지?"


"난 그저 열정을 사는 거야. 불안정한 미래, 그 결핍"


"그렇다면, 바라는 대로"

창으로 황홀한 달빛이 비쳐 들어와 남자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별안간 그림자가 흐릿해지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


남자는 삐꺽거리는 침대에서 일어나 해진 커튼을 젖히고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하늘엔 비행운이 두 줄기의 평행선을 그으며 뻗어나가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열정 비슷한 것이, 어젯밤의 깊은 꿈 때문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요술 램프>. 2019.08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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