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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터파머 DataFarmer May 06. 2021

[독서노트] 돌봄의 언어

2021.04.25 출판. 삶과 죽음, 예측 불허의 몸과 마음을 함께하다

서평 및 발제

책을 처음 받을 때부터 무언가 모를 뭉클한 감동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인생과 삶과 죽음에 대해 작가와 마음의 교감을 가질수 있을것 같았다. 작년 브런치 글인 루이즈 애런슨 교수의 나이듦에 관하여를 읽으면서 느낀 애잔함과 감동을 느낄 수 있을것 같은 잔잔한 여운이 맴돌았다. 그래서인지 이책을 많이 기다렸고, 책을 받은 그날 밤 잠을 아껴가며 의자가 아닌 침대에 살포시 기대어 이 책을 보았다. 평소 앉아서 하던 독서와는 다르게 무언가 독서의 시간이 아닌 '나는 지금 책이 주는 무한의 감동을 느낄 자세가 되어있어' 라고 말하듯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침대위에 펼쳐놓은 책


책 제목이 "돌봄의 언어"인데 영문 제목이 궁금했다. 보통 번역이 되는 과정에서 편집자나 출판사의 의도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다. 책의 원제는 "The Language of Kindess" 이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간호사가 작가인 책이니 Nursing, Care 를 돌봄으로 번역할 줄 알았는데, Kindess 라고?? 나도 많은 간호사를 만나왔지만, Nursing과 Care 에는 굳이 친절함이란 필수 요소는 아니였다. 돌봄은 단순히 나의 아픔이나 질병을 고치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친절함은 없어도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친절한 의료진은 만나기가 쉽지 않다. 수 많은 환자들을 대하기 때문에 그저 기계적인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9년동안 나의 아이의 출생부터 돌보아준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계시다. 그분에게는 참 따듯함과 친절, 진실함과 진정성을 느꼈다. 어느날은 목이 쉬었는데, 아이들이 오니 더 큰 목소리를 아이를 반기며 "준영이 왔어?? 오늘은 어디가 아파??" 하며 허스키한 목소리를 내는 선생님을 보면서, 기계적으로 환자를 진료하는게 아닌 돌보아 주는것을 종종 보곤했었다.


필자는 바이오 관련 전공을 하고, 의대에서 공부하면서 그나마 의료라는 분야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었다. 화자를 직접 대하는 임상은 아니지만, 기초 연구를 하면서 많은 의료진들과 간호사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고, 또 현재에도 많은 연구를 같이 진행중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 나이듦에 관하여 만큼이나 궁금했다.


요약

[1장]

책을 보는 내내 크리스티 왓슨 간호사의 친절함은 언제/어디서 드러날지 궁금해 하면서 보게 되었다. 책의 첫장부터는 작가의 어린 시절 방황하는 이야기 부터 시작한다. 십대시절의 방황과 이루고자 했던 수많은 꿈 이야기~ 그녀는 돌고 돌아서 간호사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 보통 사람들의 인생이 비슷함을 느낀다. 누군가는 어려서부터 하나의 꿈을 정해놓고 그것을 위해 매진하고 달려가서 그 꿈을 이루고 직업을 가진다. 물론 다 이룬후에 회의감을 갖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러가지 꿈을 꾸어보며 이 일도 해보고, 저 일도 해보고, 여러 공부를 하며 자신의 적성을 찾아가는 실패와 성공을 통해 자신의 소명을 찾아간다. 작가의 이런 사소이야기들로 시작한 도입부를 읽다보니 어느새 한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1장에 들어서자 드디어 작가의 친절함을 발견했다. 처음에 등장한 베티라는 환자와 계속해서 나누는 대화에서 그녀의 친절함이 계속 느껴진다. 1장이 끝나갈 무렵 베티는 "간호사님 정말 친절하시네요" 말한다. 그녀는 베티가 아파서 병원에 온것이 아님을 깨닫고 오히려 베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준다. 간호가 아닌 대화로 그 둘과의 만남을 담은 1장인 혈관으로 이루어진 나무 이야기는 끝이 난다.


[2장~13장]

친절이란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들을 수 있고, 보지 못하는 사람이 볼 수 있는 언어다 -- 마크 트웨인


이제부터 저자가 돌봄을 하면서 보일 장편의 간호의 스토리를 한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마크트웨인이 말한바와 같을 것 같다. 간호를 하면서 보이든 보이지 않든, 들리든 들리지 않든.. 항상은 못했을지라도 그 순간 조차 "친절"이란 단어를 생각하며 고군분투했을 그녀의 삶이 그려진다.


응급실, 정신과, 소아과 등 병원의 최전방에서 그녀가 간호하는 이야기들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정신과 병동에서 첫 간호 수련을 하고 있던 시기에, 여러 환자와 동료들을 만나보았지만 그 중 빅과의 대화가 인상깊다. "우리의 일이라는게 뭐가 더 위험하고, 더 득이 되는지 끊임없이 저울질 하는 직업이에요. 정신과 치료의 많은 부분이 환자들이 아플때 그들에게서 결정권을 뺏었다가 그들이 좋아지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조금씩 그 권한을 다시 돌려주는 일이지요" ... 


이 말을 처음 들은 그녀는 쉽게 동의가 되지 않았지만 응급실 병동의 간호를 마치고 이렇게 기술한다. "생명과 신체를 보조해주는 모든 장치들이 환자를 생명과 건강을 보조해주지만, 환자가 건강을 회복한다면 조금씩 기계가 대신하는 것을 다시 환자에게 주는 것"이라고.. 


이 전환이 많이 와닿아았다. 나도 부모로서 아이들의 결정권을 뺏을때가 많이 있고, 이것이 아이들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었을까? 내가 아이들의 결정을 대신 할때마다 그들의 자유와 행복과 안전을 보다 좋게 만들어 주는 것일까? 여운을 남겨둔채 계속 책을 읽어 갔다.


간호에 관한 책이라 나이팅 게일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나이팅게일은 심플하게 간호의 일의 대부분이 청결 유지에 있다고 했다. 솔직히 맞는 말지지만, 작가는 또한 그 말에 쉽게 동의하지 않았지만 이내,

간호사의 역할에 대해 한층 높은 차원에서 이해를 했다. 결국 많은 일들이 환자의 청결을 유지하는것이 맞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은 환자의 건강, 회복, 평안한 죽음에 기여함으로 그 사람이 체력이나 의지, 지식이 있다면 나의 도움 없이 수행했을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간호라고..


이와같이 작가는 자신의 간호에 대한 생각의 변화부터, 어린시절 다양한 꿈들의 변화, 간호 철학의 변화, 시대의 변화 등 다양한 변이점에 대해서 소개하는 부분이 나에게는 많이 인상적이었다. 그 이유는 내가 책을 읽는 목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변이점을 만나고 싶고, 그것을 통해 내 삶이 변화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들에 대한 나의 양육의 태도를 변화 시키고 싶어진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는것 처럼..


자신의 업에 대해 감사하는 작가의 고백에, 나의 업에 대해서도 한번 저렇게 멋지게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나의 업은 나에게 어떤 선물과 깨달음을 주는지 말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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